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인기와의 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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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인기와의 대화(1)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언덕 너머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스패너를 도로 내려놓았다. 아무리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사륜구동의 미션계 따위를 내가 고작 스패너 하나로 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시도를 하질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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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몇 개인가 미쳐 마저 조립하지 못한 부품들을 외면하며 나는 트렁크를 열어 생수를 한 병 따서 마셨다. 처음 오는 사막 탐험에 대비한답시고 생수와 식량을 트렁크에 꽉꽉 쟁여 오길 천만 다행이었다. 내일 낮이 밝으면 차에서 분리해낸 룸미러로 다시 조난신호를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식량과 물은 한 달을 족히 버틸 수 있는 양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물을 마시며 선인장 한 그루 솟아있지 않은 사막을 둘러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기대했던 사막의 식물 상태는 이미 균형이 다 무너져서 온통 유칼립투스 하나만 점령해 있었다. 뭔가 더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계속해서 깊게 들어온 게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조난신호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빈 페트병을 구기는데, 어두워져가는 주변 너머로 사막 저편에 있는 뭔가의 빛이 아주 약하게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절대 자연적인 것일 리가 없는 빛이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살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멸등이 뭔지 자세히 보기 위해 차 안을 뒤져, 망원경을 꺼냈다.
“…저게 뭐야.”
틀림없는 인공 구조물이었지만 도대체 무엇인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안 않다. 삐죽하게 솟은 무언가가 보일 뿐이었다. 빛은 그 끝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Help me! I'm here! Anybody out there?(도와주세요. 저 여깃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나는 손을 흔들며, 급한 대로 마구 우렁차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급격히 어두워져가는 사막 가운데에서 점멸등만 느리게 깜빡댈 뿐이었다. 나는 그 방향을 향해 다가가며 계속해서 소리치고 랜턴을 비추는 등의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러자, 점멸등이 갑자기 빠르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의 신호를 알아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외의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망원경으로 관찰한 인공물은 아무래도 날개를 달고 있는 무언가였다. 반가움과 호기심, 약간의 경계심이 뒤섞인 채로 나는 계속해서 발을 재게 놀렸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것이 소향의 비행기임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다가가자 그것이 전투기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순간, 겁이 더럭 났다. 만약 전투기 안에 파일럿이 있다면, 식량을 빼앗기 위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Is anyone there?(거기 누가 있나요?)”
아주 미약한 크기였지만, 대층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어쩔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I'm not good at English. I am Korean(저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 저는 한국인입 니다.)”
빛이 깜빡이는 속도가 다시 느려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맞은 편에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헉… 한국인이세요?”
“저는…….”
상대편에서 무언가 말을 해 왔지만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눈물 나게 반가운 마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뭐라고 하셨어요? 잘 못 들었…….”
나는 말을 걸다가 멈췄다. 거기에는 사람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 무인기에 탑재되어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엔진 과열로 동체의 2/3가 전소되어 이곳에 불시착한 이후로 줄곧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허탈한 기분에 맥이 빠져버렸다. 과연, 콕핏 안은 텅 비어있었고, 살짝 열려 있는 캐노피 안쪽의 어딘가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공지능이라니… 왠지 속은 기분이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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