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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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람 잘 날 없는 나라

万 折<문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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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 折<문필가>

 

어쩌다 여소야대의 정부에 수장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고군분투로 나름의 새 국정지표에 따라 국정을 펴려는데 170석 공룡 야당의 ‘힘자랑’ 때문에 일마다 장벽을 만나고 있다. 정당의 집권 룰은 정의와 도덕이 아닌 사실·진실보다 ‘수적 다수’가 우선이니 ‘승자독식’의 폐해가 있다고, 김영수 교수가 여소야대를 질타했다. 거기다 대북 온정주의를 맹신한 앞 정부보다 공격적 현 정부이니 여러 현안(懸案)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한다(다음 총선)’는 계도성(啓導性) 목소리도 있다. 제발 ‘거야’는 이번으로 끝냈으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IAEA의 대체로 무해하다는 결과를 발표했지만 그것을 믿기는커녕 믿을 수 없으니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IAEA를 ‘깡통···’이라 하는가 하면, 환경부 장관을 향해서는 ‘200년 후 생태계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만일 내가 장관이었으면 ‘그럼 그때까지 함께 살아 보자(?)’고 답하겠다. 또 방류했을 때 캐나다, 미국 등과 환태평양국들은 왜 무반응인지는 야당이 답하라! 보나마나 다음 총선까지 ‘이슈’를 몰고 갈 것이라는 예단밖에 없다. ‘기승전총선’이 나왔으니···.
보다 못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과학자들 말 안 들으면 누구 말을 들을 것이며, 일본 파견 시위대까지 있었다니 그들은 도대체 국격이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고 질책하며 자신이 먼저 부끄럽다고 했다. 선진국 대열에 선 것이 무색하다고도 했다. 더구나 그로시가 입국하는 공항에까지 나가 ‘그로시 고 홈’에다 ‘100만 유로 받았느냐’는 고성도 외쳐댔으니 할 말을 잃는다. 아하, 그래서 ‘돈봉투 놀이를 저질렀구나!’를 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김건희를 ‘서울-양평 게이트’라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중에는 윤석열 얘기만 하면 ‘천불이 난다’는 임세은도 있었다. 사드와 광우병 광란으로도 모자라는지 이번엔 오염수 방류에도 괴담으로 반기를 들었다. 결론은 야당 일부에서도 반대하는 ‘윤석열 탄핵’이었다. 역시 개딸들의 훌리건(광신자)에 다름 아니었다. 여당 대변인(한주혜)은 ‘조자룡의 헌칼 쓰듯 한다’고 비꽜다. 요지경이다.
야당은 지금 혁신한다고 소리만 요란했지만 ‘답정너’였다. 혁신의 대상자는 덕지덕지 반창고(사법리스크) 붙어 있는 이재명인데 누가 누구를 혁신한다는 말인가라는 ‘썰’과, (이재명)물러나는 게 ‘혁신’이라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스웨덴의 NATO 가입에 대한 회의에 초청을 받고 스웨덴에 간 윤 대통령을 보고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살생)보다는 낫다’는 요설(饒舌)을 뱉으며 윤석열을 폄훼했다. ‘그놈의 0.78%가 아니었으면 내(이재명)가 갈 자린데···’라는 ‘4촌 논 사는 심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더러운 평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는 ‘더러운 평화’를 피해 은신처를 유랑한 것은 뭘 의미하는지를 밝히면 그 의미가 입증될 것은 왜 모르느냐. 이를 구태여 옹색한 풀이를 하자면 박원순을 절치부심으로 ‘시대의 사표요 선구자’라는 교수(김수진)의 궤변과는 정반합(正反合)의 역설적 논리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1호쇄신안인 ‘불체포 특권 포기’를 관철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망한다는 작심 발언도 있었다. 이를 두고도 찬반양론으로 갈리고 결론을 내지 못하는 데다 이상민의 송곳 발언, ‘유쾌한 결별···’이 기름을 부어 중징계가 발의되고 있다. 콩가루 집안이라는 내부(야당)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그를 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막말로 하자면 조변석계의 ‘카멜레온(당대표)’과 정상적 혁신이 될까의 의문이 정설이었다. 자기(대장동) 때문에 죽은 김문기를 모른다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콩을 콩이라 해도 난 믿을 수가 없는 카멜레온이니 말이다. 이런 자가 ‘용산’을 넘보니···.
하기도 께름칙한 박원순 얘기를 소환해야겠다. 딱 한마디로 김수진에게 묻는다. 왜 죽었는지만 말하라! ‘···사표(師表)’와 ‘선구자’이고 ‘수천만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을 향한 중상모략이며 상식에 반하는 허구다. ‘스스로의 결단’이며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당당함을 보이고자 주저 없이 내린 결단···’이라 했으니 장삼이사와는 다른 ‘지성인’이 할 말인지 귀를 의심케 한다. ‘교수?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네’라는 비아냥도 나오겠다.
이를 보니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잘 타는 백아(伯牙)가 죽으니 이를 슬퍼한 절친 종자기(鍾子期)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현대판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또 소환케 한다. 동갑이니 죽마지우였던가 보다.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속언(俗言)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정이 반사회 통념(성추행)보다 먼저인가? 이런 교수가 정치학을 가르쳤다니 ‘지성’의 산실인 ‘교수’의 오욕일 수밖에 없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100년 전쟁’이 나온 이유를 알게 한다.
지금 오염수 방류 논란이 시들먹해 지는가 했더니 ‘양평 고속도로’가 여야의 전장(戰場)으로 떠올랐다. 분란은 분란을 낳더니 장관(국토부)의 고발까지 나왔다. 나는 두 안(案)의 옳고 그름보다 인근 주민 90% 이상이 바라는 대로 ‘2안 확정’이 정상으로 가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는 장관의 ‘직을 걸겠다’는 것은 좀 경박했다. 더 이상 국익 해치는 논란을 종식, 평정이 되어 여야 불문 ‘분란의 바람이 없는 정치’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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