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무인기와의 대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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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인기와의 대화(3)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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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지금쯤 20분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잔량이 10분도 인 남은 것 같아.”
“10분 후면… 너랑 더 이상 대화 못하는 거야?”
“그렇지.”
“…너무 짧은데…….”
나는 못내 아쉬움을 느꼈다. 내 인생에 무인기와 이렇게 대화해 볼 일 같은 건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혹시 아쉬운 거야?”
“응… 사막에서 첨에 네 불빛을 보고 얼마나 안도했었는데…….”
나의 대답에 형오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내가 행여 구조되지 못한다 해도 네 말만으로 충분히 기뻐.”
“…그런 불길한 인사 같은 거 하지 말아줄래. 네가 구조되지 못한다는 건 나도 죽는다는 뜻이잖아.”
“네가 구조될 확률을 연산해 볼까?”
“음… 그거 마치 타로점으로 미래를 봐줄까 말까 하는 질문을 받는 기분인걸.”
“타로도 봐줄 수 있어.”
“…연산 쪽으로 부탁할게. 오컬트에 의지하기엔 처한 상황이 워낙 심각해서.”
“자, 그럼 남은 전력을 열심히 쥐어짜 내고 그러모아서…….”
“아니, 잠깐만! 그렇게 전력이 소모되는 짓이라면 일단 관둬봐!”
“…사실은 얼마 안 써도 돼.”
“놀랐잖아!”
잠깐의 침묵 후에, 형오가 말했다.
“짜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무려 76%의 확률로 당신은 내일 고조됩니다! 그러니까 나도 좀 구해줘.”
“음… 너 하는 거 봐가면서.”
“말밖에 못하는 내가 고작 6분 동안 뭘 얼마나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왜 시간이 더 줄었는데.”
“널 위해서 해준 시뮬레이션 때문이거든.”
우리는 장난스런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남은 시간을 못내 아쉬워했다. 별 내용 없는 농담만 몇 마디를 나누던 중, 형오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나 이제 종료할 때가 된 것 같아. 너랑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데… 구조된다 하더라도 보안을 뚫고 내가 너한테 연락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이 대화도 사실 다 기록되고 상부에 보고될 거라서…….”
“뭐, 하면 안 되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난 상관없…….”
거기까지 말하다,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내 차에 캠핑용 배터리가 있는데, 용량리 꽤 커! 어, 그러니까…
6kah는 될 거야. 혹시 너 외부 전원 연결돼?”
“응, 가능해. 그 정도 양이면 한 달도 돌릴 수 있겠다.”
“…너… 꽤 전력 소모가 낮구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바로 배터리 가져올 테니까 일단 그때까지 좀 버텨봐!”
“알았어. 지금 대기 모드로 들어갈게.”
“그래.”
나는 땅거미가 깔려가는 사막 위를 걸어 차로 되돌아왔다. 조금 쌀쌀해서 방한용 외투를 걸친 후, 가방에다 야외취침에 필요한 것들을 대충 쓸어 담았다. 막상 들고 오자니, 캠핑용 배터리가 끔찍하게 무거워서 땀이 삐질 삐질 솟았다.
“후아… 이제 이걸 어디에 어떻게 연결하지?”
“관련 구조도를 HUD에 띄울게. 스마트폰으로 기록해 놔.”
나는 옆에 널브러져 있는 랜딩기어 같은 것들을 발판 삼아 콕핏으로 낑낑대며 간신히 기어 올라가 HUD에 뜬 도면 같은 걸 촬영했다. 외부 전원 연결부는 좌석 뒤쪽에 있는 듯했다. 나는 한숨을 쉰 후 랜턴을 캐노피의 프레임에다 걸어놓고 다시 기어 내려왔다. 그러다가 미끄러져서 파편들 위로 나동그라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놀란 탓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이게 뭐 하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이 망망대해 같은 사막에서의 밤을 혼자 지새우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써가며 배터리를 짊어진 채 다시 동체를 기어 올라갔다.
“어휴… 좀 쉬자.”
나는 좌석 뒤쪽에다 배터리를 대충 올려두고 좁아터진 좌석 안에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일단 한숨을 돌린 다음에 작업을 시작했다. 막상 수납된 케이블을 꺼내서 연결하자니 군용인데다 5년이나 전의 전투기라 혹여 프로토콜 같은 게 달라서 생기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단자 규격은 일단 맞는듯해, 냅다 꽂은 후 호기롭게 배터리를 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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