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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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사 십계명

万 折<문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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万 折<문필가

얼마 전 나는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을 가서 스텐트 삽입하는 시술까지 받았다. 이후 3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며 장기 투약을 해야 한다는 진료의의 판정도 있었다.

어제는 정기 검진 날짜도 전인데 한쪽 팔에 시퍼렇게 피멍이 나타나더니 통증이 심하여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다가도 일어나 주무르는 일도 있어 참다못해 이미 했던 예약보다 먼저 주치의를 만났다. 통증이 너무 심해 지금 먹는 약에 더 첨가할 약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원래 이 질환의 투약은 딱 세 가지뿐이라며 다른 약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약 없느냐고 물은 것을 ‘내가 약 안 먹겠다’고 들었는지 다음 올 때는 자녀 한 사람과 함께 오라는 것이다. 설명하면 나도 이해할 수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고성으로 같은 대답(자녀 동행)이었다. 짐작컨대 내가 늙어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 하니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데려 오라는 것이 화낸 원인으로밖에 이해할 길이 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나도 가만있지 않고 ‘내 이 병원 10여 년 전부터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맞고함을 쳤다. 그랬더니 다음에 올 때는 다른 의사를 선택하라는 거였다. 누가 누군 줄도 모르는데 그건 더 어려웠다. 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가 따라 나와 ‘교수님 성품이 좀···’이라며 이해를 부탁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조금만 참았으면 될 일을 내 부족함을 성찰하다 다시 간호사를 불러, 교수님에게 ‘무릎 꿇어 사죄 한다’고 전하라며 병원을 나섰다. 진료실을 뒤돌아보며 큰소리로 구시렁거렸다. ‘여기 서울대학병원 맞느냐!’와 내 들은풍월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아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말이다. 내가 대강 어림으로도 하루 200여 환자를 봐야 하는 격무이니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내가 이해해야 하겠다고 다시 돌아봤다. 

문제는 그 교수와 다음 예약일에 대면해야 할 일이 고민이었다. 어쨌거나 무릎 꿇어 사죄하면 받아줄 것이라고 다시 성찰했다. 

그 해프닝이 있었던 다음날 공교롭게도 한 일간지에 ‘환자와 의사’ 얘기가 나왔다. 주제는 “친절한 병원 패러다임 만든, 의료 서비스 혁신가 ‘이종철’”이었다. 이종철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내과 전문의였다. 삼성서울병원장과 삼성의료원장을 지냈으며,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주치의를 19년간이나 맡았다 한다. 이후 의료인 50년의 마침표를 찍고 난 다음 경남 창원의 한 보건소 소장도 4년이나 봉직하여 퇴임하는 날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한 의료인이었다. 

보건소행을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민간에 남아 있으면 떼돈을 벌 텐데 왜 고생을 자처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다.

어쨌거나 그 의료인 이종철 박사의 십계명(十誡命)이 있었으니 나에게 ‘호통’을 친 그 의사야말로 이 십계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① 환자에게 항상 친절하라. 

② 환자를 내 가족처럼 대하라. 

③ 환자는 많이 묻는 게 당연하다. 웃으며 답하라.

④ 측은지심을 잃지 말라. 

⑤ 의술은 인술(仁術)임을 잊지 말라.

⑥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대하지 말라.

⑦ 병원을 오가는 모든 이를 존중하라. 

⑧ 돈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 말라. 

⑨ 오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라.

⑩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 

③은 나를 위한 계명이 아닌가 한다. 내게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의사로부터 호통을 맞은 일이 있으니까 말이다. 20여 년 전에 직장암 수술을 받고 체외 장루(腸瘻-대변주머니) 달고 1년을 투병할 때였다. 담당 교수에게 ‘왜 이래 통증이 심하냐’고 물었더니 컴퓨터만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서며 ‘그럼 장루 뽑아 줄까···’ 하며 환자에게 할 수 있는 호통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의사한테 묻지도 못 하느냐···’며 대들었다. 진료실 바깥에 들리도록 피차 소리쳤던 것이다. 나 뒤따라 나온 간호사가 눈짓을 하며 ‘저 선생님이 좀 그래요···, 참으세요’라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대기 환자가 ‘저 선생님은 뭘 물어볼 수가 없다’고 불평하는 환자도 있었다.

이 십계명 중 적어도 1~5항까지 정도라도 지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종철 박사는 십계명과는 다른 의견도 설파했다. ‘의료계는 신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가장 약한 존재인 환자가 몇 시간 기다려 겨우 의사 만나 3분도 채 못 본다’고도 했다. 어떤 의사는 환자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컴퓨터만 본다고, 직언직설을 했다. 꼭 내 장루 달아준 그 의사를 향한 질타 같았다. 진료 때마다 겨우 고개만 돌려, ‘좀 어때···?’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나 지금도 두 의사에게 정기 대면 진료를 받아야 하니 환자와 의사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실과 바늘’이라는데, 의사 흠(欠)만 잡아놓고 대면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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