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인물 고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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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인물 고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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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광장 회전교차로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고령 관내 도처에 고스란히 남이 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에 여섯 번째로 연재하고 있다.  <편집부>

 

 

◆ 김준문(金俊文)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이장(而章)이다. 정헌대부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를 증직 받았던 수(銖)와 정부인 강양이씨(江陽李氏) 사이에서 연산군8년(1502년) 5월 16일에 태어났다. 중종 때 무과에 등제하고 절충장군행 진주병마우후를 지냈다. 명종 22년(1567년)10월 8일에 졸하였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 칠동 선고 묘후 신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전의이씨로 묘는 합폄이다.
※ 참고문헌 : 고령김씨 족보(갑술보), 고령군지(1996년)

◆김지(金池)

본관은 경주이다. 강진현감을 지낸 충서와 통임랑 응복의 딸인 숙인 청주한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후 김천찰방을 지냈다. 몰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백씨(伯氏) 주부공(主簿公) 수(洙) 동하(仝下) 자좌(子坐)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59년), 경주김씨 수은공파내 참봉공파보(정유보)

◆ 김집(金戢)

본관은 경주이다. 봉직랑을 지낸 응길과 공인 분성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조선시대 돈녕부·봉상사 등에 소속된 종4품 관직인 첨정을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고령군 서십리(西十里) 반룡사 백호등 손향원에 있다. 배위는 연(硏)의 딸인 김해송씨이다.
※ 참고문헌 :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후 직장공파보(무자보), 고령세거성씨편람

◆ 김탁(金鐸)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진경(振卿)이고, 호는 죽촌(竹村)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장생과 훈련참군 승주의 딸인 정부인 가수노씨 사이에서 6남으로 태어났다.
중종 11년(1516년) 병자 식년시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중종 14년(1519년)기묘 식년시 문과에 급제했다. 중종15년(1520년)에 정언을 역임했고, 이후 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사헌부장령·사간원사간·사헌부집의·승정원동부승지·병조참지 등을 두루 역임했다.
삼사(三司)와 호당(戶當)에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중종 28년(1533년)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중종 29년(1534년) 김안로가 쪽지를 병사 공에게 보내어 재물을 요구했는데, 성질이 꼿꼿한 사람으로 평소 김안로가 몰래 불궤(不軌)한 술책 품은 것에 분개했다.
그래서 사자를 휘어잡아 기를 꺾어 욕보이고는 한 가지의 물건도 주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강도 장무작(張無作)을 잡지 못한 죄 때문에 조선 시대에 의금부에 딸려 관인 및 양반 계급의 범죄자를 가두어 두던 감옥인 조옥으로 잡혀왔는데, 결국 체직되었다.
회재 이언적과 도의지교가 있어 회재 만사정이 전한다.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 고곡동 산 23의7번지 칠동 조고계하 유좌이다. 배위는 수해(壽海)의 딸인 초계정씨(草溪鄭氏)이다.
※ 참고문헌 : 중종실록, 국조문과방목, 고령김씨 족보(갑술보)
◆ 김철(金澈)

본관은 경주이다. 강진현감을 지낸 충서와 통임랑 응복의 딸인 숙인 청주한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후 겸사복을 지냈다. 몰년은 미상이고 묘소는 실전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59년), 경주김씨 수은공파내 참봉공파보(정유보)

◆ 김충서(金忠瑞)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휴중이다. 성균생원을 지낸 총(驄)과 현감 규(奎)의 딸인 의인 박씨 사이에서 세조 11년(1466년) 태어났다. 통훈대부 강진현감을 지냈다. 중종 19년(1524년)에 졸했다. 배위는 통임랑 응복의 딸인 숙인 청주한씨 이다. 묘소는 합천군 덕곡면 율원촌후 선고 동서상 자좌로 쌍분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59년), 경주김씨 수은공파내 참봉공파보(정유보)

◆ 김현(金灦)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달보이다. 명종 22년(1567년) 춘당정시에 갑과 1인자로 뽑혔으나 어떤 사유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발표를 취소하는 파방으로 무과에 등제하여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사과를 지냈다. 생졸년 미상이다. 배위는 성종대왕 3세손 원성군 탁의 딸인 숙부인 완산이씨이다. 묘소는 충남 천안군 광덕면 행정리 산 11의6번지에 있다.
※ 참고문헌 : 고령군지(1996년), 고령김씨 족보(갑술보)

◆ 김형(金瀅)

본관은 경주이다. 수의부위를 지낸 원서와 진사 세원의 딸 청주한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 주부를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며 묘소는 실전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59년), 경주김씨 수은공파내 참봉공파보(정유보)

◆ 김형생(金荊生)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공우이다. 형조참의를 증직 받은 자숙의 장남으로 세종 24년(1442년) 1월 7일 태어났다. 성종 16년(1485년) 을사 알성시 문과에 등제한 후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을 역임했다. 성종 21년(1490년) 2월 28일 경사(서울)에서 졸했다. 성종 22년(1491년) 기해년에 합천군 묘산면 아태산 유좌원에 반장했다. 배위는 군수 석환의 딸인 숙인 양산이씨로 묘소는 합폄이다.
註) 반장(返葬) : 객지에서 죽은 이의 시체를 제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 장사를 지냄
※ 참고문헌 : 국조방목,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 김호진(金虎振)

본관은 일선이며 자는 문위이고 호는 진모재이다. 세심재 양정의 장남으로 영조 45년(1769년) 태어났다. 순조 1년(1801년) 신유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순조 14년(1814년) 6월 11일 졸했다.
묘소는 고령현 남이십리 선고 묘전 병좌에 있으며 쌍분이다. 문집이 있고 묘갈문은 정재 유치명이 지었다. 배위는 무호재 지존의 딸인 숙인 연안이씨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6년), 고령군지(1996년), 국조방목, 일선김씨 문충공파 세보(기축보)

◆ 김희(金希)

본관은 청도이다.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충무위 중부사정을 지낸 경손과 병조참판을 지낸 개(槪)의 딸인 창녕성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점(漸)은 형조판서, 호조판서,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조선 태조 때 6품관으로서 의흥친군의 십위에 속했던 좌우위익용낭장을 지냈다. 배위는 조봉대부밀직사정호군을 지낸 양사의 딸인 강진진씨이며 백산분토등에 쌍분이다. 참고로 태종 11년(1411년)에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간 숙공궁주가 공의 고모이다.
※ 참고문헌 : 청도김씨 대동보, 국조보감, 국조방목, 세종실록
◆ 나순손(羅順孫)

본관은 수성이며 호는 취원정(聚源亭)이다. 사헌부 감찰과 용궁현감을 지낸상지와 승지 예의 딸인 하빈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종 때 통훈대부 행 하동부사가 되어 학교를 세워 유풍을 진작시키고 민폐를 일소하여 선정을 베푸니 백성들이 성덕비를 세웠다.
단종 1년(1453년) 계유정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이 세조 원년(1455년)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서 정자를 지어 취원정(聚源亭)이라 하고 선비들과 시서예락을 즐겼다. 또한 뒷산을 파서 농사짓기에 편리하도록 잿길을 냈고 가뭄을 막기 위해 못을 파서 경작수리를 편리하게 했다. 길손들이 그 잿길을 하동로라 일컬었고 몽리민들은 그 못을 하동못이라 일컬었다. 하동로는 임하 정사철 선생이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의 영벽정(映碧亭)에서 읊은 시에 “반여사굴하동로(盤如蛇屈河東路) 즉 뱀같이 구불구불 하동로”라 노래했고 경산지에도 이 사적이 실려 있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배위는 좌사간 한(閑)의 딸인 숙인 성주배씨 이다. 묘소는 고령군 다산면 지동 현재 곽촌리 남중강(南中岡:남쪽 가운데 산등성이) 유좌에 있다.
※ 참고문헌 : 경산지, 수성나씨, 세보(무인보), 고령군지(1996년)

◆ 나이동(羅異童)

본관은 수성이다. 담재 수경과 진사 귀부의 딸인 순천박씨 사이에서 성종 4년(1473년)에 태어났다. 음사로 사헌부 장령을 거쳐 한성판윤을 지냈다. 묘소는 고령군 다산면 월성동 장척에 있다. 배위는 교리 중휘의 딸인 정부인 양주조씨이다.
※ 참고문헌 : 경산지, 조선환여승람 성주편
◆ 나처경(羅處經)

본관은 수성이며 호는 아당(芽堂)이다. 통훈대부 행 하동부사를 지낸 순손과 좌사간 한의 딸인 숙인 성주배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음사로 통례원 통찬을 거쳐 밀양부사를 지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소는 선공 묘하 유좌이다. 배위는 예조참판 함장의 딸인 전의이씨이다.
※ 참고문헌 : 수성나씨 세보(무인보), 조선환여승람 성주편

◆ 노삼(魯參)

본관은 강화이며 호는 낙애(洛厓)이다. 장사랑을 지낸 희순과 학조의 딸인 성산이씨 사이에서 중종 17년(1522년)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군자감 사직을 거쳐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으며 중추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 대점곡 자좌에 있다. 배위는 인손의 딸인 순천박씨이다.
※ 참고문헌 :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강화노씨 대동보(계사보)

◆ 노승주(魯承柱)

본관은 강화이며 자는 계지(繼之)이다. 사재감정을 지낸 걸과 지례장씨 사이에서 세종 17년(1435년) 차남으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 참군을 지내고 사헌부 집의를 증직 받았다. 성종 21년(1490년)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직동 집곡 자좌에 있다. 배위는 연의 딸인 숙부인 성주이씨이다. 공은 의병도대장 김면의 외고조부가 된다.
※ 참고문헌 : 고령지, 고령대관(1959년), 강화노씨 대동보(계사보)

◆ 도여원(都汝垣)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평보(平甫)이고 호는 신당(新堂)이다. 유학 현개의 아들로 선조 30년(1597년) 태어났다. 인조 17년(1639년) 기묘 식년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효종 4년(1653년) 10월 16일 인정전에서 유생을 시강했는데 공이 으뜸을 차지했다.
효종 5년(1654년)갑오 식년문과에 급제했으며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을 지냈고, 효종 때 공조정랑을 역임했다.
※ 참고문헌 : 국조문과방목, 효종실록, 고령대관(1959년)

◆ 박경(朴景)

본관은 고령이며 휘를 고쳐 경(勁)이다. 고려시대 궁중에서 쓴 주류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인 사온서의 정을 지낸 연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 때 어량·산택(山澤)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사재감의 소윤을 지냈으며 조선시대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고려말에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복거한 고령박씨 소윤공파 고령 입향조이다. 생졸년은 미상이며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속동 우현 자좌에 있으며 배위는 숙부인 팔계정씨이고 묘소는 실전이다.
※ 참고문헌 : 도원록, 고령박씨 소윤공파세보(갑오보), 고령대관(1959년)

◆ 박경구(朴慶九)

본관은 고령이며 자는 정응(鼎凝)이고 호는 불온재(不溫齋)이다.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를 증직 받았던 민국과 재겸의 딸인 증숙부인 성산여씨 사이에서 영조 44년(1768년)에 태어났다. 종숙인 경국에게 출계했다. 정조 22년(179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 지평·정언을 거쳐 제원도찰방을 지냈다. 헌종 8년(18/472년) 향년 75세로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월오동소학산 밑 관모봉 유좌이다. 초취는 의석(毅錫)의 딸인 월성최씨이고 재취는 종사랑을 지낸 휘영의 딸인 풍양조씨이다.
※ 참고문헌 : 숭정3경술증광별시방목, 고령박씨 소윤공파 세보(갑오보)


정리 최종동 기자
2017년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군 인물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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