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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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바람시인 이문익 회상의 강가에 흔들리는 내 영혼말간 하늘에 그리움 엮어네 이름 부르면강물이 소리 내 흐르고눈꽃처럼 네 모습 가슴에 핀다 하얗게 얼어붙은 기억 저 깊은 곳에는만년설처럼 빙하가 흐르고그날에 멈춰버린 생각의 조각들숱한 별이 되어 쌓여 가는데 길 잃은 바람 어둠을 부여안고어서가자고 밤을 재촉하면오랜 전 지워버린 창백한 네 이름 석 자알 수 없는 여로에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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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무나 하나万 折<문필가> 지금 정치는 대중가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부정적 뉘앙스와는 영 다른, ‘정치(선출직·정무직)는 아무나 하나’를 떠오르게 한다. 그 명징(明徵)한 사례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는 데다, 그 결정판은 ‘교수라서 정치적 언어는 잘 모른다’는 몰염치의 민낯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그럼 ‘혁신’의 의미는?# 불리하면 ‘모른다, 기억 안 난다’가 특기인 이재명(갱상도에서 쓰는 애칭 재밍이)이 자기 사건에 조사 받다 죽은 임원을 하위직이라 모른다 하고,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을 밝히라 하니 동문서답인 ‘윤석열 게이트’라 역공하는 궤변으로 지금도 ‘용꿈 작전’을 시도하고 있다. 직격하면 ‘뻔뻐니스트’의 대명사다. 또 재밍이 강성지지층(개딸)인 양문석은, 비주류를 향해 ‘수박’과 ‘바퀴벌레’라는 ‘예비 공천자’가 있는가 하면 해진 운동화 싣는다는 ‘청백리(김남국)’도 있다. 어제는 또 오염수 방출 반대의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에 ‘어린이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6,8세 어린이를 불렀다. ‘핵발전을 당장 멈추라’와 ‘일본 편을 드는 대통령이 밉다’고도 했으니 그 아이 인성 교육을 북한처럼 주입식으로 할 건가. 하다하다 참···.# 60대 이상은 투표 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는 정동영, 50대가 되면 멍청해지니 책임 있는 자리는 맡지 말아야 한다는 유시민, 노친네는 투표 못 하게 해외여행 보내는 게 진짜 효자라는 조국, 늙은이 통행도 불편케 하려 에스컬레이트도 철거하라는 김용민 등 다 셀 수가 없다. 조국은 또 모두가 용이 되려 할 필요는 없으니 ‘가붕게’로 살면 된다며 희망찬 청춘의 싹을 자르는 요설을 쏟기도 했다. ‘장관스럽다···?’# 리스크(상처에 붙인 테이프)로 만신창이가 된 야당을 혁신한다고 재밍이는 혁신위장(김은경·은갱이)을 지명했더니 취임 제일성 ‘돈봉투 사건은 조작일 수 있다’는 데서 출범은 했다. 보나마나 수렴청정일 테니 ‘답정너’였다. 결국 일은 터지고 말았다. 중2생 아들이 ‘왜 나이 먹은(미래가 짧은) 사람들이 우리(중2생) 미래를 결정하느냐?’라 했다고 하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에겐 남은 평균 수명(여명·餘命)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말까지 했으니 이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은갱이에겐 뭐가 합리적인지와, 중2생(지금은 대학생)에겐 정말 그 신조(?)가 지금도 불변인지를 되묻고 싶다. 더욱이 성인도 아닌 중2생의 발상이라고 하기엔 뭔가 소명이 필요할 사안인데, 그 잘난 ‘합리적’은 결코 아니었다. ‘합리적’의 어의(語義) 말살일 수밖에 없다. # 온 나라가 들끓도록 설화를 부른 혁신위의 명칭을 ‘헌신(짝)위’로 하라는 조롱도 있으니 사과하라 했지만 자존심에 관한 일이라 그럴 일이 아니라는, 후안무치를 당당히 내뱉는다. 동참한 황희는 사태의 엄중함도 모르는지 침울(沈鬱)보다는 연신 웃음을 흘렸다. 더 가관인 것은 따로 있다. 노인 비하를 일으킨 은갱이를 두둔하던 양이(攘夷?)원영은 ‘은갱이 말이 맞는 얘기’라며 천박한 ‘따리 짓’을 공공연히 했다. 거기다 ‘지금 투표하는 노인네는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이라 했으니 혼란은 혼돈으로 더욱 부추겼다. 도둑이 담장을 낮추자는 꼴이었다.# 은갱이는 또 윤석열은 ‘윤석열’이더니 문재인은 ‘대통령’이었다. 여기 더 기름을 부은 것은 (부위원장) 임기 채운 것이 ‘치욕’이라는 거였다. 기가 막혀 나오던 말문이 닫힌다. 정부가 바뀌니 금감원 주요직 임원은 순리에 따라 사임했는데 혼자 임기 채우며, 기사 딸린 외제차 타고 3억 록(祿)까지 다 타먹은 것이 그리도 치욕이더냐. 건너온 다리 부수는 꼴이다. 교수라서 정치적 언어도 모른다니 그럼 아는 건 무엇이니? 내 몇 번 ‘정치는 뻔뻔해야 한다’고 썼지만 바로 은갱이를 두고 했던 말인가 보다. 노인을 ‘인재양성의 산실’인 교수사회와 묶어 폄훼했다니 명문 하버드大 출신의 자질이 그 정도인가? 더구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까지 했다니 참···. 역시 제1야당을 혁신하겠다고 나선 은갱이나 그를 지명한 재밍이나 ‘초록은 동색’밖에 없다.# 설화를 보다 못한 박광온(민주당 원내대표) 등은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간부들은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도 했지만, 그래도 꿈쩍을 않던 은갱이는 위기를 감지는 했는지 대한노인회(회장 김호일)를 찾았다. 김 회장은 결연한 어조로 질책을 넘어 호통을 치더니 ‘뺨을 칠 일이지만 그럴 순 없다’며 네 차례나 사진을 손바닥으로 치는 퍼포먼스도 연출했다. 진영 따라 속이 후련하다(맞을 짓을 했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훈도(訓導) 하면 될 걸’이라는 (은갱이)편도 있다. 올곧은 이성이 아니라 진영 따라 다른 이 격론을 언제 잠재울지 모르겠다. 재밍이 따리들은 ‘여성 인권에 폭력’이라는 격앙을 나타내기도 했다. # 당 일부와 중진들이 사과하라 했지만 ‘자존심 상하는 문제’라 사과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어떤 심기일전의 변화가 왔는지 ‘울며 겨자 먹기’인 듯 사과를 하긴 했다. 진정성은커녕 ‘억지춘향’임이 분명했다. 논란의 책임은 지지만 사퇴는 없다고 단호했다. ‘실토(實吐)한 자존심’에다 타의에 의한 뺨까지 맞고 스스로 뱉은 ‘치욕’이, ‘내가 쏜 화살이 되돌아온 꼴’이 되고 말았다. 나 같으면 탁자라도 치며 모멸 당한 분풀이를 하겠다. 사퇴 명분이라도 찾으며 상한 자존심이나 지키려고 말이다. # 날이면 날마다 터지는 분란의 혁신위를 ‘헌신위’로 만드는 것보다 예정보다 빨리 종료하려는 듯하더니 악재가 터졌다. 노인 비하를 수습할 목적이었는지 은갱이가 ‘18년 간 시부모를 모셨다’는 가족사를 언급했다. 이를 본 미국 사는 시누이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본 은갱이 아들(그 중2생?)은 ‘엄마와 함께 조부의 고향집까지 갔다’고도 하며 엄마 편에 섰다. 게다가 고모는 조부모 상례 때는 불참을 했다고 반격 하는가 하면, 시누이는 ‘오빠 제사도 챙기지 않았다는 역공도 했다. 어쨌건 그 가정사는 시중의 막말인 개판? 아니면 아수라장이다. 아직은 전초전(?)에 불과하지만 그 본태(本態)가 언젠간 백일하에 드러나는 날은 폭풍전야가 되어 은갱이에겐 명예로운 퇴진은커녕 치명타를 받는, 무아지경이 되지나 않을까···? # 신문에 난 논란의 개요를 보니 아직은 ‘팩트’로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그 기사의 핵심을 복기하면 시부모의 봉양, 시부모의 재산 빼돌렸나, 부부 불화로 김은경 남편 극단 선택, 시아버지도 극단 선택, 부부 불화가 자살 원인, 부의금만 챙긴 김은경 등등이었다. 입소문 정도라고 하기엔 너무 평온치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가정 파탄(대판싸움)’이 있었던 건 아닐까···?# 죽어가는 재밍이를 김만배가 대법원(이발소)을 8번 드나들며 권순일을 감언이설로 ‘구워삶은(재밍이 유·무죄와의 빅딜)’이나, 국정농단(비리·부패)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검과 함께 검은돈(50억클럽, 화천대유의 고문료와 자문료)을 챙기는 비행을 저질렀으니 ‘고양이에 생선을···’로는 태부족이다. 이성과 상식의 상규(常規)가 국가의 간성인데, 이럴 때야말로 고위직에겐 사리사욕보다(출세지향) 국익최우선의 우국봉공(憂國奉公)이 더욱 절실하다. # 온 나라가 폭우로 난리인데 우리 지역(대구)이 아니니 공무원(홍준표)의 특권인 휴일에 골프 치는 게 뭐 나쁘냐고 했다. 옆집에 초상이 나면 근신(謹愼-가무음주 금지)하는 게 지켜 내린 우리들의 묵시적 미덕인데, 이도 모르는가. 게다가 수해 현장에 가봐야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하는 도지사(충북?)도 있었으니, ‘정치는 아무나 하나’를 소환할 수밖에 없다. 이상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실이라니 몹시도 허허롭다. 끝 *** 본제(本題)와는 다른 ‘새만금 잼버리대회’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대회 유치 이후 공무원들이 99개 나라로 ‘잼버리 출장’을 갔는데 공무가 아닌 해외 유람의 대장정(大長程)이었다. 심지어는 프랑스 ‘와인축제’에도 갔다니 말이다. 시중의 떠도는 말인 ‘나라 돈은 먼저 보는 놈이 임자’도 아니고 이게 무슨 추태인가. 남 탓만 하지 말고 공동책임감을 가져라. 다만, 정권 바뀌며 업무 인수·인계가 부실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고 자인하라! 구태여 책임을 찾자면 현 정부 책임이 더 크다는 말로 종결하려 한다. 제발 국가 대사인 ‘부산EXPO 유치’에 자충수는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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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곡면 한 목장서 암사자 탈출고령군 덕곡면 한 목장에서 암사자가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14일 고령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덕곡면 한 목장 관리인이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던 암사자가 탈출해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7시께 신고를 접수하고 암사자의 행방을 쫒고있다. 한편 고령군은 안전문자를 긴급으로 전달하고 인근주민들 안전에 대비해 줄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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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과 누렁이이상유<시인·수필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실은 긴 열차가 끝없는 평행의 철로 위를 뱀처럼 미끄러지며 달리고 있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는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옛날의 그 기찻길은 지금도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육중한 열차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괴물같이 생긴 검은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흰 콧숨을 내뿜으며 우렁차게 저 길을 달렸었고 붉은 머리의 디젤기관차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싣고 들판을 가로질러 질주하다 산모퉁이 뒤로 꼬리를 감추곤 했다.어린 우리에게 열차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호기심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열차가 지나갈 때면 차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두 팔이 빠지도록 손을 흔들었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떠나 보고 싶었다. 보릿고개로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 열차가 달려가는 먼 곳에는 먹을 것도, 볼 것도, 사람도 많은 풍요로운 세상일 것이라고 상상했다.철길은 우리의 위험하고도 재미있는 놀이터였다. 선로에 엎드려 귀를 대고 열차 바퀴의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로 위에 못이나 작은 쇠붙이에 침을 발라 올려놓고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바퀴에 눌려 납작해진 그것들을 돌에 갈아서 작은 연장이나 장난감을 만들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의 철길에는 누렁이의 죽음이라는 슬픈 추억도 도사리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강 건너 이모 댁에 다니러 갔다가 노란 털의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오셨다. 우리는 그 강아지를 누렁이라 부르며 한 가족처럼 보살피며 키웠고 나와는 온종일 붙어 다니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누렁이가 점점 성장하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 쏘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온 천지가 푸른색으로 생동하던 그해 봄날에도 누렁이와 나는 온종일 들판을 뛰어다니며 재미나게 놀았다. 보리밭의 종달새 알둥지를 찾아다니며 뒤지거나, 꿩 새끼들을 쫓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약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없는 들판의 무법자였다.정신없이 뛰고 달리며 노는 사이에 철길 근처에 다다르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열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마치 열차와 경기라도 하듯이 누렁이를 뒤에 둔 채 악을 쓰고 철길을 뛰어 건넜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열차는 고함을 치듯이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력으로 지나가고 있었다.나를 따라오던 누렁이는 긴 열차에 가로막혀 버렸다. 나는 걱정이 되어 달리는 열차 바퀴 사이의 공간을 통해 누렁이 쪽을 바라보았다. 누렁이는 앞다리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저 녀석이 겁도 없이 철길로 뛰어들면 어떻게 하나?’ 다급해진 나는 두 팔을 힘껏 가로저으며 제발 건너오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나 누렁이는 나의 간절한 바램도 저버린 채 달리는 열차 바퀴의 빈 공간 속으로 그만 뛰어들고 말았다. 혹여 나의 손짓과 외침을 빨리 건너오라는 신호로 잘못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차라리 열차가 지나갈 동안 철둑길 언덕 어딘가에 숨어 버릴 것을… 나는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울먹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긴 열차가 지나가고 황급히 철길에 올라섰을 때 두어 번 침목(枕木) 사이로 솟구쳐올라 설렁거리다가 가라앉는 누렁이의 긴 꼬리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차마 누렁이의 비참한 주검을 확인할 용기가 없어 쏜살같이 집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누렁이가 열차에 치여 죽었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뒷집 친척 아저씨가 죽은 누렁이를 지게에 지고 와 탱자나무 울타리 옆에 묻는 것을 나는 멀리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렁이는 나 때문에 죽었다고 괴로워하며 오랫동안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다. 그 후 내가 성장하여 중학생이 될 때까지,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로 우리 집에 강아지를 들여 키우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누렁이에 대한 슬픈 추억도 세월 속에 묻히게 되었다.붉은 머리의 화물 열차 한 대가 6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내 품에 안기고 싶어 안달하며 열차 바퀴로 뛰어들던 누렁이의 잔영이 동영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열차가 지나간 뒤, 가지고 간 막걸리 한 병을 배낭에서 꺼내 누렁이가 꼬리를 설렁거리며 삶을 마감하던 그곳에 뿌렸다. 어쩌면 누렁이의 영혼이 지금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말 못 하는 한 마리의 짐승이지만 나에게로 향했던 그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무심히 살아온 날들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이제 그의 영혼이 시끄러운 철길을 벗어나 영원한 안식처에서 평온히 잠들기를 빌었다.끝없이 이어지는 먼 평행의 철길을 바라본다. 달려도 달려도 영원히 합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다. 다가서면 또 그만큼 멀어지기만 하는 지난(至難)한 내 삶을 닮은 길이다.오늘도 그때처럼 봄날의 아지랑이는 피어나고 내 가슴속의 종달새는 어린 시절의 꿈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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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시인 이문익 네 체온이 묻어날 것 같은빛바랜 빈 의자에는 나른한 햇살이 졸고 있고서산 노을에 가슴이 젖은 바람빈 의자에 비켜 앉아회상의 먼 바다에 잠들면수은등 불빛 피어나는어스름 강변에는 풀벌레 소리 맑은 은하수를 이루고깊어가는 소설한 밤윤슬 따라 흔들리는 갈꽃 향기사방이 가을로 가득한데갈 곳 잃은 고즈넉한 달빛빈 의자에 기댄 채 검푸른 강만 하염없이 바라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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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월이면춘강 이종갑<시인·시조시인> 석양이 서천에다 노을을 내다걸면냇바람은 하루를 들고 자박자박 산을넘네마음의지뢰밭에는 그리움의 달이 뜨고 육월을 받쳐든 그대의 발소리에 기약없는 기다림은 파도처럼 밀려와서가슴에 장미한송이피워보는 시간이다 산딸기 익는 저녁 간절한 기다림에그때 그 맺은언약 마음의 담을넘고어둠에묻친 골짜기엔두견이만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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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나라万 折<문필가> 어쩌다 여소야대의 정부에 수장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고군분투로 나름의 새 국정지표에 따라 국정을 펴려는데 170석 공룡 야당의 ‘힘자랑’ 때문에 일마다 장벽을 만나고 있다. 정당의 집권 룰은 정의와 도덕이 아닌 사실·진실보다 ‘수적 다수’가 우선이니 ‘승자독식’의 폐해가 있다고, 김영수 교수가 여소야대를 질타했다. 거기다 대북 온정주의를 맹신한 앞 정부보다 공격적 현 정부이니 여러 현안(懸案)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다음 총선)’는 계도성(啓導性) 목소리도 있다. 제발 ‘거야’는 이번으로 끝냈으면···.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IAEA의 대체로 무해하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그것을 믿기는커녕 믿을 수 없으니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IAEA를 ‘깡통···’이라 하는가 하면, 환경부 장관을 향해서는 ‘200년 후 생태계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만일 내가 장관이었으면 ‘그럼 그때까지 함께 살아 보자(?)’고 답하겠다. 또 방류했을 때 캐나다, 미국 등과 환태평양국들은 왜 무반응인지는 야당이 답하라! 보나마나 다음 총선까지 ‘이슈’를 몰고 갈 것이라는 예단밖에 없다. ‘기승전총선’이 나왔으니···.보다 못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과학자들 말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들을 것이며, 일본 파견 시위대까지 있었다니 그들은 도대체 국격이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고 질책하며 자신이 먼저 부끄럽다고 했다. 선진국 대열에 선 것이 무색하다고도 했다. 더구나 그로시가 입국하는 공항에까지 나가 ‘그로시 고 홈’에다 ‘100만 유로 받았느냐’는 고성도 외쳐댔으니 할 말을 잃는다. 아하, 그래서 ‘돈봉투 놀이를 저질렀구나!’를 할 수밖에 없다.윤석열 김건희를 ‘서울-양평 게이트’라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중에는 윤석열 얘기만 하면 ‘천불이 난다’는 임세은도 있었다. 사드와 광우병 광란으로도 모자라는지 이번엔 오염수 방류에도 괴담으로 반기를 들었다. 결론은 야당 일부에서도 반대하는 ‘윤석열 탄핵’이었다. 역시 개딸들의 훌리건(광신자)에 다름 아니었다. 여당 대변인(한주혜)은 ‘조자룡의 헌칼 쓰듯 한다’고 비꽜다. 요지경이다.야당은 지금 혁신한다고 소리만 요란했지만 ‘답정너’였다. 혁신의 대상자는 덕지덕지 반창고(사법리스크) 붙어 있는 이재명인데 누가 누구를 혁신한다는 말인가라는 ‘썰’과, (이재명)물러나는 게 ‘혁신’이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스웨덴의 NATO 가입에 대한 회의에 초청을 받고 스웨덴에 간 윤 대통령을 보고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살생)보다는 낫다’는 요설(饒舌)을 뱉으며 윤석열을 폄훼했다. ‘그놈의 0.78%가 아니었으면 내(이재명)가 갈 자린데···’라는 ‘4촌 논 사는 심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더러운 평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는 ‘더러운 평화’를 피해 은신처를 유랑한 것은 뭘 의미하는지를 밝히면 그 의미가 입증될 것은 왜 모르느냐. 이를 구태여 옹색한 풀이를 하자면 박원순을 절치부심으로 ‘시대의 사표요 선구자’라는 교수(김수진)의 궤변과는 정반합(正反合)의 역설적 논리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1호쇄신안인 ‘불체포 특권 포기’를 관철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망한다는 작심 발언도 있었다. 이를 두고도 찬반양론으로 갈리고 결론을 내지 못하는 데다 이상민의 송곳 발언, ‘유쾌한 결별···’이 기름을 부어 중징계가 발의되고 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내부(야당)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그를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막말로 하자면 조변석계의 ‘카멜레온(당대표)’과 정상적 혁신이 될까의 의문이 정설이었다. 자기(대장동) 때문에 죽은 김문기를 모른다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콩을 콩이라 해도 난 믿을 수가 없는 카멜레온이니 말이다. 이런 자가 ‘용산’을 넘보니···.하기도 께름칙한 박원순 얘기를 소환해야겠다. 딱 한마디로 김수진에게 묻는다. 왜 죽었는지만 말하라! ‘···사표(師表)’와 ‘선구자’이고 ‘수천만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을 향한 중상모략이며 상식에 반하는 허구다. ‘스스로의 결단’이며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당당함을 보이고자 주저 없이 내린 결단···’이라 했으니 장삼이사와는 다른 ‘지성인’이 할 말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교수?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네’라는 비아냥도 나오겠다. 이를 보니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잘 타는 백아(伯牙)가 죽으니 이를 슬퍼한 절친 종자기(鍾子期)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현대판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또 소환케 한다. 동갑이니 죽마지우였던가 보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속언(俗言)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정이 반사회 통념(성추행)보다 먼저인가? 이런 교수가 정치학을 가르쳤다니 ‘지성’의 산실인 ‘교수’의 오욕일 수밖에 없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100년 전쟁’이 나온 이유를 알게 한다. 지금 오염수 방류 논란이 시들먹해 지는가 했더니 ‘양평 고속도로’가 여야의 전장(戰場)으로 떠올랐다. 분란은 분란을 낳더니 장관(국토부)의 고발까지 나왔다. 나는 두 안(案)의 옳고 그름보다 인근 주민 90% 이상이 바라는 대로 ‘2안 확정’이 정상으로 가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는 장관의 ‘직을 걸겠다’는 것은 좀 경박했다. 더 이상 국익 해치는 논란을 종식, 평정이 되어 여야 불문 ‘분란의 바람이 없는 정치’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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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세월을 그리다이문익<시인> 주홍빛 노을이낮게 흐르는 강가에 회상에 젖은 바람이 불어오면 붉게 물든 하늘은 노을이 빚어낸 눈부신 오선지에세월이라는 악보를 그리고바람은 쪽배를 타고 비켜 가버린 세월 속 나목에 앉아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만시린 눈밭에서눈荀을 키우는 산 목련처럼잠자던 시어들은 서걱거리는 갈밭에서 꿈을 키우고시는, 세월의 뜨락에 흔적을 모아뒹구는 낙엽에 그리움 엮어 세월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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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자라이상유<시인·수필가> 며칠 전 아내와 칠성시장에 갔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 다음으로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곳이다. 지하철 칠성시장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를 때부터 시큼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장터 냄새가 풍겨왔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 가장자리에 길에 늘어선 좌판과 그 위에 쌓인 갖가지 물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사가이세이!”하고 아주머니들이 던지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린 시절 고향 장터의 낭만을 되살아나게 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감 어린 맛이다.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시장 구경을 하다가 민물고기를 파는 가게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붉은색의 커다란 고무대야 여러 개가 길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잉어며 붕어, 가물치, 메기, 미꾸라지 등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혹여, 물고기들이 죽을까 봐 설치한 산소 공급기의 호스를 통해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일고 있었다. 물고기가 담긴 옆의 또 한 고무대야 속에는 커다란 자라 몇 마리가 엉금엉금 기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자라, 자라의 누르스름하고 넒적한 등 위로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때 나는 스무살로 펄펄 뛰는 아마추어 권투선수였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마음 둘 곳이 없어 몇 달간 방황하다가 젊은 혈기로 시작한 운동이 권투였다. 지금의 대구 남문시장 건너편 남산동 언덕배기에 ‘동양권투구락부’라는 체육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권투를 배우고 챔피언의 꿈을 키우며 내 인생의 가장 젊은 한때를 보냈다. 70년대 중반이던 그 당시 권투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유제두, 홍수환, 염동균 선수 등이 세계 챔피언이 되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난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오직 주먹 하나로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창대한 꿈을 품고 너도나도 권투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다. 또 당시는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창 경제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던 때였다. 세계 챔피언의 탄생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권투는 오래된 가난을 이겨 내겠다는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텔레비전도 귀하던 시절, 권투 중계방송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우리 선수를 응원했고, 이튿날 아침 뿌듯한 마음으로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했다. “한강의 기적은 주먹에서 나왔다.”라고 할 만했다. 경기를 앞두고 정신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큰 자라 한 마리를 구해 오셨다. 마침 이웃에 사는 친척 아저씨의 밤낚시에 걸려든 놈을 얻어 왔다고 했다. 힘쓰는 사람에게는 자라의 생피가 제일 좋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었다고 하시면서. 자라를 앞에 놓고 잠시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뜬 어머니는 예리한 칼로 자라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한 숟가락 정도 나오는 불그스레한 자라 피를 받아 나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오로지 경기의 승부에만 집착해 있던 나는 두말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여름 큼직한 자라 몇 마리가 나를 위해 희생되었고, 어머니의 정성 덕분으로 그해 나는 이름 있는 몇몇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린 시절,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강이나 연못에 나가 어쩌다 자라를 잡아 오면 어머니는 용왕님이 노하신다고 하면서 다시는 잡지 말라고 나무라셨다. 그리고 잡아 온 자라를 다시 강에다 놓아주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가 용왕님이 아끼는 신성한 동물이며 절대 해코지하거나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영물로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이른 새벽에 몸을 단정히 하고 홀로 강가로 나가 무언가를 향해 두 손은 모아 빌면서 허리 숙여 절하던 모습을 가끔 보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람들이 ‘덤’이라고 부르던 청석투성이의 큰 산이 하나 있었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던 산이 둘로 쪼개져 하나는 흔적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절반만 남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는 산이었다. 그 산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비늘처럼 일렁이고 있는 그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그토록 기원했을까? 아마도 그 깊은 강물 속에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만의 어떤 믿음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이생은 물론 내생의 삶도 주관하는 용왕님이 살고 있었고, 거북이나 자라와 같은 물속의 장군들이 용왕님을 호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힘든 세상살이를 이겨내기 위해, 또 언젠가는 다가올 내세의 평안을 위해,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용왕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 오던 오랜 믿음의 세계마저도 저버린 채 용왕님의 호위무사인 자라의 목을 칼로 찔렀다. 세상의 어떤 것도 지식 위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나는 젊은 한때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어머니의 믿음과 내세의 행복마저 빼앗아 버린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고무대야 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방생용’자라 몇 마리를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언제 좋은 날은 잡아,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덤’이 있는 고향의 그 강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깊은 강 용왕님을 향해 힘껏 헤엄쳐 가는 자라를 바라보면서 오래된 나의 불효를 용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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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가을 하늘 다소니 그리는 마음잘 못 이루다가설핏설핏 노루잠 속으로 살포시 왔다 가버린 그미 그림자 은가람에 윤슬처럼 흐르는 지난 날 이야기 애움길 너머해거름에 꽃노을 피는 하늘 멀리 가을을 타는 참붉이 가슴 번놓고 맴도는 고추잠자리 나래에 띄워 보내고 늘솔길 거닐던구름발치 너머로 멀어져간가나른 하얀 얼굴시나브로 다가오는 그미의 해맑은 하늘 격랑의 세월 알 수 없는 내일은긴 꼬리를 달고 어두운 터널을 향하는데격랑의 세월을 지고 가는 반복되는 일상은 충혈된 눈으로 또 하루를 꿰맨다 등이 휠 것 같은 고난의 시간 뿔난 코로나가 나목의 빈 가슴을 짓눌러도 꺼지지 않는 염원 하나 에덴의 동산마루에 빛을 따다 담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 어둠에 떠밀려넋을 잃고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믐밤은 다시 말간 새벽을 토해내고 지치고 목마른 허기진 가슴, 가슴은 혹한을 딛고 여명의 새날을 잉태하겠지 빛을 잃은 초원도 푸른 별로 초록의 무성한 팁을 쌓아혈루血淚에 젖은 하늘이 열리고 사계四季의 오선지엔 바람과 구름이 숨을 키우고 자작나무 숲에는 그대는 바람인가 보오하얀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면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오 이름 모를 들꽃도높푸른 가지 끝에 빛나는 초록도그대의 소연蕭然한 향기 이지요 눈부시게 빛나는 청자빛 하늘을 유영하는 흰구름은 그댈 향한 그리움 인가요 자작나무 숲 갈림길에는 늘 그대가 있어 고요히 사색의 발길을 내딛지요 그대 생각이 머물다간 자작나무 숲에는 가지 끝에 걸린 낮달이 여위어 가고 어스름 내리는 희미해진 기억의 사슬에는 자욱한 운해의 바다만 넘실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