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몰래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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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몰래 택배

조희수<수필가>
(사)국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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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감히 택배시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사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음식물을 포함한 주문하는 모든 물건이 집으로 배달되는 참 축복받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모교인 대구의 K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에서 동문들을 위해 결성된 ‘경맥문학회(慶脈文學會)’가 1년에 한 번씩 종합문화예술지인 “경맥춘추(慶脈春秋)”를 발행한다. 동문 자신과 가족의 시, 수필, 소설, 사진, 서예, 그림과 평론 등을 게재해서 1년에 한두 번 발행되는 잡지이다. 올해는 세계도처에서 사는 모교의 동문들이 세계 최대 온라인 구매 공간인 미국이 아마존사이트(www.amazon.com)에서 전자책(e-book)을 구입하여 볼 수 있도록 아마존에 전자책 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봄에 계간지 “국제문예”에서 늦깎이 등단을 한 덕분에 졸작 수필 두세 편 정도가 매호에 실리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현재 경맥문학회의 차석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2020년 말경에 “경맥춘추”는 특집으로 ‘6·25 한국전쟁과 70주년’과 ‘2·28의거 60주년과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옥고들이 수록된 제5호가 발간되었다. 보통 잡지가 발간되면 먼저 기고하신 동문 작가들에게 미리 책을 우송하고 일반 동문들에게는 신년 교례회나 동문체육대회 같은 동창회 행사가 있을 때 배포한다. 그러나 연말인지라 ‘경맥문학회 송년회’와 “‘경맥춘추’ 제5호 출판기념회”를 겸한 행사를 하면서 원고를 제출한 작가들과 일반 동문들에게 함께 나누어 주려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계획했던 모든 모임 행사가 취소되었다. 

정성을 모아서 책은 출간되었는데 배포 방법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책을 수령할 수 있는 회원들의 주소를 확인하고 우편으로 발송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 산하 소규모 모임이 거의 다 그러하듯이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 터인지라 출판인쇄비 외에 추가적인 비용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임원회에서 부회장으로서의 자발적인 제안을 했다. 지방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일반 우편이나 택배로 주내지만, 서울과 위성도시에 사는 동문들에게는 때도 연만연시인 데다 평소에 뵙지 못하는 선배님들께 인사도 드릴 겸해서 부회장인 내가 직접 댁을 방문하여 책을 전달하면 좋겠다고….

나의 의도는 이러했다. 

1) 서울 거주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지하철 무임승차할 수 있는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가 발급되는데 수도권(춘천, 인천, 여주, 신창까지 커버함) 내에는 지하철 교통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2) 이런 기회를 통해 책과 사랑을 전하면서 선후배 간의 사귐이 가능하다. 

3) 나의 등단 수필 제목이 ‘나의 걸음걸이’이었다. 5년 전에 노화된 심장의 대동맥판막을 티타늄 합금으로 개발된 인공판막으로 치환하는 수술을 받고 난 후로 건강을 위해 하루에 속보 만보 이상 걷기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걷고 있는 터라 자연적으로 운동이 된다. 

4) 이렇게 하여 선후배들을 마음으로 사귀어 놓으면 다음부터의 공식 문학회 모임에는 문학회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석을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2021년 3월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경맥춘추” 5호를 배달하고 있다. 책을 받는 분들에게는 언제 전달하겠다고 연락을 하지 않고 방문하는 것이어서 제목으로 ‘특별 몰래 택배’라는 명칭을 붙여 보았다. 총동창회 명부나 휴대전화의 문자나 카톡을 통해 거주지 주소를 사전에 확인하고 책 배달을 떠나는 것이다. 각대 봉투에 책을 넣고 주소를 정확히 써서 집의 문 앞에 몰래 놓아두고 사진을 찍은 다음 카톡이나 문자로 배달 완료 연락을 하는 방식이다. 

책을 받은 모든 분들이 감사의 답 글을 보내주시는데 그 글 속에는 사랑이 듬뿍듬뿍 담겨 있음을 체험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지금도 책 배달을 다니고 있고 다음 제6호가 발행되어도 책 배달을 다닐 예정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되돌아보면 동창회의 일을 열심히 해온 나의 경우에도 중고등학교 졸업 후에 동기동창을 만나고 사귀는 경우는 많은데 기라성 같은 선후배님들과 허물없는 사귐을 만드는 기회는 거의 없다. 동문들 중에 동기친구 형님이나 동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고작 총동창회의 신년교례회, 송년회나 가을 동문체육대회 등 일반 행사에서 선후배로 만나면 명함만 주고받으면서 “몇 회의 누구입니까” 정도의 인사가 전부이다.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확인되면 나중에 따로 연락하여 공동 관심사를 가지고 잔을 기울이며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있으나 개인적인 사귐은 매우 드물다. 

책 배달을 하면서 있었던 행복했던 경우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사시는 등단 시인이신 10년 선배님댁에 책 배달을 갔다. 책을 아파트 문 앞에 두고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렸는데 바로 회답이 왔다. 

“조 부회장, 내가 아파트 앞 정류장 도착 전 버스 두 정거장이 남았으니 가지 말고 잠시 나를 한번 만나고 가시게.”

문학회 회원이셔서 단체 카톡 방에서만 서로 인사를 하며 알고 지내는 한 번도 뵙지 못한 선배님이시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 선배님을 만났다. 등단 시인이시라는 사실만 알고 처음 뵙는 선배님께서 여기까지 왔으니 집으로 올라가서 커피 한잔하고 가기를 원하셨다. 평소에 나의 스타일대로 대화의 시작에 나를 약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난 후 선배님도 장로교회의 장로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두 장로의 대화라고 생각하니 좀 더 편한 마음이 들었고 무역회사와 종합무역상사에서 근무했던 나의 첫 직장 시절부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니 1982년 S종합무역상사 이라크의 바그다드 지점장으로 있을 때 선배님도 현대건설의 고 정주영 회장님을 모시고 중동건설 수주를 위하여 이라크에 몇 개월 동안 상주하고 계셨다는 이야기가 이어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어 당시 선배님과 내가 특히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시절의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이야기가 너무 진지하게 전개되는 분위기여서 후배장로가 선배장로님을 모시고 나가서 빈대떡에 막걸리 데이트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두 장로들의 대화인지라 차마 말씀은 못 드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 이야기가 무르익으니 역시 시인이신 부인에게 와인이 있으면 좀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부인께서 와인과 특별한 안주를 가지고 오셔서 두 장로는 와인을 주고받으며 함께 당시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부응하며 외화벌이를 위해서 중동을 휘젓고 다니던 1980년대 무역활동 회고담을 푸짐하게 나누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제 10년 선배님과의 인간적은 소통은 더 이상의 만남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가. 내가 책 배달을 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들을 수 없었던 값진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각별한 동문관계를 만들어 놓았다. 몇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는 두 시인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한국크리스천 문학가협회에서 발간한 창립 60주년 기념 “대표문학선집”까지 선물로 주셨다. 

이런 방법으로 선배님들과 후배들을 사귀게 되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목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나서 나의 건강을 위해 만 보를 목표삼아 걸으려고 하는 일도 자연스레 이루어지게 되니 더없는 복된 기회가 되었다. 걷는 운동도 마음먹고 해야 할 목표가 세워져서 목적지까지를 걸으면 힘이 별로 들지 않지만 운동 삼아 일부러 걸으려면 무척 외롭고 귀찮은 일이다. 

오늘도 서울시 강동구와 강남구에 두 건 그리고 용인시 수지구에 한 건을 배달할 예정이다. 이렇게 기도해 본다. “하나님, 아직 걷을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국제문예’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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