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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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시인·한자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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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시인·한자지도사>

 

 

우리집에는 19년간이나 우리 가족 곁에서 갖은 재롱으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해 온 애완견 우람이가 있었다.
지금(2018년)으로부터 21년 전 둘째딸이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다면서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일본산 수컷 강아지를 가져와 우리 집 식구가 된 녀석이다.
요놈이 어릴 때부터 자태가 마치 진돗개 축소판이라 귀엽기 그지없고 또한 영악하여 가족들 중 자기에게 사랑을 더 주는 사람을 용케도 일아 둘째가 없을 때는 엄마에게 재롱을 피우다가 둘째가 퇴근해 오면 언제 보았냐는 식으로 쪼르르 둘째에게 잽싸게 달려가곤 하였다.
나는 본시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른다. 특히 고양이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도 강아지는 싫어함이 조금 덜한데 애들과 마누라가 녀석을 끔찍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기에 그냥 참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그런 내 맘을 제 눈에도 다 보이는 모양이다. 녀석은 평소에는 전혀 날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다른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퇴근하는 나를 보고 마치 낯선 도둑이라도 되는 양 앙칼지게 짖어대기 일쑤다.
그런데 내가 매번 퇴근할 때마다 짖어대는 녀석이 조용할 때가 있다. 이상하다싶어 방문을 열어보면 녀석만 두고 가족들이 외출하고 없을 때다.
영악한 녀석은 혼자 있을 때 짖어대기라도 하면 나에게 욕먹을 게 뻔하고 체벌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그런 날은 알아서 꼬리를 착 내리는 것이다. 내 곁에는 잘 오지도 않는 녀석도 내가 국수나 라면을 먹을 때는 슬그머니 내 곁에 와서 날 쳐다본다. 그러다 애써 무시라도 할라치면 아예 내 무르팍에 앉곤 한다.
유별나게 밀가음식을 좋아하는 녀석이 인심 좋은(?) 나에게 동량이라도 얻어먹을 심산인줄 뻔히 알기에 마누라 눈치를 봐가며 조금씩 준다. 이때가 녀석과 친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개의 수명은 보통 10~15년이라 한다. 우람이는 우리 집에 와서 가족들의 지극한 사랑으로 17년을 한 가족으로 살았다. 가끔 녀석을 데리고 집 앞 공원에 산책이라도 할 때면 지나가던 많은 이들이 부러움을 한껏 사서 즐겁게 하곤 했다.
우람이가 14살 되었을 때 막내 녀석이 군에 입대하면서 우람이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우람아! 내가 제대할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그래이”
막내의 소망대로 녀석은 막내가 개구리복을 입고 씩씩하게 돌아오고도 1년여를 더 우리 곁에 있다가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해 11월 첫 주일 저녁, 그날따라 우람이가 괜스레 그리워서 일찍 귀가한 나의 보람도 없이 거짓말처럼 조용히 저세상으로 갔다.
평소처럼 내가 집에 갔을 때 짖어야 될 녀석이 짖지도 못하고 힘없이 누워 있기에 이제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알고 지난세월 나에게 안기기를 거부하던 녀석을 안아 주었을 때 날 바라보던 녀석의 눈빛을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뼈만 남은 몰골, 흐릿한 눈빛으로 녀석은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너무 짖기만 해서 미안해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지금도 나는 우림이가 죽음을 앞두고 나와의 이별을 위해 꺼져가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애써서 기다려 준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이든 그것이 동물이든 익숙한 것들과의 영별(永別)은 언제나 슬프고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도 내 스마트 폰에는 우림이의 건강할 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람아! 저승에는 인간과 동물이 가는 곳이 다르다는데 어쩌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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