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에 갇힌 일상에서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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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에 갇힌 일상에서 일탈

김영중 수필가
‘창조문학’ 수필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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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아침이다. 창가에 서서 휘날리는 눈 구경을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눈 오는 것을 보고 있다고 하니, “얘 눈이 오는 날 왜 집에 있니? 밖으로 나가야지!” 한다. 친구는 낭만적인 사람이다. 갈 곳이 없다고 했더니, “왜 갈 곳이 없어? 버스 타고 공항엘 갔다 오면 되지!” 한다. 

친구는 내 집에 와서 며칠간 나와 함께 지냈기에 이곳 사정을 좀 알고 있다. 집 앞에 공항 가는 버스를 타고 공항에 내려서 차 한 잔을 하며 여행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자연도 보고 오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 공항까지 운행되는 좌석 버스가 있다. 그 버스는 구역 마다 서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몇 곳만 서고는 제주공항까지 멈추지 않고 쭉 가도 한 시간이 소요된다. 공항까지 달려가는 길 좌우 편에는 지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울창한 아열대 나무와 대나무숲, 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자연환경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친구는 버스를 타고 왕래하는 길에 눈 내리는 경치를 즐기라는 것이다. 나는 친구와 전화를 끊은 후, 서둘러 움직이며 공항 가는 버스에 탑승한 승객이 되어 눈 오는 야외경치를 감상하며 공항엘 도착했다. 

공항 내에는 출발하고 도착하는 사람들, 모래알처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붐비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옛날 70년대 공항의 모습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 당시 공항의 모습은 이별이 슬퍼,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가슴 짠한 모습들이 주로 공항 내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그런 풍경을 볼 수 없는 시대로 바뀐 것은 디지털 문화의 혜택이 아닌가 싶다. 

한참 동안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버스에 탑승을 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는 제주의 풍광에 빠져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하차를 알리는 벨을 누르지 못해 내리지 못한 나를 태운 버스는 마냥 생소한 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버스가 멈춰 내가 내린 곳은 인적이 끊어지고 거리는 적막에 빠져 있었다. 마치 거래가 파한 후의 장터 같은 느낌이 드는 거리였다. 

강한 바람과 추위로 온몸이 떨려왔고 아무리 둘러봐도 집으로 가는 방향의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일순간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 신세가 되어 길에서 방황하는 내 골이 참으로 처량하고 한심스러웠다. 그런 처지에 무작정 버스 길을 따라 걷고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한 상점 앞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로 한 여인이 보였다. 눈앞에서 막 으르며 차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뛰어간 내가 창문을 두드리자 여인이 창문을 내렸다. 나는 대뜸 제주국제교회를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내 아파트 근처에 있는 그 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아, 그 교회요 여기서 한참 가야해요, 여기서 쭉 내려가셔서 좌로 꺾고 또 우로 가시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그녀는 떠났다. 

그녀가 일러준 대로 걸음을 옮기고 옮겨도 교회는 나타나지 않았고 허허벌판만 보일 뿐이었다. 내 몸은 점점 기력이 떨어졌고 주저앉고 싶어지며 고통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때 차 한 대가 길가에 서면서 열린 창으로 “할머니 어서 타세요! 제가 모시다드릴 께요.”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까 그 일을 일러 준 그 여인이었다. 세상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나는 냉큼 차에 오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도 이 지역에 살면서도 자주 길이 헷갈려 헤맨다고 했다.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만이 남을 향한 이해심이 크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으로 개입하면서 사람들은 서로서로 견제하면서 한 개체로 살고 있는 지금 아닌가. 그런데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를 만나 뜨거워지는 감동의 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배려로 무사히 아파트에 도착했다. 감사의 작은 보답을 하고 싶어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그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인사를 남기며 떠났다. 나는 한동안 서서 떠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여러 경우에 은혜를 입는다. 오늘 내게 은혜를 베푼 저 여인도 도움의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막에 갇힌 내 일상에서 벗어난 오늘의 행위는 노년의 일탈이었다. 적막하고 평온한 일상에서 느끼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깨달았다. 행복의 지속을 잃은 하루의 일탈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적막, 그 의미를 알게 되는 노년이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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