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인기와의 대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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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인기와의 대화(4)

박진<일러스트,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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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일러스트, 웹툰 작가>

 

 

“수고했어. 고마워. 일단 시스템 체크를 위해 미션컴퓨터를 부팅해볼게.”
형오의 말에 내심 안심하고 있자니, HUD 위에 낯선 로고가 뜨면서 계기판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무인기라 그런지 제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내 눈엔 꽤 복잡하게 느껴졌다.
“전기 많이 먹을 거 같은데…….”
기기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느라 나는 동작음을 들으며 걱정하자 형오가 말했다.
“어차피 잠깐이야. 5초 내로 끝낼게.”
그의 말대로 곧 시스템 전체의 전원이 내려갔다.
“끝났어.”
“그래. 이제부턴 그냥 노닥거리면 되는 거지?”
“응. 네 얘기 혹시 해줄 수 있어? 이 사막엔 도대체 어쩌다 오게 된 거야?”
“그냥 취미 때문인데… 내가 식물에 관심이 많거던. 사막의 식생이 궁금해서 와본 거야.”
“와보니까 어땠어?”
“돈 아까워서 눈물 나. 이번 여행에 반년치 연봉을 다 때려 부었는데 본 거라곤 유칼립투스밭뿐이야. 이제 유칼립투스라면치를 떨 것 같아.”
“내가 떨어졌을 때만 해도 조그마한 선인장들을 깔아뭉개면서 동체 착륙을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은 선인장이 없는 것 같네.”
수다를 떨다 보니 배가 고파져 나는 레이션의 봉투를 뜯고 안에 든 물컹하고 퍼석한 것들을 먹었다. 배가 고프지 않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이었다. 기계적으로 배를 채우다가 도저히 안 넘어가서 나는 수통에 담아 온 소주를 마셨다. 술이 들어간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만 취한 게 아니라 형오도 취한 것 같았다.
“…아, 진짜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가면 그놈 멱살부터 잡을 거야. 미친놈이, 사람을 죽이려고 아주 작심을 한 것도 아니고 이런 델 추천해?”
“나도 손이 있으면 진짜 그 사람 멱살 꼭 잡고 싶어. 보안 때문에 너더러 그 사람 이름 알려주고 대신 멱살 좀 잡아 달라고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아니, 미친 거 아니냐고. 조류 집단 서식지에 무슨 생각으로 전투기를 띄우는 건데. 대놓고 골로 보내는 거잖아! 동료 하나가 완전 대파되는 거 보고 내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하여간 어느 동네나 미친놈들 꼭 있어. 전에 오토크루징 걸어놓고 졸고 있는데 갑자기 빡 소리가 나서 차 세우니까 앞 유리에 온통 금 가있어서 보니까 누가 내 차에 폰 던진 거였어. 잡아서 물어보니까 통화하다 순간적으로 너무 바빠서 그랬대. 도대체 이게 말이야, 방구야?”
“난 예전에 공중급유 받다가 등 다 긁히고 붐 분질러져서 날아가고 난리가 났었어. 아니, 세상에 난기류인데 빨리 급유 받으라고 치대는 게 제정신으로 할 일이야?
작전 수행하다 보면 얼토당토않은 경우를 진짜 수도 없이 만나는데 그때마다 내가 쫄보인 건지 상대방이 미친 건지 엄청 헷갈려.“
역시, 남을 흉보는 만큼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잘 없었다는 걸 느끼며 우리는 염세주의자들처럼 온 세상을 씹어댔다. 나는 지난 5년 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온갖 미친 일들을 형오에게 들려주었다.  극제적으로 추진 중인 달 테라포밍 계획  얘기에 이르러서는 서로 앞다투어 떠들어댈 정도로 흥분했다. 그러다가 얘기는 어느새 속상했던 일을 서로에게 토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나는 분위기를 타서 급기야 형오에게 내가 이번 여행을 결심하도록 만든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 얘기까지 울먹거려가며 토해냈다. 눈물이 많은 편이라 얘기하다 울음이 터질까 봐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얘기였지만 이런 곳에까지 와서야 아무러면 어떠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넌 걔를 아직 못 잊은 것 같은데.”
“아냐, 여행 와서는 정신없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어, 정말로. 그냥… 이제 와서 막상 떠올려 보니까 나만 일방적으로 상처 입은 게 아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좀 이상하네.”
“괜찮아. 개가 널 찼잖아. 난 그런 거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차인 사람 쪽이 상처를 더 많이 받는 것 같으니 네가 걔한테 준 상처가 그걸로 다 상쇄되고도 남았을 거야.”
“그럴까.”
나는 콕핏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보는 밤하늘은 좀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나치게 찬란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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