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인물 고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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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인물 고찰(8)

<고령군 인물사>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고령 관내 도처에 고스란히 남이 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에 여덟 번째로 연재하고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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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문화누리 전경

 

 
◆ 박일(朴溢)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경부이다. 양산군수를 지낸 계조(繼祖)의 차남으로 중종 14년(1519년) 태어났다. 명종 1년(1546년) 식년 무과에 급제한 후 계골랑(啓功郞)을 거쳐 종성판관(鍾城判官)을 지냈다. 명종 11년(1556년) 향년 38세로 좋했다. 묘소는 하라동 판서공 묘계하에 있다. 배위는 군수를 지낸 종건(宗騫)의 딸인 여흥민씨이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소윤공파 세보(갑오보), 고령대관(1959년)
 
◆ 박일원(朴一元)
본관은 순천이며 자는 천극(天極)이다. 유생(儒生) 홍량(弘量)과 고령김씨 사이에서 선조 30년(1597년) 태어났다. 통훈대부 행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인조 23년(1645년) 4월 10일 향년 49세로 졸했다. 묘소는 합천 상현 갑좌이다. 배위는 의성김씨이다.
 
◆ 박임귀(朴林貴)
본관은 고령이며 고려말 인물이다. 삼중대광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고양부원군에 봉해졌던 우생(雨生)과 예빈령(禮賓令) 윤신(允愼)의 딸인 정신택주(貞信宅主:조선시대의 정경부인에 해당하는 부인에게 주는 일종의 관직) 단산장씨(丹山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봉익대부 판사재사사(判司宰寺事)를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용담 목사동 가운데 간좌원에 있다. 배위는 원일의 딸인 이천서씨이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대동보(정묘보), 현감공파의 연원

◆ 박종윤(朴宗胤)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언장(彦長)이며 호는 남애(南厓)이다. 사헌부 장령을 지낸 광선과 충순위를 지낸 칭(偁)의 딸인 숙부인 진양강씨 사이에서 선조 27년(1594년) 태어났다. 재종숙 원갑에게 출계했다. 광해군 7년(1615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학유를 시작으로 세자시강원 겸설서(兼設書)·홍문관 저작·예문관 검열, 봉교를 거쳐 홍문관 수찬, 이조좌랑을 역임했다. 인조 24년(1646년) 8월 24일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하라동 자좌에 있다. 초취는 이조참판 성길(成吉)의 딸인 숙인 철성이씨(鐵城李氏)이며 재취는 흘(屹)의 딸인 숙인 창녕성씨이다.
※ 참고문헌 : 국조문과방목, 고령박씨 소윤공파 세보(갑우보), 고령대관(1959년)
 
◆ 박종주(朴宗冑)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언중(彦仲)이고 호는 이우헌(二憂軒)이다. 사헌부 장령을 지낸 광선(光先)과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칭의 딸인 숙부인 진양강씨 사이에서 선조 24년(1591년) 태어났다.
광해군 7년(1615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다음 해 세자시강원 설서(設書)가 되고 1617년 홍문관 수찬·사간원 정언을 거쳐 사간원헌납과 홍문관 부교리를 역임했다. 이듬해 이조정랑으로 문학을 겸했다. 1622년 승지에 올라 관반(館伴: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임시 관직)이 되었다. 1623년 5월 9일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사전동 사부곡 자좌에 있다.
※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연려실기술, 국조방목
 
◆ 박지(朴持)
본관은 고령이다. 중직대부 내섬윤을 지낸 원후와 사재감사를 지낸 운보의 딸인 강야이씨(江陽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조좌랑을 거쳐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냈다.
일찍이 합포(合浦) 병마도사로 있을 때 한 가지도 자신을 위한 일로 군읍(郡邑)을 번거롭게 한 적이 없어 말안장의 끈이 끊어지자 새끼로 묶었을 정도였다. 구례(舊例)에 영중에서 수렵하여 잡은 짐승은 절도사와 도사가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수렵할 때마다 잡은 짐승을 각각 청사(廳事) 앞에 늘어놓는 것이 마침내 폐단이 되었다. 그런데 공은 도사가 되자 홀로 주창하기를, “차라리 절도사에게 바칠지언정 나에게 바쳐서는 안된다.”하니, 절도사도 처음에는 부끄러워 사양하였다. 국초(國初)에 직전제(職田制)가 정립되지 않아 호조의 벼슬을 맡은 사람은 으레 국가의 전답 중에서 마음대로 가려서 차지하여 자기의 세금을 납부했다.
공이 호조좌랑을 맡아서는 하나도 차지하지 않으니, 동료들도 절로 그에 따랐다. 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만대산 술좌이다. 배위는 호조판서 중로의 딸인 공인(恭人) 죽산안씨이다. 공을 추모하는 재실 만남재(萬南齋)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48호로 지정되고 묘소 입구에는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세운 ‘고령만대산박씨조지(高靈萬代山朴氏祖地) 라고 대서한 석주(石柱)가 있다.
註) 직전제(職田制) : 조선시대 현직 관리에게 토지를 지급한 제도를 말한다. 고려시대의 과전제가 세습화하는 등 문란해지자 세조 12년(1466년)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제가 도입되었다. 직전의 부족으로 명종 12년(1557년)에는 직전의 지급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호장공파 세보(갑오보), 고령박씨 연원, 고령대관(1959년)
 
◆ 박지순(朴之順)
본관은 고령이며 호장과 천우위장(千牛衛長)을 역임한 아버지 연정(連正)과 경(京)의 딸인 고령손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령박씨 대종가의 4세 종손인 공이 고려 후기에 비로서 호장공파에서 최초 재경관인(在京官人)으로 출사함으로서 그 뒤 대대로 명망과 관작이 끊어지지 않았던 명문가로 성장했다.
강서인 의 난(亂)이 일어나자 초기에 난을 평정한 공로로 초삼등(超三等)과 검교흥위위대장군(檢校興衛威大將軍)의 직을 제수받았다. 배위는 고령이씨(高領李氏:여주이씨로 개관) 득관조이며 금자광록대부 동평장사를 지낸 헌의 딸이다. 배위 방주(傍註)에 ‘배(配는 정신택주(貞信宅主) 고양이씨이고 부친은 광정대부 도첨의 동평장사 호공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공헌(護公憲)은 오랑케를 평정했던 헌(憲)을 의미하며 충렬왕 원년에 금자광록대부의 품계가 광정대부로 개칭되어 양문중 기록이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공의 직계 24세손이다. 생졸년은 미상이며, 묘소는 실전이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호장공파 세보(갑오보), 여주이씨 문순공파 세보(병신보)
 
◆ 박진(朴珍)
본관은 고령이다. 서령(誓令)을 지냈으며 봉익대부 판사재사사를 지낸 임귀(林貴)와 원일의 딸인 이천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산대부의 품계를 받았으며 사헌부 감찰을 거쳐 사헌부 지평과 영산현감을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가곡 백호동 건좌원에 있다. 초취는 숙부인 진양강씨이고 재취는 숙부인 안인고씨(安人高氏)이고 묘소는 실전이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대동보(정묘보). 현감공파의 연원

◆ 박철원(朴哲源)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여명(汝明)이고 호는 야남(倻南)이다. 초휘 경신을 개명한 경록과 상현의 딸인 운진임씨(恩津林氏) 사이에서 정조 15년(1791년)에 태어났다. 순조 21년(1821년) 무과에 급제한 후 오위장을 지냈다. 헌종 6년(1840년) 8월 17일 향년 55세로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운수면 도진리 상촌후 자좌이다. 초취는 문의 딸인 숙부인 팔여도씨(八呂都氏)이고 재취는 대기의 딸인 밀양박씨이다.
 
◆ 박형(朴炯)
본관은 고령이다. 병조판서에 증직된 승로의 장남이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세조 원년(1455년) 12월 27일 정난원종공신 1등에 녹훈된 후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2년 후 행첨지중추원사 겸 경상우도도절제사가 됐다. 1460년 종성부사가 되어 여인 정벌의 북정군공으로 정헌에 훈록되어 함길도도관찰사가 되었다.
형이 정난원종공신에 녹훈됨에 따라 공신전과 노비를 지급받게 됐으며 선대가 추증되고 후손에게는 음직이 수여되고 후세에까지 유죄(有罪:죄를 너그러이 용서함)의 은전이 있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광대 거산 자좌에 있다. 배위는 주부를 지낸 홍부의 딸인 수성나씨이다.
※ 참고문헌 : 세조실록. 고령박씨 소윤공파 세보(갑오보). 고령대관(1959년)
 
◆ 박홍원(朴弘遠)
본관은 순천이며 자는 모숙(模叔)이다. 유생 응규와잠의 딸인 성산이씨 사이에서 선조 5년(1572년) 태어났다. 문무를 겸비했으며 효도와 우애로 미루어 나갔다.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용리 반룡동 중남 임좌이다. 배위는 영인 현풍곽씨이다.
※ 참고문헌 : 순천박씨 판윤공 파보(갑술보). 순천박씨 실록
 
◆ 박효림(朴孝林)이며 초명은 여(旅)이고 자는 숙보(肅甫)이고 호는 무첨당이다. 건원능참봉을 거쳐 물고기를 잡는 어장들 및 하천과 호수에 관계되는 일을 맡은 관청인 사재시(司宰寺)에 소속된 으뜸 벼슬인 판사재감사를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 소룡산 방봉 아래 유좌에 있었으나 실전됐다. 고령박씨 호장공파 중 향파의 파조이다. 배위는 시중을 지낸 효건의 딸인 영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 참고문헌 : 고령박씨 호장공파 세보(갑오보). 고령박씨 연원
 
◆ 배선보(裵善輔)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성원(聖元)이고 호는 회은(晦隱)이다. 성균관 직장을 지낸 윤겸과 선략장군을 지낸 적(績)의 딸인 숙부인 양천최씨 사이에서 단종 2년(1454년) 갑술년에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뛰어났으며 성품이 깨끗하고 순수했다. 자신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학문을 했고 효우가 출중하여 참봉으로 천거되었으며 성현도찰방을 지냈다. 시대의 운수가 험난하고 당쟁으로 인한 화가 그치지 않아 벼슬길에 다시 나아가지 않고 종적을 감추고 전원으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중종 15년(1520년)졸했다.
성주배씨 찰방공파 파조이며 성주 금원에서 고령군 쌍림면 학동(鶴洞)으로 이거했다. 묘소는 합천군 야로면 청계리 대산 건좌에 있다. 배위는 직장을 지낸 소(紹)의딸인 숙인 야성송씨이다.
※ 참고문헌 : 영천지(靈川誌). 성주배씨 세보(을축보)
 
◆ 배영근(裵榮根)
본관은 성주이며 초휘는 영우(榮祐)이고 자는 달지(達枝)이다. 유생과 한동과 우탁의 딸인 문화유씨 사이에서 헌종 3년(1837년) 1월 6일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넓고 사람됨과 그 행실이 비상한 것보다 뛰어났다. 효도로서 어버이를 섬기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후덕으로 했다.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으며 주위의 빈민들에게 소원하지 않았다. 고종 26년(1889년) 1월 충무위 부사용을 거쳐 같은 해 8월 충훈부 도사를 지냈다. 고종 31년(1894년) 1월 19일 향년 58세로 졸했다. 묘소는 합천군 야로면 석사촌후 성현 상봉에 있다. 초취는 화영의 딸인 영인 고령박씨이며 재취는 학문의 딸인 양천최씨이다.
※ 참고문헌 : 성주배씨 세보(을축보). 고령군지(1959년)
 
◆ 배준(裵峻)
본관은 성주이다. 자는 백고(伯高) 또는 여첨(汝瞻)이며 호는 묵암이다. 유학 진경과 참봉을 지낸 당의 딸인 의인(宜人) 포산곽씨 사이에서 중종 37년1542년)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평안하고 고요하며 말이 적었고 많은 사람이 북적거려 시끄럽고 어수선 하거나 화려함을 즐기지 않아 일찍 스스로 호를 묵암(默庵)이라 했다.
독실한 행실로 이름이 나고 육일헌(六一軒)이홍량, 예곡 곽율, 용담 박이장 등 당대에 이름난 선비들과 함께 교유했다. 조선시대 초야에 묻혀있는 선비로서의 학식과 인품을 갖추고 있으면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 이들을 과거시험 없이 발탁하는 인재등용 방법인 유일(遺逸)로 장사랑의 품계를 받았고 종9품의 훈도를 여러 차례 옮긴 후에 안음현감을 지냈다. 배위는 경선의 딸인 숙인 풍산홍씨이다.
묘소는 합천군 걸산면 정용촌 뒤 해좌에 합폄이다. 묘갈명은 면우 곽종석이 지었다.
※ 참고문헌 : 면우선생 문집권지백오십칠. 통훈대부행안음현감묵암배공묘갈명 성주배씨 세보
 
◆ 배태해(裵泰海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성대(成大)이고 호는 양진당이다. 선조 18년(1585년)에 태어났다. 음서로 인조 13년(1635년) 군자감정을 지냈다. 남명 조식의 대표적 사숙제자인 무민당 박인과 친밀했다. 인조 26년(1648년) 7월 18일 향년 64세로 졸했다.
註)사숙제자(私塾弟子) :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배우거나 따른 제자를 말한다.
※ 참고문헌 : 성산배씨 진사공 휘 현(俔) 파보 권지2(계유보). 고령군지(0996년)
 
◆ 백순중(白順中)
본관은 수원이며 일명 순경이라 한다. 처사 녹산과 참찬 우춘의 딸인 전주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고 공조참의를 지냈다. 선향지인 전북 장흥군 안량면 기산리에서 사화를 피해 고령군 쌍림면 봉진으로 시거했다가 쌍림면 임천리로 이거해 수원백씨 정신재공파 고령입향조가 됐다. 인진왜란 때 병선으로 인해 문적이 탕일되었다. 묘소는 고령군 대가야읍 일량 안현 현재 외리 손쫘에 있으며 배위 창녕성씨와 합폄이며 일헌 이규형(李圭衡)이 묘갈명을 근찬했고 혜산 박계년이 근서했다.
※ 참고문헌 : 수원백씨 대동보(정축보). 고령군지(1996년)
 
◆ 서숙손(徐叔孫)
본관은 달성이며 자는 경응이다. 평창현령을 지낸한기와 신번의 딸인 공인 여주이씨 사이에서 선조 22년(1589년) 태어나다. 음사로 사복시 주부를 지냈다. 인조 25년(1647년) 향냔 59세로 졸했다. 향년 59세로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 산 14번지에 있다. 배위는 군자감 주부를 지난 정의 딸인 의인 기계유씨이다.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달성서씨세보(병인보)
 
정리 최종동 기자
2017년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군 인물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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