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경포 나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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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포 나루에서

김형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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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늦가을, 유서 깊은 개경포 나루를 찾았다.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는 길은 늘 가슴 설레고 흥미진진하다. 눈이 부시게 피어난 하얀 억새꽃, 바람에 뒹구는 새빨간 단풍잎이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시원한 강바람 타고 강물은 햇살에 반짝이며 쉼 없이 흘러간다.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강둑을 따라 떠나가는 가을과 함께 하염없이 걸었다. 

고령 개진면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은 개경포(開經浦)는 오랜 역사를 품고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신비한 팔만대장경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일찍이 낙동강을 이용한 수운의 요지로서 소금과 곡식 등 물산을 운반하던 번창한 선창이었다. 지명도 여러 번 바뀌었다. 개산포, 개경포로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경” 자를 빼버려 개포 나루가 되었다. 최근에 경전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개경포로 다시 개명했다. 강폭과 수심이 넓고 깊으며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묵객들이 뱃놀이하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인근 청룡산 정상 청운각에 올라 굽이치는 낙동강을 바라보면 그 옛날 노랫가락 속에 노 젓는 뱃사공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강 건너 멀리 도동서원이 눈앞에 들어온다. 

개경포는 호국의 불심으로 몽골을 물리치기 위해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새긴 팔만대장경이 강화도를 떠나 서해와 남해를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온 배가 도착한 현장이라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 내려진 팔만대장경 경판은 운반을 감독하는 관리와 독경을 하면서 행렬을 인도하는 스님, 경판을 머리에 이거나 등짐을 진 남녀 신도들에 의해 40Km나 떨어진 먼 해인사로 이운(移運)했다고 한다. 그들은 개경포에서 해인사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택했다. 그 지름길은 개경포 나루에서 동쪽으로 야트막한 열뫼재를 넘어 대가야읍을 지나 낫질재를 넘어 합천 야로로 갔거나, 아니면 회천에서 갈라지는 안림천을 따라 반룡사 계곡을 지나 미숭산을 넘어가는 길을 택했으리라. 험난하고 고된 걸음은 오직 불심의 땀방울로 씻어내었으리라. 해마다 개경포에서는 경판을 옮겨가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해인사에서는 경판을 머리에 이고 대적광전 앞마당 석탑을 도는 정대불사(頂戴佛事)가 열리고 있다. 

고령군은 이런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2001년 개경포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이운 행렬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이란 탑을 세우고 경판을 운반해 온 선박의 모형을 전시해 놓고 있다. 넓은 잔디광장에는 개경포의 유래비와 팔각정, 주막촌과 원두막, 탐방로와 휴식공간이 아담하게 마련되어있다. 주막촌에 들러 감자전과 도토리묵을 시식하면서 넓게 펼쳐진 강변을 감상하고 옛날을 회상해 봄도 멋있고 좋으리라. 

개경포에는 산과 강을 따라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아름다운 자전거길과 너울길이 부례 관광지와 대가야 수목원까지 연결된다. 부례 관광지는 넓은 부지에 숙박시설과 체육시설,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친환경 복합 공간으로 강변 문화관광 개발 선도사업에 선정돼 조성되었다.

목판 인쇄술의 새벽을 열었던 팔만대장경은 지금도 수많은 신비 속에 싸여 있다. 무려 81,258장에 5,200여만 글자가 새겨진 경판으로 하루에 꼬박 8시간을 30년간 읽어야 완독한다는 불가사의한 팔만대장경이다. 쌓아놓으면 백두산 높이와 같고, 이으면 150리나 되는 거리가 된다고 한다. 신이 내린 선물인가, 인간이 만든 걸작품인가. 흥미롭고 신비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아! 이를 어이하리! 팔만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때 완성되어 강화도에서 축하 법회를 열었다는 것과 조선 태조 때에는 강화도 선원사에서 잠시 한양 지천사로 옮겼으며, 이듬해 해인사에서 경판의 인쇄를 시작했다는 것만이 남아있는 문헌상 기록의 전부라고 한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제작했으며 해인사로 언제 어떻게 왜 옮겼는지. 아직도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다. 

최초로 제작된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은 호국 불교의 신앙으로 어렵게 완성되어 팔공산 부인사에 고이 보관되어 오다 몽골의 2차 침입 때 소실되었다. 격랑의 세월, 이런 충격을 받은 아픔 때문에 다시 정성껏 새긴 팔만대장경은 제작 장소와 시기, 과정, 이송 경로 등을 모두 극비에 부치고 문헌으로 남기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국보로 지정된 해인사 대장경판과 장경각은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심오한 진리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법인가.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열리는 것인지!

 


고령 쌍림 출신

<문학세계> 신인상 등단, 경북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박사)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한국가곡 <그리운 대가야> 작시, 전 고령군지 편집위원,

수필집: 

 <어머니의 그림자>, <빠알간 석류알>, <보랏빛 맥문동꽃이 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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