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여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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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여기 산다

윤 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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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영<수필가>

 

점심을 먹고 마로니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B가 말했다.
“그대는 연구 대상이야.”라며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가로수길 너머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동산 따위에 관심 없다며 말끝을 흐리곤 애써 나무의 표피를 어루만졌다.
그는 여전히 미련인지 애착인지 몇 마디를 잇는다.
“지금이 80~90년대 판자촌에 틀어 앉아 재개발을 바라볼 것도 아닌데 그 강 건너 시골 아파트에 30년이나 뼈를 묻고 사냐. 새집을 분양받아 프리미엄 받아넘기고 해야 돈을 벌지.”
너풀너풀한 마로니에 잎사귀 사이로 고층아파트들이 낯설다. 하긴 B가 보기엔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한자리에 처박혀 세상 변하는 줄 모르고 살고 있었으니, 그렇다고 그의 말에 귀를 열어 별안간 도시로의 귀환을 생각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도시의 욕망과 재테크가 아무리 함수관계에 놓였다지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을 지고 살지 않을까.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시장엘 다녀오고 데모 가를 들으며 돌 지난 아기와 낮잠을 잤다. 그렇게 시내 복판에 있는 대학 근처에서 3년의 신혼생활을 보내고 근교에 있는 작은 시골로 이사를 왔다. 미래에 재산 가치가 되느냐 마느냐 이런 것들에 하등의 관심조차 없이, 1995년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상기된 얼굴로 강을 건넜다. 모래사장에 매어 놓지 않은 빈 배 하나. 더욱이 고향에선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만 눈에 익은 터라 강이라는 존재감이 주는 자체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그렇게 수월찮게 흘러왔든 충일하게 흘러왔든 근 30여 년을 함께 흘러왔다.
오늘도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낙동강을 건너, 집으로 가는 중이다. 강물은 세상일에 관심 없다는 듯 무심히 흐르고 잇대어 있는 광역시와 작은 면 소재지의 경계를 지난 버스는 사문의 마을에 닿는다. 들녘은 감자 꽃으로 뒤덮였다. 엎어진 양파 대를 파헤친 밭고랑마다 붉은 자루가 벽돌처럼 쌓였다. 드문드문 양귀비꽃이 흔들린다.
하기사 입주하고 반상회를 하면서 만난 이웃들은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강을 건너 도시로 떠나갔다. 기껏해야 위층에 동갑내기 남주가 남아 갈비도 구워 먹고 횟집에도 간다. J는 다섯 번이나 옮겨 다니며 집을 넓혔고, H는 서너 채의 아파트를 보유하며 프리미엄을 챙겼다. 그들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용케도 피그말리온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천천히 생각건대 그들은 세상의 거대한 크루즈에 편승하지 못한 나를 무한한 비애자로 볼까. 세상을 초월한 고답주의자로 볼까. 소심하게도 낮에 들은 연구대상이라는 단어는 불쾌하다 못해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날카롭게 나를 스쳤다. 놋주발마냥 무겁다. 애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빡빡한 된장찌개를 끓이며 우엉잎을 쪘다. 이런 말에 고심하고 있는 내가 또 맘에 들지 않았다. 베란다 창으로 개살구 익어가듯 하늘이 노랗다. 앞치마를 벗어 던졌다. 한긴 오래된 버릇이다. 아파트를 벗어나 슬금슬금 반촌의 마실을 돌아다니는 일.
후문을 나섰다. 공사 중인 길은 엉망이었다. 쩔름쩔름 갓길을 걸었다. 자두나무가 있는 낚시터와 암자까지 다녀올 참이다. 도로가 나면서 탱자나무는 베어나가고 소를 키우던 노인의 마당엔 잡초만 무성하다.
이따금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능소화 꽃송이가 툭 떨어지고 저녁답의 바람은 축축하다. 항시 녹쓴 철 대문을 열어놓고 마루 끝에 나와 있던 노인의 집을 돌아가면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나는 봄날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낸다. 남편과 싸웠다며 찾아온 친구를 데려간 곳. 사는 일이 팍팍하다며 깁밥 들고 찾아온 후배와 무덤가에 앉아 도시를 바라보는 일.
산천에 새잎 돋아나는 봄만 되면 발이 저절로 강을 건너더라는 지인과 씀바귀, 개망초, 꽃다지, 지칭개, 산부추, 광대 풀을 뜯었다. 초대하지 않은 그들과 밭고랑에 퍼질러 앉아 봄을 즐겼다. 봄바람처럼 강을 건너오고 봄 손님처럼 떠나갔다.
며칠 전 휘두른 바람 탓이었나. 푸릇한 도토리들이 절 마당 구석에 소복하다. 회화나무 아래 백구가 낮게 엎드려 뼈다귀를 핥는다.  새끼가 어미가 되고 어미는 또 새끼를 잉태하며 몇 대를 이었다.
열무를 솎아내던 할머니가 “날이 가물어서카는가 꽃도 벌도 시원찮으니 자두 열매가 귀해.” 하신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채 마르지 않은 무덤이 보이더라는 말을 했다.
“하긴 저승길이 대문 밖에 있으니께.”
잠시 섬찍지근 소름 돋는다. 하긴 날 받아놓고 죽는 사람 없으니깐. 정신없이 곤두박질치던 생각이 잠시 혼돈을 가져왔다. 그만 하라고 짙푸른 무논에서 개구리가 쉴 새 없이 위로의 오조를 흘린다. 곧 도화가 피겠구나. 노란 벌통 옆 사과나무는 묵밭으로 변해 가는지 풋사과 꼴이 개복숭아 꼴이다. 무성한 개똥쑥 가지를 분질러 코에 막고서는 논과 논 샛길을 걷는다. 외발을 한 백로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무논 한 번 휘졌고 날았다. 찔레 넝쿨은 어느새 얽히고설켜 숲을 이루었다. 공터에 개망초 흐드러졌다.
오래전 굴참나무와 소나무로 우거진 돌산은 공원으로 신분 세탁을 했다. 그 공원의 꼭대기에 앉아 강 건너 비슬산 삼필봉에 내려앉은 운무를 보는 일. 수십여 개의 수박 하우스와 강물이 동침하고 누운 저녁때. 바람에 때가 없다. 강변의 은행나무는 초록으로 물들었다. 곧 가을을 몰고 올 거야. 가끔 저 달맞이꽃이 피는 강변을 따라 걷노라면 말발굽 소리를 앞세워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말과 눈을 마주치곤 했다.
주말이면 남편은 나를 데리고 강변에 가기 좋아한다.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가 낚싯대를 휘휘 던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의 청년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흡사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미국 몬태나주 블랙풋 강가에서 펼쳐지던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폴과 노먼이 루어낚시를 하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나는 늘 그 장면이 좋아 줄기차게 사진에 담곤 했어.
내일은 두충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큰 저수지가 있는 못골까지 다녀올 참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오백년도 넘은 늙은 배나무의 안부도 물어야지. 봄날에 그 양반이 피워내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겹더라는 거. 나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가 환으로 뭉쳐진 느낌. 그 경이로움 앞에선 늘 내 삶이 속수무책이었어.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 퇴근한 사내가 한 여인을 찾아 논둑길 중간쯤에서 부른다. 배고프니 어여 내려오라는 손짓이다. 개망초와 뻐꾹채를 훔치고 강아지풀 다섯 포기 뽑아 들고 키가 큰 남자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 후문을 들어섰다. 베란다에 빨래와 접 마늘과 시래기를 주렁주렁 달아 놓고 사는 사람들. 어느 곳에도 관계하지 않고 적당하게 비켜서 있는 경계선에 있는 마을.
늙은 집으로 돌아왔다. 적당한 근육질의 남자가 샤워하는 동안 개망초로 꽃꽂이하고 저녁밥을 차린다. 잘 익은 하늘은 온데간데없다. 어둠살 내렸다. 국기 게양대와 당단풍나무 사이에 울던 새는 돌아가고 밤을 몰고 온 소쩍새가 그저 한세월 속아 달라고 자꾸 운다.
느직느직 축적되어온 시간이 쌓인 곳. 여기에 나를 내려놓고 나니 한량없이 편하다. 나는 이래서 여태 여시에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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