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그램의 우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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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의 우주여행

김상룡<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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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룡<수필가>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광활한 우주에 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때가 있다. ‘별에서 왔다가 별로 돌아가는 거지’ 옛적 할배 곰방대 같은 소리지만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답이 될 수도 있다. 죽음에 이르러 21그램 무게의 영혼이 자기 별로 향한 우주여행이 시작된다는 거,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지난달 우리나라 남쪽 바다 끝에선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트랜스포터에 실려 이송되고 있었다. 우주로 나아가야겠다는 온 국민의 열망이 발사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즘 구급차 한 대가 도심을 가로질러 병원 응급실로 다급히 가고 있었다.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로 의식이 희미해진 황 여사. 그간 수없이 실려 갔던 앰뷸런스지만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다르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손을 꼭 쥐며 비밀스럽게 뭔가 속삭이려 한다. ‘이번엔 꼭 성공될 거야!’ 손아귀 힘으로 전달되는 그녀의 비장함을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대신 외쳐주고 있었다.
누리호가 세워지고 전원과 추진제 충전을 위해 엄빌리칼 타워의 수많은 케이블이 자궁 속 탯줄처럼 발사체에 연결되었다. 발사관제시스템이 작동되자 나로우주센터 안이 분주해진다. 산화제 기화로 누리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기체는 지금이라도 금방 폭발해 버릴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이게 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황 여사는 이미 의식이 없다. 산소마스크가 씌워지고 쪼그라든 가슴팍에 센서가 부착됐다. 환자감시장치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수치와 그래프들로 어지럽다. 빨라지는 경고음에 수액 주머니들이 누리호에 연결된 케이블처럼 줄줄이 달렸다. 이제 남은 건 불안한 눈빛과 기다림뿐이다.
발사지휘센터. 잠시 정적이 흐른다. AI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엔진 점화, 이륙, 누리호가 발사되었습니다.”
오랜지 불기둥과 하얀 수증기 구름을 뒤로하고 누리호는 우주로 향했다. 폐렴과 폐혈증 증세에 따른 은급치료에도 불구하고 황 여사의 생체신호들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 의사는 경과를 설명하면서 비수匕首같은 말 한 마디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가족들도 부르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부드러운 겁박에 입안이 바짝 말라온다. 건너편 침대에서 인공호흡을 받던 육십 대 남자가 숨을 거두었다.여자의 애끓는 울음이 서너 마디 들리는가 싶더니 금세 조영해진다. 이어서 기다렸다는 듯 장례식장 직원이 접이식 관을 들것에 싣고 나타났다. 죽은 남자가 누웠던 침대가 비워지자 금방 하얀 시트로 갈아 끼워졌다.순식간이다. ‘아! 목숨이 끊어진다는 게 저리도 간단했던가?’ 지나가는 간호사의 무표정이 내게 말을 건넨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애당초 없어요!’라고.
발사된 누리호는 1단 로켓과 페어링에 이어 2단 로켓까지 분리되었다. 외기권에 가까워지자 점화된 3단 엔진은 더욱 빠른 속도로 고도를 높였다. 숨이 가빠진 황 여사의 눈꺼풀에서 촉촉한 물기가 배어났다.
‘엄마! 마이 힘들제.’ 거즈로 닦아내는 눈물 자국에 내 가슴이 미어진다. 큰딸을 앞세운 상심으로 시작된 자신의 암과의 전쟁, 그 훈장으로 차게 된 인공 소변 줄, 설상가상 낙상으로 인한 대퇴골 골절은 황 여사의 삶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년의 고통에 황 여사는 지쳐 갔다. 자식들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던 당신이기에 우리 모두 용기를 내지 않았던가.
누리호는 마지막 3단 엔진과 분리시킨 뒤 성능검증위성을 목표 궤도에 정확히 도달시켰다. 성공이다. 누리호 개발진과 관제센터 요원들은 환호했다. 황 여사의 자녀들이 병원에 모였다. 우리를 호출한 의사는 서류 한 장을 내밀며 전체 가족이 논의해서 서명하란다. 책상 위에 ‘연명치료 중단 동의서’가 싸늘하게 얹혀 있다. 어찌해야 하나? 황 여시의 삶이 결국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더 이상의 퇴로는 없어 보였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에 대해서 학습이 잘된 탓일까? 이의를 제기하는 형제는 없었다. 다만 슬쩍 보이는 큰형님의 짧은 한숨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과기부장관이 누리호 발사 성공을 발표했다. 발사체에서 분리된 성능검증위성은 지상국과 교신이 이루어져 성공을 확인시켜 주었다. 응급실 창밖에는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스르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제 즉은 남자의 영혼은 무사히 우주 공간으로 나아갔을까? 자기 별로 돌아가는 우주 여행길은 영롱한 은하수 물결처럼 참 아름다울 거야. 황 여사가 타고 있는 누리호도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을까? 혹시 내가 꼭 잡고 있는 손을 황 여사가 제발 놓아달라고 애원이라도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다. 짓누르는 무게감에 눈을 뜨니 큰형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깨어났어!” 다행히도 폐렴이 호전되어 한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번에도 현대 의술은 고향 별로 가려는 황 여사의 소망을 실패로 끝나게 해주었다. 이쯤에서 따나고픈 간절함과 쉬이 보내지 못하는 의무감이 한 묶음 엉켜진 실타래로 남겨지고 있었다.
한동안 병원에 머물렀던 황 여사는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앰뷸런스에 시달렸다. 반복과 실패의 절망일까? 차창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황 여사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앰뷸런스는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 마중 나온 식구들의 웅성거림에도 황 여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다. 안방 침대로 옮겨지자 막내 여동생이 조심스레 침묵을 깬다. “엄마! 병원에 있다 집에 오니 좋제.” 황 여사가 겨우 입을 열었다. “글쎄 이제 갈 만하면 살려 놓고 또다시 살려 놓고 하니…….” 황 여사의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들 말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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