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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용 의원, ‘아동 복지법’ 발의미래통합당 정희용 의원(고령·성주·칠곡)은 지난 7일, 아동학대 예방과 위기 아동의 조기발견,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충남 천안과 경남 창녕 등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져 사회적 문제로 부상함에 따라 피해 아동들의 보호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며, 가정 내 학대 피해 아동을 원래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원가정 보호 원칙은 재학대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시·도지사가 관할구역의 아동 수와 지리적 요건을 고려해 시·군·구를 통합해 하나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설치해 운영할 수 있게 돼 있어, 아동보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가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지속돼 왔다. 또한, 원가정 보호 원칙에 따라 아동복지시설의 장은 친권자가 있는 경우 보호아동의 가정복귀를 위해 적절한 상담과 지도를 하게 돼 있어, 친권자에게 보호받기 어려운 아동이 다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정희용 의원은 해당 법안을 발의해, 지방자치단체는 학대받은 아동의 치료, 아동학대의 재발방지 등 아동학대예방을 담당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시·도와 시·군·구에 1개소 이상을 두도록 해 아동보호 인프라 확충하고, 아동복지시설의 장은 보호아동이 가정복귀 전제가 아닌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상담과 지도를 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희용 의원은 “아동학대 예방과 위기 아동의 조기발견, 피해 아동들이 안전한 양육환경과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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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진화서상조<서인·소설가> 그때를 후회하시나요이젠 때가 늦어어찌할 수가 없지요때늦지 않은 그때가 있다면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어요?……그렇다면 지금이 그때예요훗날엔 어차피 지금 이 순간을 그때라고 부를 테니까요지금, 사랑하세요다 뿌리치고이젠 자신을 사랑하세요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내 마음을 송두리째 맡기는 일이니자칫 껍데기로 남을 수도 있어요자신의 사랑보다 더 미더운 사랑은 없을 테니자신과 사랑을 나누세요후회 속의 그때도그렇게 보상 받는 것이에요 작가 프로필 2000년 ‘문예사조’시부문 등단2001년 ‘대구문학’ 소설부문 등단대구문인협회·솔뫼문학회 회원한국문협 고령지부 소설분과위원장한국문협 고령지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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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이이재천<시인·한자지도사> 우리집에는 19년간이나 우리 가족 곁에서 갖은 재롱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 온 애완견 우람이가 있었다.지금(2018년)으로부터 21년 전 둘째딸이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다면서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일본산 수컷 강아지를 가져와 우리 집 식구가 된 녀석이다.요놈이 어릴 때부터 자태가 마치 진돗개 축소판이라 귀엽기 그지없고 또한 영악하여 가족들 중 자기에게 사랑을 더 주는 사람을 용케도 일아 둘째가 없을 때는 엄마에게 재롱을 피우다가 둘째가 퇴근해 오면 언제 보았냐는 식으로 쪼르르 둘째에게 잽싸게 달려가곤 하였다.나는 본시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른다. 특히 고양이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도 강아지는 싫어함이 조금 덜한데 애들과 마누라가 녀석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기에 그냥 참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그런 내 맘을 제 눈에도 다 보이는 모양이다. 녀석은 평소에는 전혀 날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다른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퇴근하는 나를 보고 마치 낯선 도둑이라도 되는 양 앙칼지게 짖어대기 일쑤다.그런데 내가 매번 퇴근할 때마다 짖어대는 녀석이 조용할 때가 있다. 이상하다싶어 방문을 열어보면 녀석만 두고 가족들이 외출하고 없을 때다.영악한 녀석은 혼자 있을 때 짖어대기라도 하면 나에게 욕먹을 게 뻔하고 체벌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그런 날은 알아서 꼬리를 착 내리는 것이다. 내 곁에는 잘 오지도 않는 녀석도 내가 국수나 라면을 먹을 때는 슬그머니 내 곁에 와서 날 쳐다본다. 그러다 애써 무시라도 할라치면 아예 내 무르팍에 앉곤 한다.유별나게 밀가음식을 좋아하는 녀석이 인심 좋은(?) 나에게 동량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인줄 뻔히 알기에 마누라 눈치를 봐가며 조금씩 준다. 이때가 녀석과 친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개의 수명은 보통 10~15년이라 한다. 우람이는 우리 집에 와서 가족들의 지극한 사랑으로 17년을 한 가족으로 살았다. 가끔 녀석을 데리고 집 앞 공원에 산책이라도 할 때면 지나가던 많은 이들이 부러움을 한껏 사서 즐겁게 하곤 했다.우람이가 14살 되었을 때 막내 녀석이 군에 입대하면서 우람이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우람아! 내가 제대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그래이”막내의 소망대로 녀석은 막내가 개구리복을 입고 씩씩하게 돌아오고도 1년여를 더 우리 곁에 있다가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해 11월 첫 주일 저녁, 그날따라 우람이가 괜스레 그리워서 일찍 귀가한 나의 보람도 없이 거짓말처럼 조용히 저세상으로 갔다.평소처럼 내가 집에 갔을 때 짖어야 될 녀석이 짖지도 못하고 힘없이 누워 있기에 이제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알고 지난세월 나에게 안기기를 거부하던 녀석을 안아 주었을 때 날 바라보던 녀석의 눈빛을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뼈만 남은 몰골, 흐릿한 눈빛으로 녀석은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너무 짖기만 해서 미안해요, 안녕히 계세요”라고……지금도 나는 우림이가 죽음을 앞두고 나와의 이별을 위해 꺼져가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애써서 기다려 준 것이라고 믿고 있다.사람이든 그것이 동물이든 익숙한 것들과의 영별(永別)은 언제나 슬프고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도 내 스마트 폰에는 우림이의 건강할 때의 모습이 담겨 있다.“우람아! 저승에는 인간과 동물이 가는 곳이 다르다는데 어쩌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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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명장이 전통방식으로 가야금줄 제작郡은 우륵박물관에서 7월 10일부터 24일까지 고령군 가야금명장이 전통방식으로 가야금줄을 제작한다. 명주실을 꼬아 만드는 가야금줄은 1년 중 건조하지 않고 습기가 많은 7월에만 제작된다. 실제로 가야금줄을 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셈이다.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생사로 만들어지는 명주실은 누에고치 30개로 한 가닥의 줄이 만들어 진다. 일정한 굵기에 맞게 합쳐진 세 줄을 다시 한 줄로 단단하게 꼬면 명주실이 된다. 꼬아진 명주실을 소나무방망이에 감고 반나절 정도 물에 불린 후 수증기로 쪄내고 햇볕에 말리면 비로소 가야금줄이 탄생한다. 우륵박물관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철저한 소독, 거리유지 등의 방역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관람객들이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다. 이번 여름, 우륵박물관 전시 관람과 함께 가야금줄 제작 시연을 함께 본다면 가야금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는 10일∼24일 9시부터 17시까지이며 우륵박물관내 가야금줄 제작 체험장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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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주택·건축물분 재산세 납부해야郡은 주택과 건축물 소유자에게 7월 정기분 재산세 34억 2,200만원을 부과하고, 7월 31일까지 금융기관에 납부해 줄 것을 군민들에게 당부했다.이번에 부과한 재산세 중 주택분이 12,059건에 6억 4,072만원, 건축물분이 4,974건에 27억 8,223만원이다.재산세는 6월1일 현재 주택이나 건축물을 소유한 자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주택분 재산세가 10만원을 초과하면 7월과 9월에 각 1/2씩 나눠 부과하며, 10만 원 이하일 경우에는 7월에 모두 부과하고, 토지분 재산세는 9월에 부과하게 된다.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의회의결을 통해 2020년 중 임대료를 인하한 착한 임대인의 경우 신청을 통해 최초 월 임대료 인하 금액만큼 건축물분 재산세를 감면해 납세자의 부담을 완화했다. 재산세 납기는 7. 16 ~ 7. 31.일까지이며, 납부는 고지서 없이도 은행 현금지급기(ATM)에서 현금카드, 통장 또는 신용카드로 납부 할 수 있으며, 위택스(www.wetax.go.kr), 가상계좌 이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편리하게 조회하고 납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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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유혹쌍림면 쌈지공원에 만개한 해바라기가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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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日 독도 침탈행위 강력 규탄22일 도청에서 규탄성명서 발표 울릉도 범도민 규탄결의대회 열려 “일본은 대한민국 땅 독도 침탈을 즉각 중단하라”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지난 22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규탄성명서를 발표하고 일본 시마네현이 오후 1시 30분 강행한 소위 ‘죽도의 날’ 행사를 강력 규탄하고 독도 영토도발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이 자리에는 독도 관련단체 대표, 독도수호 중점학교 교사와 학생 등 10여명이 함께 했다.김 지사는 성명서를 통해 소위 ‘죽도의 날’행사를 정례화해 2013년부터 6년 연속 중앙정부 차관급 인사인 내각부 정무관이 참석한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시마네현 조례를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또한, 지난 1월 25일 도쿄 중심가에 개설한 '영토ㆍ주권 전시관'의 즉각 폐쇄와 2월 14일 발표한 '일본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 초안'의 독도영유권 명기를 즉각 삭제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이어, 전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독도를 제대로 알고 지켜야 한다”면서 “독도가 우리민족의 삶이 녹아 있고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평화의 섬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범도민 규탄결의대회에는 남진복 경북도의회 독도수호특별위원회 위원장, 최수일 울릉군수, 정성환 울릉군의회 의장, 지역 기관단체장 및 주민 등 500여명이 참여했다.-경상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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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와 열정으로 보답하겠습니다"지난 10일 경북도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에 당선된 김영삼 위원장 김영삼 경북도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당선고령출신으로 도내 공무원들의 든든한 버팀목 제8기 경북도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선거에 김영삼(50, 행정6급)주사가 당선됐다.김영삼 위원장은 우리 고장 출신 공무원으로 지난 10일 도청공무원노동조합선거에 당선돼 앞으로 2년간 도내공무원들의 복지와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김 위원장은 당선소감을 통해 “존경하는 도청 조합원 여러분! 10일 제8기 경북도청노동조합선거에서 조합원 여러분의 선택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선거 기간 동안 혁명적 변혁보다는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과 거창한 것을 넘어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삶에 대한 갈증을 보았다. 저희들은 제7기 도청노동조합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초행길에 속도위반도 하고 접촉사고도 내고 길을 잘못 들어서 유턴을 하는 등 굴곡과 시련의 여정이었다. 이 모든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가르침으로 깨닫고 조합원의 뜻을 헤아리겠다“고 전했다.또 그는 “이제 선거는 끝났다. 영원한 승자와 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실체는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이기에 김영삼, 박준일은 오늘 제8기 경북도청노동조합 위원장 당선인 자격에서 조합원 여러분께 분명히 약속드린다”면서 “조합원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를 발판으로 도청가족의 아프고 가려운 일들에 대해 즉각 응답하고 책임을다하는 노동조합으로 거듭나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끝으로 김 위원장은 “지금 우리 조합원들 앞에는 새로운 도정과 더욱 치열해지는 외부의 압력 그리고 급변하는 근무환경으로 인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놓여있다. 지금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난제(難堤)들로부터 조합원 권익을 반드시 지킬 것이며 끝으로 제8기 도청노동조합 2년은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진단해 최선의 처방으로 조합원 여러분들에게 단비가 내리는 호우시절(好雨時節)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임은 물론 뜨거운 피와 열정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했다.한편 이번선거 사무총장에는 박준일(47. 녹지6급)주사가 당선, 앞으로 김 위원장과 함께 제8기 노동조합의 길을 함께 하게 됐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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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15일까지 겨울철 자연재난 대책기간 운영경북도, 겨울철 자연재난 총력 대응체계 가동 경북도는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11월 15일부터 내년 3월 15일까지 겨울철 자연재난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총력 대응체제를 가동한다.대설 예비특보 단계부터 상황판단회의를 통해 비상근무체제 가동을 시작으로 24시간 선제적 상황관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노후주택, 조립식철골건축물 등 붕괴우려 건축물 199개소에 대해 책임담당자를 지정하여 특별관리 하는 한편 고립예상 산간마을 지정(96개마을) 관리, 폭설시 등·하교 시간 조정, 노숙인·쪽방거주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종합지원센터 운영 등을 집중 관리하여 인명피해를 최소화한다.또한, 제설자재 7,015톤, 제설장비 2,491대를 확보하고 제설취약구간 157개소를 지정했으며 강설과 동시에 제설이 가능하도록 전진기지 39개소를 설치하는 등 신속한 제설 대응체계를 마련해 놓았다.폭설시 농어업 시설물 보호를 위해 농어민 등 시설물 소유자 휴대폰 DB 등 예·경보체계 구축을 통해 각종 시설물 피해예방을 위한 대응체계도 구축했다.피해지역에 대한 신속한 복구지원을 위해 협약 체결된 민?관?군의 장비, 자재, 인력을 동원하고 재난지원금을 긴급 지원하는 한편 세금감면, 융자 등 간접지원을 통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나가기로 했다.도민들이 재난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도록 TV방송, 재난문자(CBS), SNS 등을 통해 전파하고 국민행동요령도 적기에 홍보하는 등 도민스스로 신속하게 대비?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재난자원공동활용시스템’을 통해 제설 자재·장비?인력 확보 및 사용내역을 실시간 파악하여 제설물자 부족 지자체에 긴급 지원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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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끼는 대가야 여행! 유적과 유물로 보는 대가야의 향기고대 삼국의 문화에 대해 고구려는 씩씩하고 정열적, 백제는 우아한 아름다움, 신라는 소박미와 조화미를 언급한다. 대가야 문화도 고분과 그 속에서 나온 토기?장신구?무구?말갖춤 등에서 ‘대가야 양식’으로 말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대가야 토기는 부드럽고 안정된 곡선미, 장신구에서는 정밀한 세공기술을 보여주는 화려함,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투구에서는 무사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대가야의 유물에서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함께 갖춘 장인의 혼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단절되지 않고 가야금처럼 신라에 계승되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 대가야의 왕과 귀족 등 지배층들의 무덤인 지산동고분군이다.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는 산 위에는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석축산성인 주산성이 있다. 그 남쪽으로 뻗은 능선위에는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대가야 왕들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 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에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700여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가야지역 최대의 규모인 이 고분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조만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산동고분군 중 대표적인 고분이 지산동 44호분이다. 이 고분은 지금부터 약 30여년 전에 발굴 조사되었다. 규모는 둘렛돌을 기준으로 지름이 30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순장무덤이다. 그 내부는 가운데의 으뜸돌방과 2개의 딸린돌방을 중심으로 주변에 32개의 순장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이 무덤에는 4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사람의 왕을 위해 순장되었다. 순장된 사람들은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인물들이었으며, 시종?창고지기?호위무사?마부?농부 등과 같은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지산동고분군은 현재까지 10여기의 대형 고분들이 발굴 조사되었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대가야의 독특한 토기와 철기, 말갖춤을 비롯하여 왕이 쓰던 금동관과 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 등이 출토되어 대가야의 발전은 물론 문화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주목할 만한 대가야시대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먼저, 지금까지 대가야의 궁성지로 추정되어오던 대가야읍 연조리 일원에서 궁성으로 추정되는 토성과 해자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해자는 성벽 밖에 적이 접근하기 어렵게 파 놓은 참호시설로써 왕성을 방어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어 수단 기술이다. 이를 통해 이곳이 대가야 궁궐터, 어정이 있는 궁성지로 대가야의 행정적 중심지임을 입증할 근거가 확보된 것이다. 봉화산에서는 6세기 무렵 축조된 것으로,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진 주산성과 동일한 기술이 적용된 석축산성이 발견되었다. 이 일대는 대가야의 왕도와 최단거리에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낙동강변의 관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전성기의 대가야는 합천?거창?함양?남원?순천 등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국가였다. 이와 같은 넓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의 발전이 백제나 신라와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대가야 토기에 ‘대왕(大王)’이라는 글씨와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란 글씨가 새겨진 것이 있다. 이는 수도 고령에 있는 대왕이 하부라는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가야는 백제?신라는 물론 중국?왜와도 문물을 교류하면서 발전하였다. 고아동벽화고분의 무덤구조와 연꽃무늬, 지산동 44호분에서 출토된 청동그릇과 등잔 등은 백제와의 교류를 보여준다. 또 야광조개국자는 왜, 지산동 45호분의 고리칼은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나타낸다. 일본 열도 각지에는 대가야계통의 토기와 철기들이 출토되고 있어 대가야문화가 활발히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를 대표하는 가야금은 악성 우륵(于勒)이 가실왕(嘉實王)의 명을 받아 제작했다. 재질은 오동나무이며, 명주실로 12줄을 만들었다. 가야금의 둥근 윗 판은 하늘, 평평한 아랫판은 땅을 상징하며, 그 속이 빈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뜻한다. 우륵은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12곡을 작곡하였는데, 지금도 그 곡명이 전해온다. 대가야읍 쾌빈리의 금곡(琴谷)-‘정정골’은 우륵이 제자들과 함께 가야금을 연주한 곳으로서 가야금 소리가 정정하게 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가야 사람들은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건국신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산신과 천신, 태양신 등을 숭배하였다. 대가야시대가 되면 순장무덤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의 삶이 죽은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도 가졌다. 또한 불교를 받아들여 왕의 무덤에 연꽃을 그리거나 향나무를 담은 그릇을 넣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건축물의 이름을 불교식으로 붙이고, 우륵은 불교의식을 행하는 가야금 연주곡을 작곡하였다. 대가야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당시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이다. 먼저, 토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나고 변천하는데, 고령을 비롯하여 대가야가 차지했던 영토에는 신라나 백제와 구별되는 토기들이 출토된다.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등으로 대표되는 ‘대가야양식 토기’는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안정감이 특징이다. 굽다리접시는 접시가 납작하고 팔(八)자 모양으로 벌어지는 굽다리에는 좁고 긴 사각형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다. 긴목항아리는 긴 목이 부드럽게 좁아들어 몸체부분과 S자형 곡선을 이루며 여러 겹의 정밀한 물결무늬가 그려져 있다. 바리모양 그릇받침은 대야 같이 넓고 깊은 몸체에 여러 겹의 물결무늬와 솔잎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대가야 양식 토기는 서기 400년대 초에 완성되어 합천?남원 등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 오늘날의 영호남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대가야 양식 토기가 발견되는 것은 대가야의 문화적 역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대가야는 가야 여러 나라 중에 유일하게 금관과 금동관이 여러 개 출토되었다. 대가야의 최고 지배층이 쓰던 관은 신라 등 다른 나라의 관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즉, 신라의 관이 나뭇가지와 사슴뿔모양인데 반해 대가야의 관은 풀잎이나 꽃잎모양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대가야의 관은 지산리30호분과 32호분 등에서 나온 금동관과 현재 삼성미술관과 일본의 동경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는 금관이 있다. 대가야의 전성기에는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 금귀걸이가 크게 유행했다. 귓불에 매다는 가는 고리 밑에 흔들거림이 좋은 사슬로 속이 빈 공모양의 중간 장식을 달고, 다시 그 아래에도 사슬로 연결하여 작은 금알갱이를 붙여 꾸민 여러 가지 형태의 끝장식을 달았다. 끝장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화려하게 변화한다. 대가야의 고분에서는 고리칼, 쇠창, 쇠도끼, 화살촉 등 많은 무기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은 전투에서 직접 사용되기도 했지만 묻힌 사람이 살았을 때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고리칼의 손잡이에는 금이나 은으로 용과 봉황, 넝쿨무늬(唐草文), 거북등무늬 등을 화려하게 새겨 놓았다. 쇠창 중에도 나무 자루를 꽂는 쪽에 은판으로 둘러 장식한 것도 있다. 특히, 갑옷과 투구는 전투할 때 사용되는 것이지만 평소에는 입은 사람의 권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에는 작은 쇳조각을 연결하여 만든 것과, 대쪽같이 길쭉한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 있다. 또 요즘의 모자처럼 챙이 달린 투구도 있다. 몸통을 보호하는 갑옷도 작은 쇳조각을 연결하여 만든 비늘갑옷이 있고,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철판을 연결하여 만든 철판갑옷이 있다. 이밖에도 목이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철판 가리개도 있다. 투구와 갑옷을 만들 때 쇳조각을 연결하는 방법은 쇠못이나 실, 가죽끈 등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갑옷과 투구는 신라보다 가야지역과 일본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어, 대가야와 왜의 교류관계를 알 수 있다. 대가야의 말갖춤으로는 말고삐를 연결하기 위해 입에 물리는 재갈과 발을 끼우는 발걸이가 있고, 안장의 앞 뒤판에 붙인 장식, 띠를 연결하는 고리와 말띠 드리개, 말방울 등 매우 다양하다. 나무나 가죽, 천으로 된 화려한 장식은 썩고 남아있지 않지만 금속으로 된 말갖춤만 보아도 대가야에서 말을 화려하게 꾸미는 풍습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가야의 말갖춤은 왜에도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가야 사람들의 의식주 생활은 어떠했을까.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은 현재의 대가야읍내에 벽돌과 기와를 사용하여 큰 왕궁건물과 집을 짓고 생활하였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산기슭이나 골짜기 곳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특히, 일반인들은 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움집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바닥에는 한쪽으로 치우쳐 화덕자리가 있고, 벽을 따라 연기가 양쪽으로 나가도록 한 난방시설을 만들어 사용했다. 대가야 사람들은 대가천과 안림천, 회천 등 낙동강 유역 주변의 넓은 들판을 이용하여 주로 농사를 지으면서 오곡을 주식으로 삼았고 산나물과 과일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가축을 기르며 물고기도 잡고 산짐승을 사냥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대가야 무덤에서 낫?괭이?쇠스랑 등의 농기구와 함께 보리?쌀?기장?복숭아 등의 씨앗이 나오고, 말?닭?꿩?민물고기 등의 뼈가 출토되는데서 알 수 있다. 또한 토기 속에서 대구?청어?고둥?소라?굴?게 등 바다생선과 조개류가 출토되어 멀리 바다에서 잡은 먹을거리도 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대가야 사람들의 무덤에서는 실을 만드는 도구인 가락바퀴가 흔히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베틀을 이용하여 옷감을 만들었다는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갑옷이나 쇠창, 금동관, 말방울 등 금속유물의 표면에는 가죽이나 직물의 흔적이 엉겨 붙은 채로 남아있기도 한데, 비단처럼 올이 고운 직물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왕족을 비롯한 지배층에서는 비단옷도 입었다고 생각된다. 옷차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본서기≫에는 대가야 사람들은 신라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6대 520년간 존속하던 대가야가 562년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가야는 멸망하여 사라졌지만, 대가야가 일구었던 역사와 문화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유려한 대가야 토기를 만들던 장인정신은 이후 고려청자와 분청사기로 계승되었으며, 우륵의 가야금은 신라로 전해져 오늘날 우리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악기로 자리하고 있다. 또, 신라와 대적하여 끝까지 맞서 싸웠던 대가야의 저항정신은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어김없이 의병정신으로 승화되었다. 대가야의 철기문화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의 철강강국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으며, 낙동강?섬진강을 통해 바다를 넘나들던 개척정신은 수출입국을 통한 선진국가로의 도약을 견인해 내었다. 대가야는 우리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게시물은 주간고령님에 의해 2017-10-10 19:54:56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