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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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이문익<시인>

이문익 시인.jpg

 

 

가을 하늘

 

다소니 그리는 마음
잘 못 이루다가
설핏설핏 노루잠 속으로
살포시 왔다 가버린 그미 그림자

 

은가람에
윤슬처럼 흐르는 지난 날 이야기

 

애움길 너머
해거름에 꽃노을 피는 하늘 멀리
가을을 타는 참붉이 가슴

 

번놓고 맴도는
고추잠자리 나래에 띄워 보내고

 

늘솔길 거닐던
구름발치 너머로 멀어져간
가나른 하얀 얼굴
시나브로 다가오는 그미의 해맑은 하늘

 

 

 

격랑의 세월

 

알 수 없는 내일은
긴 꼬리를 달고 어두운 터널을 향하는데
격랑의 세월을 지고 가는
반복되는 일상은
충혈된 눈으로 또 하루를 꿰맨다

 

등이 휠 것 같은 고난의 시간
뿔난 코로나가 나목의 빈 가슴을 짓눌러도
꺼지지 않는 염원 하나
에덴의 동산마루에
빛을 따다 담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

 

어둠에 떠밀려
넋을 잃고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믐밤은
다시 말간 새벽을 토해내고
지치고 목마른 허기진 가슴, 가슴은
혹한을 딛고 여명의 새날을 잉태하겠지

 

빛을 잃은 초원도
푸른 별로 초록의 무성한 팁을 쌓아
혈루血淚에 젖은 하늘이 열리고
사계四季의 오선지엔 바람과 구름이 숨을 키우고

 

 

 

자작나무 숲에는

 

그대는 바람인가 보오
하얀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면
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오

 

이름 모를 들꽃도
높푸른 가지 끝에 빛나는 초록도
그대의 소연蕭然한 향기 이지요

 

눈부시게 빛나는
청자빛 하늘을 유영하는 흰구름은
그댈 향한 그리움 인가요

 

자작나무 숲 갈림길에는
늘 그대가 있어
고요히 사색의 발길을 내딛지요

 

그대  생각이 머물다간
자작나무 숲에는
가지 끝에 걸린 낮달이 여위어 가고

 

어스름 내리는
희미해진 기억의 사슬에는
자욱한 운해의 바다만 넘실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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