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희(수필가) 미련이 많은 사람들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도로에 어딘가 어색함을 느낀 것은 지난 유월경 신천지 교회 소동이 점차 수그러지던 시점인가 싶다.물론 희고 검은 마스크를 쓴 군상들이 도로를 가득 왕래하는 그 자체가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인 경우지만 그래도 왕래하는 사람들의 구성에 분명히 약간의 부조화를 느꼈다. 일상 와중에 그 부조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적지 않은 날을 보낸 후 내 나름 그 원인을 찾았다. 그것은 나이가 든 양반들이 거리에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예전 ...
김년수(수필가/선산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우리나라에는 24절기가 있다. 그 중 소설(小雪)은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는 절기를 뜻한다. 특히 소설이 다가오는 음력 10월 20일이 되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 김포 사람들은 배를 운행하는 것도 삼가했다. 이 때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른다. 손돌바람은 김포시에 위치한 묘소의 사연과 관련이 있다. 소설에 부는 손돌바람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조선왕 인조는 청나라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피난을 왔다. 지금의 김포에 살던 손돌이라는 뱃사공이 인조의 뱃길을 안내해주었...
정아경(수필가)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지 위에 쏟아내는 문장은 딸의 부재를 매 순간 느낀다는 절절함으로 가득하다. 온 세상 행운을 모아 딸의 안전을 기원한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기원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나의 문장은 곡진하다. 신을 섬기는 선한 마음보다는 이기심이 더 많은 나의 기도는 늘 빈궁하고 간절한 순간에만 찾아온다. 필사(筆寫)하는 수도원의 거룩함이 편지지 위에서 재현된다. 자음·모음… 부디, 이 문장을 읽는 딸에게 힘이 되기를…….세계가 하나의 모바일 안에서 소통되는 시대에 딸은 전화, 카카오톡, SNS,...
정아경(수필가) 형이 생겼어요 가끔, 같이 사는 남자가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다섯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누나들이 있고, 한 여자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으며 홀어머니를 두고 있는 그는 여인국(女人國)에 난파된 걸리버처럼 이질적이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의 성향은 지극히 남성 지향적이고 또한 스포츠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월드컵, 올림픽은 물론이고 각종 프로리그도 빠짐없이 챙겨본다. 야구선수에 대한 프로필이나 그들의 경력이나 중요 포지션은 해설가 수준이다. 응원도...
김상룡(수필가) 일요일 오후, 나는 매번 무채색이 된다. 문득 ‘의미’라는 단어가 끼어든다. 해석과 평가 사이를 줄타기에 앞서 나에게 의미란 매번 1,067m의 허들로 나타난다. 넘어야 되는 강박이 싫다. 오늘은 어지러운 세상 소식에서 멀어지리라 다짐하면서 해석과 평가가 필요 없는 채널을 돌렸다. 매번 화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한국 청년이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를 소개하고 있었다.지루해진 여행 프로그램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즘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인을 만난 듯 백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 ‘발타사’...
정아경(수필가) 따르릉 따르릉, 손만 내밀어 알람을 끈다. 연인의 품 같은 이불 속에서 떨쳐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뭉그적대는 사이 또 울린다. 알람 간격이 10분이니, 10분이란 시간이 그토록 달콤할 수가 없다.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줄줄이 지각 사태가 이어진다. 새벽형인 나에게 아침잠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늘 힘겹다.알람이 울리지 않는 일요일이 며칠 남았는지 헤아리며 반수면 상태로 세수하고 쌀을 씻는다. 압력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고, 전날 준비해 놓은 찌개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며 ‘일어나라, 밥 먹어라’를 ...
김년수(수필가,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한다.그런데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제쳐놓고 먼 곳에서만 찾고 있다.큰 행복보다는 작고 의미 있는 행복이 가치가 클 수 있다.작은 것을 볼 줄 아는 능력, 노자는 그것을 '견소왈명(見小曰明)'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작은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명철한 지혜'라는 뜻이다.중국 송나라 때 소강절(韶康節)이란 학자가 지은 청야음(淸夜吟)이라는 시는 작은 행복의 의...
김년수(수필가,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장마 날씨다. 잠시 비가 그치자 어둡던 하늘이 훤해지고 한 줄기 바람에 가로수 나무가 후루룩 물기를 턴다.어느 사인가 젖은 숲을 빠져나온 새들의 지저귐에 나도 코로나 19로 인해 휴강되었던 학원에 등록도 할 겸 서두르다 보니 쇼파 앞 탁자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온다.공공도서관에서 책 읽기 권장도서로 빨리 읽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책 읽기를 권장해야 되는데 아직도 보지 못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책이다. 다른 사람들과 돌려가면서 책 읽기를...
지상병담(紙上兵談)이라는 성어가 있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다’로 해석하는데, 경험이 없고 이론만 있는 병법은 실제 전쟁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조나라의 부흥을 이끌었던 조사(趙査)라는 장군이 있었다. 조사는 원래 나라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관리였으나 엄정한 일처리로 추천돼 혜문왕에게 발탁됐고, 장군이 된 후 수많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에게는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병법의 이론에 통달해 아버지인 조사조차 이론으로는 그에게 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조괄은 자신의 재능을 여기저...
김상룡(수필가) 파트 현관문이 좀체 열리지 않는다. 지척에 혼자 사는 노모를 찾아뵙는 일이 가물에 씨 나듯이 하니 늘 죄지은 마음뿐. 며칠 사이 나는 비밀번호를 또 잊었다가 겨우 기억했다. 아들의 기척에 반가운 목소리가 베란다에서 들려온다. 옹기들을 무슨 보물단지 모시듯 정성스레 닦으시는 모습을 한두 번 봐 온 것도 아니지만 여전히 당신은 그 일을 할 때면 부처님의 얼굴이다.엉거주춤 고된 허리를 세운 당신은 “그래도 이놈들은 끝까지 나하고 같이 가네!”라며 숨을 몰아쉰다. 장독을 닦는 일이 힘에 부치시는지 잠시 의자에 기댄 채...
우리는 너울 사이에 있다 정아경수필가 시골보다 도시가 좋다.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시골은 일찍 어두워졌다. 어둠이 내린 시골은 공간이 넘쳤다. 난 그 텅 빈 듯한 공간의 여백을 채울 자신이 없었다. 상상력도 부족했고, 놀거리도 부족했고, 친구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도시는 달랐다. 해가 져도 환했고,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고, 사람들로 왁자했다. 그 속에 서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완성된 것들 사이에서 나 역시 완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쉽게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
최종동수필가/편집국장 요즘 들어 장례식장에 가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친구 부모님이나 내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생로병사(生老病死),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의도적으로 죽음에 대한 얘기는 기피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세 가지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엄연한 철칙이다. 첫째 인간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두 번째 혼자 죽는다. 사고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다음 마지막은 빈손으로 죽는다.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 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