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인기와의 대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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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인기와의 대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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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후두둑 쏟아져 내릴 것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나는 방금까지의 감상적인 기분을 어느 정도 갈무리했다. 사방이 먹먹할 정도로 조용해진 가운데, 형오가 말했다.
“너랑은 묘하게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게. 나이 들면서 바빠지고 친구들이랑은 점차 멀어져서 업무적인 거 외엔 말할 일이 많질 않았는데… 난 네가 이렇게 할 말을 많이 쌓아두고 살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도… 전투기가 돼갖고 수다 떨 일이 도대체 뭐가 있겠어. 격납고에서 다른 전투기랑 떠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자주 그러지 않았고… 말도 잘 안 통하더라고 뻘쭘했어.”
내가 소리내어 웃자, 그가 따라 웃었다.
한참의 시간을 두고, 형오의 말이 이어졌다. “널 만난 건 내게 선물 같은 일이야. 널 만나기 위해 조난당한 것 같다고까지는 차마 말 못해도, 너랑 얘기하면서 그간 막막했던 걸 많이 보상받는 기분이야.”
“다행이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건 정말이지 내가 해본 대화 중에 정말 오랜만에 아무 계산도, 노림수도, 견제도 할 필요 없는 편안한 것이었다.
졸리지 않아서 새벽까지 함께 떠들고 있자니, 서서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내가 차에서 떼어 온 룸미러를 흔들어대며 빛을 사방에 반사하자 얼마 되지 않아 구조하러 오겠다는 의미의 신호탄이 아주 먼 곳에서 희미하게 터지는 게 보였다.
“살았네.”
“그러게.”
형오도 신호를 본 듯, 어찌 들으면 허탈하게 들리는 듯도 한 말투로 동의했다.
“근데 나 완전 피곤하다…….”
“그럴만하지. 밤을 꼴딱 샜으니. 숙취는 없어?”
“조금 있는 것 같아. 했볕을 보니 눈을 누가 뭘로후벼파는 것처럼 아파. 태양이 저렇게까지 요란하게 번쩍거릴 필요기 있는 걸까?”
“그래도 그 덕에 빛을 발산시켜서 우리의 위치를 일릴 수 있었으니 된 거 아닐까.”
나는 우리를 구조하러 올 사람들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거울을 흔들었다.
함께 구조를 기다리며, 형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한테 네 신상정보를 알려줄 수 있겠어?”
“얼마든지. 근데 그걸로 뭐하게?”
“언젠가 널 찾아갈 거야.”
“그래? 가능할 거 겉아?”
“노력해봐야지.”
내가 나의 신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고 있자니, 듄 버기 차랑 한 대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소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탑승해 있는 두 명의 현지인에게 내가 짧은 영어로 조난당한 경위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다가 막혀 쩔쩔매자, 형오가 마저 설명해 주었다. 내가 형오와 헤어지기 전에 동체를 한 번 껴안아 주자, 현지인들이 저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하는 얼굴을 했다.
“배터리는 두고 갈게. 선물이야.”
“담에 만나면 갚아줄게.”
“잘 살아.”
“너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듄 버기에 일단 오르자 차는 거침없이 형오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몇 번이나 그쪽을 다시 돌아보았다.
무사히 귀국하고 나서, 나는 그 일을 종종 떠올렸다. 행여 보안 때문에 뭔가 제재가 가해질까봐 온라인상에 내가 겪었던 일을 올리지는 못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백수생활을 하며 버티다 결국 금전난에 봉착해 마지못한 취직을 했다. 새로 취직한 회사에서는 하루종일 더럽게 바빠서 직원들과 제대로 말을 할 겨를도 없었다.
정신이고 체력이고 갈려 나가다시피 해야 했던 회사를 관두고, 또 몇 달간 쉬다가 다시 취직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그걸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여자친구를 한 명 더 사귀었다가 헤어졌다. 이번에는 울지 않았고, 실언여행 같은 걸 떠나지도 않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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