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보물 ‘고령 장기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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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보물 ‘고령 장기리 암각화’

경상북도 기념물 고령 안화리 암각화
경북도 문화재자료 고령 봉평리 암각화
지산동30호분 개석에서 나온
지산동 암각자료

8면 암각화.jpg

 
암각화(岩刻畵)는 암석위에 다양한 기법으로 새긴 그림으로 제작 기법상 암채화와 구별되는 암화의 한 종류이다. 우리나라와 시베리아, 중국, 몽고 등의 동북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 분포한다.
그러나 민간신앙으로 행해진 흔적이나 고등종교를 바탕으로 제작된 마애불 같은 조각들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선사인들이 남긴 회화적인 속성이 없는 불규칙한 각흔이 중요한 연구대상이 된다는 것을 볼 때, 암각화를 단순히 “그림”이나 “미술”의 근대적인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고고학적인 흔적이나 유물보다는 그림 그 자체의 해석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경향을 보여줬다. 선사시대 기호와 상징, 종교와 제의 등 인간 사고의 매우 복잡한 정신세계를 접근해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초 고령의 양전동암각화(현 고령 장기리 암각화)와 울산의 반구대암각화가 학계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현재 수많은 암각유적이 발견되고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암각화는 주로 한반도의 동․남해안이나 이들과 연결된 강의 중상류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전체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호남의 여수, 남원지역 등도 모두 영남지역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령군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보물 고령 장기리 암각화와 경상북도 기념물 고령 안화리 암각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고령 봉평리 암각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지산동30호분 개석에서 나온 2점의 지산동 암각자료가 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場基里岩刻畵)
지정별 : 보물
지정일 : 1976년 08월 06일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아래알터길 15-5(대가야읍)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마을에 위치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천신과 산신이 교감해 알을 낳은 곳이라 해 알현 또는 알터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암각화는 남향의 수직 암벽 위에 새져져 있는데, 그림이 새겨진 면은 길이 5m, 높이 1.5m 정도이다. 그림 내용은 동심원(同心圓)과 신면형(神面形)이 주를 이룬다. 형태에 대해서는 검파형, 신면형, 가면형, 방패형, 인면형, 장방형 기하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보고되어 있다. 새김방식은 쪼기로 기본형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문질러서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3구분 되는데, 중앙부[A]에는 2개의 동심원과 9개 정도의 신면형, 왼쪽부[B]에는 1개의 동심원과 8개 정도의 신면형, 오른쪽부[C]에는 1개의 동심원과 원 내부에 3~5개의 구멍이 새겨진 2개의 암각과 더불어 11개 정도의 신면형이 새겨져 있다. 그 외 주 바위면 아래에 계단처럼 앞으로 튀어나온 곳에서도 신면형 1개가 더 확인된다.
동심원은 암벽의 중앙 상단에 1개, 중앙 상단 왼쪽에 1개, 왼쪽 하단에 1개, 오른쪽 하단에 1개 등 모두 4개가 확인된다. 이 중 중앙 상단의 동심원은 전체 그림의 중심을 이루는데, 가운데 지름 3cm 정도의 구멍(성혈)을 중심으로 3개의 원을 두른 형태이다. 가장 바깥 원의 지름은 25cm 정도이다.
신면형은 동심원을 중심으로 중앙과 좌우측 등 크게 3개의 소군집을 이루고 있다. 장방형의 기본 형태를 띠며, 그 내부를 2~3단으로 분할하고, 그 안에 2~3cm 내외의 성혈을 팠다. 가장 위쪽에는 장방형과 내부 분할선보다 얕게 판반원, 혹은‘U’자형의 이마홈이 관찰된다.
그리고 기본 형태의 아래를 제외한 좌우와 상면에 5cm 전후의 선을 깃털처럼 그려 넣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현재 확인되는 신면형은 모두 29개 내외이며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동심원과 신면형의 선후 관계에 대해서는 A군 상단에 위치한 동심원의 가장 외곽에 돌려진 원과 그 위쪽에 위치한 깃털이 없는 신면형이 서로 중복되어 새겨 진 것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 두 암각은 동심원의 외곽 원이 먼저 새겨진 후에 신면형이 나중에 새겨진 것으로 보여 동심원이 깃털이 없는 신면형보다 앞선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근의 안화리 암각화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확인된다.
암각화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청동기시대로 보는 것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나, 한국 암각화 속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편년은 연구자 간에 서로 차이가 있다.
한편, 1976년 고령 양전동 암각화로 지정돼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2010년 10월 지정문화재에 대한 명칭을 새로이 정리하면서 고령 장기리 암각화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됐다.
 
※고령 안화리 암각화(高靈安和里岩刻畵)
지정별 :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일 : 1993년 11월 30일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 산1
시   대 : 청동기
 
회천의 합류지점에서 안림천 상류를 따라 3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하천변 단애부의 하단 해발 38m 정도에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안림천이 크게 휘돌며 감싸는 곳으로 하천을 따라 발달한 능선 말단부의 편평한 수직 단애면 2개 지점에 각각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1993년에 제1지점, 1994년에 추가로 제2지점이 발견됐다.
제1, 2지점에는 모두 17개 정도의 암각이 새겨져 있는데, 암각의 종류는 동심원(同心圓) 1개와 나머지는 모두 신면형(神面形)이다. 주류를 이루는 신면형은 이마부분 중간을 ‘U’자 또는 ‘V’자형으로 처리하고 일부는 이마 위쪽으로 머리털 같은 짧은 선을 넣었으며, 도형 내부는 세로선 또는 가로선으로 분할하여 그 사이에 원형 홈을 파기도 하였다.
제1지점에는 모두 7개의 암각화가 확인되는데, 중복된 것을 포함하면 9개로 볼 수 있다. 가장 잘 관찰되는 4개는 수직바위면 상부에 1열로 나란히 배치돼 있으며, 나머지 3개는 4개의 암각이 있는 바위의 상부 좌측에 위치한다.
제2지점은 제1지점에서 좌측으로 3m 정도 떨어진 수직 단애면에 위치한다. 9개의 암각이 확인되는데, 상부에 3개, 하부에 6개가 유존한다. 그리고 하부 우측면에도 성혈과 암각선, 깃털 등이 있으나 자세히 알기 어려우며 신면형으로 추정된다.
한편, 암각화의 중복관계를 통해 보면 동심원→깃털 없는 신면형→깃털 있는 신면형→깃털이 없으면서 상부가 쇠뿔처럼 튀어나온 신면형 암각의 순으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안화리와 장기리 암각화에서는 동심원이 먼저 새겨진 다음에 신면형이 새겨진 공통성을 보여 서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고 새김의 순서도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제1지점의 상면에는 현재 1/2 정도가 유존하지만, 왼쪽으로 누워있는 신면형 암각이 있어 이례적이다.
 
※고령 봉평리 암각화 高靈鳳坪里岩刻畵
지정별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일 : 2021년 08월 26일
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산102
시   대 : 청동기
 
봉평리에서 대평리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순평마을 동편에 형성된 해발 220m 야산의 서쪽 능선 사면 산록에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다.
암각화가 새겨진 전체 바위면은 450×210cm 정도로 최하단부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비스듬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앞쪽 바닥에도 일부 암반이 노출돼 있다. 현재 암각화는 바위면 하부의 280×90cm 정도되는 범위에서만 확인되는데, 원래는 바위 전면에 새겨져 있었지만 상부는 풍화작용으로 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은 바닥면에서 160cm 정도 위에 있는 바위면 중앙 상단부에 지름 10cm, 깊이 4cm 정도의 바위구멍이 한 개 파여 있다. 그 아래인 바닥으로부터 90cm정도 되는 바위면에는 대략 열다섯 개 정도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제작 방식은 폭 1cm 내외, 깊이 2~3mm의 규모로 바위면을 쪼아 홈을 낸 다음 여러 차례 문질러 음각선으로 형태를 표현했다.
바위면 오른쪽에는 마제석검형(磨製石劍形) 암각이 3개 정도 확인되는데, 모두 돌칼이 아래로 향한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1점은 검신과 손잡이의 형태가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유사하다. 그리고 왼쪽에는 톱니 모양의 기하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쪽에는 말굽형으로 보이는 암각이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왼쪽에는 비파형동모(琵琶形銅棠)의 암각이 아래로 향하게 표현돼 있으며, 역시 아래를 향하고 있는 무경식석촉(無頸式石鏃)도 새겨져 있다.
그 외 가운데의 성혈을 중심으로 한 겹의 원을 둘러놓은 원형암각이 4~5점 정도가 확인된다. 그와 함께 바위면 전체에서 사선을 그어놓은 선각과 20여 개 내외의 쪼은 흔적이 곳곳에 있다. 한편 이곳에서 남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산록의 수직 바위면 하단에는 세로로 길쭉한 홈을 파놓은 여성성기형의 암각이 확인된다.
봉평리 암각화의 발견은 암각화의 제작 시기와 관련한 실마리를 확보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암각화 앞면의 퇴적층에서는 석기박편 포함층이 확인된 바 있고, 전면에 펼쳐진 봉평들에는 다수의 지석묘와 대규모 석기제작장 등이 분포하고 있다. 더불어 그림의 주요 모티브가 석검, 비파형동모, 세형동검 등으로 청동기시대 유물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이 암각화는 봉평들 일대에 청동기시대 대규모 석기 제작장을 운영했던 집단이 석기 제작과 관련한 제의를 행하면서 조성한 유적으로 추정되며, 제작시기는 청동기시대 중기에서 후기 사이(대략 BC 600~300년)로 추정된다. 마제석검(磨製石劍), 세형동검(細形銅劍), 비파형동모(琵琶形銅鉾) 등으로 보이는 26개의 표현물이 확인되고 있으나 상당수가 발견될 당시에 이미 훼손이 심한 상태로서 보존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봉평리 암각화는 고령은 물론, 경상남북도에 산재해 있는 선사시대 다른 암각화와의 비교․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판단돼 2021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박노봉 기자
자료제공: 고령군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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