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희 시인 흰 꽃잎 차가운 비바람에 날리네 종종걸음 밟히네 웃어 비통하게 웃어 차가운 봄비에 젖어 몸을 떨면서 웃어 그때 내가 그렇게 웃었듯이 화사한 봄날 자욱히 피어난 꽃잎 안개 속에 가지는 보이지도 않아 향기 가득한 꽃구름 그 아래 가만히, 눈처럼 내리는 꽃잎을 밟으며 형형색색의 무리를 뜨거운 열기… 잔인한 희망 꿈을 빨리 깰수록 좋지 않아? 웃어, 크게 웃어
영원을 찾아 오고 가는 이들 사진 속으로 들어와 찔레꽃 향기는 매트릭스가 되었다 허공을 가르는 날갯짓 힘찬 백조의 춤사위는 그대로 연병장에 줄 선 병사의 경쾌한 나팔수 소리 소리 없는 음악이 되었고 한 찰나도 호흡 한 점 쉬어 본 적 없는 지구 어머니의 생명줄 놓지 않고 질기게 유전해 온 들꽃 오렌지 노을이 블랙홀로 빠져버린 찔레꽃 핀 5월의 백조의 비천 다차원 무지개 빛 속으로 스며드는 영혼의 목욕 태고의 시절부터 고요 적정은 기차처럼 영원으로 스며든다
이명희 시인 (사)국제문인협회 회원 살짝 바람이 분다 살짝 볼 옆을 지나면서 귓전에 이야길 한다 곧 가을이 올 거라고 살짝 바람이 분다 가슴을 스쳐 지나면서 찌는 더위가 갔듯 곧 어둠도 지나간다고 스치는 한줄기 바람이 산 넘어 빗물이 되고 고운 햇볕에 올라타 나무의 등을 보고 있다 그대 향기가 되어 조용히 걸어오고 있다 수국 산내음을 한 아름 안고서 살짝 바람이 분다 슬퍼하지 말라며 기쁜 날은 곧 온다고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김성철 시인 (사)국제문인협회 운영위원 조이고 얽매고 간힌 세월 확장의 본성에 부가되는 억압이 서럽다 씨의 언어는 삭제되고 어이 사람에게 맞추라 하느냐 천연의 숨이 끊어지는 날 모양이 고와서 예찬이라 땅 딛고 하늘을 향해 가는 길 타고난 이정 묻혔네 존재와 부재 사이 바람과 내밀한 교합은 지워지고 정밀에 쌓인 운영이여 비오는 날에는 젖어서 좋고 눈보라 치는 날에는 고요한 침묵이 정연한 생태라 정제된 틀 안에서 일탈의 날 그리움 쌓여가네
이문익 시인 노을에 젖은 황혼이 어슴푸레 꽃 가람 물들이면 소국의 짚은 향기 물결에 흔들리고 갈잎 발자국 따라 흐르는 만추의 공허함이 바람도 없는데 파문을 일으킨다 회상의 길목에 서성이던 가을은 갈잎 나룻배를 타고 낯선 시침 따라 길을 떠나고 일렁이는 적막 속 달빛에 젖은 갈색 그림자 스며드는 한기에 옷깃을 세운다 뒤돌아보면 신기루 같은 지난날들 스러져가는 산 그림자에 묻고 별이 피는 강물에 노란 장미의 미소 지우며 낙엽 쌓인 시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문익(시인) 함박눈이 이렇게 내리는 밤이면 나는 철부지 소년이 되어 하얀 들판을 지나 유년시절 동무들과 천렵을 즐겼던 꽁꽁 얼어붙은 시냇물 징금 다리를 건너 부엉이 우는 눈 덮인 적막한 산길을 마냥 거닐고 싶다 저 멀리서 미소 지며 날 기다리고 있는 너에게로 하얗게 눈사람이 되어 돌아가고 싶다.
김성철시인 / (사)국제문인협회 운영위원 여름 색조가 이지러진 시절이 오면 로댕을 품은 사유의 숲이 손짓한다 하늘이 상념처럼 깊어져 바다 빛깔이 되고 자연의 신경은 섬세한 가닥이 된다 안토시안 범벅인 잎새에 피곤한 기색이 서리면 바람의 스침에도 앓음이 되고 오는 이를 노래라 하고 가는 이는 수심이라 칭하는가 사변의 골로 미끄러지는 외로움이여 만남과 헤어짐은 늘 하나로 엉겨 붙은 샴쌍둥이라 손잡고 침상에 드는 인연 언젠가는 홀로 불면의 서러운 밤, 흩날리는 낙엽이라 가슴...
이문익 시인 10월에는 오염되지 않은 청량한 바람이 가슴을 젖시게 하시고 황금빛 들녘의 풍성함을 가득 안게 하소서 온갖 상처가 머물다간 자리마다 부드러운 햇살로 어루만져 아물게 하시고 새로운 날들로 가슴 부풀게 하소서 눈과 귀를 씻지 않게 말과 행동이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어버이들의 땀과 혼이 가득 베인 곡창지역의 드넓은 평야와 울창한 숲이 미명의 이름으로 이제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하소서 10월에는 가슴에 앙금을 모두 씻어내고 하루, 하루가 새 하늘을 여는 개천절이 되어 ...
21세기는 감히 택배시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사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음식물을 포함한 주문하는 모든 물건이 집으로 배달되는 참 축복받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모교인 대구의 K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에서 동문들을 위해 결성된 ‘경맥문학회(慶脈文學會)’가 1년에 한 번씩 종합문화예술지인 “경맥춘추(慶脈春秋)”를 발행한다. 동문 자신과 가족의 시, 수필, 소설, 사진, 서예, 그림과 평론 등을 게재해서 1년에 한두 번 발행되는 잡지이다. 올해는 세계도처에서 사는 모교의 동문들...
이자경 시인 너를 오래 기억할 수 있음은 내게 고통이 아니었어 그것은 오히려 축복이었지 보고 싶어도 침묵으로 보낸 수많은 날들이 고결함을 만드는 기다림이었나 봐 옷깃을 여미듯 꼭 다문 입 그 안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는 아픔이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으로 승화하여 기품 있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네 너를 오래 기억할 수 있음은 그리움을 가슴속 미소로 참아낸 세월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눈부신 아름다움 진주를 만드는 과정이었어
이문익시인 캔버스에코발트빛 하늘과한가로이 산을 넘는 흰 구름을 담아뒷동산에서 뛰어놀던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려보자 꼴 베고 콩서리 하던코흘리개 동무들도 부르고마당에 둘러 앉아음식 만드시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운 이들도 모두 모시어 초가 위로 두둥실 떠으로는 보름달을 바라보며동동주 한 사발로 회포를 풀면서밤이 이슥토록 옛 이야기꽃을 피워보자
박수나(시인/(사)국제문인협회 회원) 담담하고 차분한 심경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려오는 생의 흔적의 그리움이가슴을 살짝 조아려 주었건만 이젠 삶의 감정이 메말라져그토록 애틋했던 그리움도다 깊은 계곡 너머로 사라진허무한 머언 옛날 이야기 진실을 가슴에 묻어두고숨죽인 시야에서 헐떡이던어설픈 존재감의 옆모습마저허망함 실어 뽀얗게 증발하려 한다 아무리 찔러보아도 통증조차 없는 길고 깊은 슬픔의 호수처럼 미련한 나를 저버리지 않은 긴 세월이대로 의연하게 아픔 씹어 넘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