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나라> 중심잡기 (3)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화나라> 중심잡기 (3)

한현정<시인 / 소설가>

한현정 홈피.jpg

한현정<시인 / 소설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겨울이의 가슴속에 쌓여 있던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어요.
“엥, 무슨 소리야.”
“너 때문이라구!”
“내가  뭘 어쨌다구!”
“네가 팽이 자랑만 안 했어도…….”
“그러니까 더 좋은 팽이를 구해와. 불면 훅 날아가는 허접한 것 말고 말야!”
민준이는 거만한 표정을 지었어요. 겨울이는 화가 나서 민준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어요. 민준이도 겨울이의 멱살을 잡았어요.
둘은 뒹굴며 싸웠어요. 필사적으로 버티고 때리고 발로 찼어요. 사범들이 달려와 떼어놓지 않았다면 계속 싸웠을 거예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둘은 멀찍히 떨어져 앉았어요. 민준이가 먼저 내리고 겨울이는 나중에 내렸어요. 십삼 층에 사는 민준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겨울이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오 층에 도착했지만 선뜻 내리지 못했어요. 겨울이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문이 저절로 닫혔어요. 엘리베이터는 다시 일층으로 향했어요.
한층 한층 숫자가 바뀔 때마다 겨울이도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어요. 문이 덜컥 열렸어요.
“이겨울 너 어디가?
아빠였어요. 겨울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와락 끌어안았어요.
“어, 너 얼굴이 왜 이래? 싸웠어?”
아빠가 허리를 굽혀 겨울이의 터진 입술을 찬찬히 들여다봤어요. 엘리베이터가 닫혔어요.
“응, 민준이랑…….”
“왜?”
“팽이 때문에…….”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았어요.
‘내가 도둑질을 항 걸 아는 걸까?’
엘리베이터가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것 같았어요. 아빠와 겨울이 사이에 벽이 생긴 것처럼 서먹했어요.
아빠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어요. 겨울이는 눈을 질끈 감았어요. 엄마를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요.
“엄마는?”
“외갓집에 갔어.”
“왜?”
“외할머니가 오늘 퇴원을 하셨거든. 오늘은 외갓집에서 잘 거래.”
아빠의 말에 겨울이는 엄마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바지를 벗는데 동전이 와르르 쏟아졌어요. 동전은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으로 흩어졌어요. 마치 중심을 잃고 흩어진 겨울이의 마음 같았어요.
이상하게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뒤죽박죽이었던 오늘 있었던 일이 하나하나 떠올랐어요. 겨울이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닦으며 동전을 주웠어요. 동전은 주워도 끝이 없었어요.
아빠가 라면을 끓여 주었어요.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 없었어요. 겨울이는 울어서 빨개진 눈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어요.
식탁에 앉은 아빠도 말이 없었어요.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겨울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그런 침묵의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아서 다시 눈물이 났어요.
“너 왜 울어?”
“아빠, 저는 나쁜 아이예요.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쳤어요.”
뜨거운 것을 토해낸 것처럼 목구멍이 아팠어요.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심장이 마구 뛰었어요. 부끄러워 아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어요. 겨울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어요.
“이 녀석, 그래도 양심은 있네.”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겨울이의 머리를 헝클었어요.
“어, 엄마가…….”
겨울이는 감정이 북받쳐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어요.
“엄마는 이미 알고 있어. 문구점 아줌마가 전화로 알려주었거든.”
문구점 아줌마와 엄마는 겨울이가 1학년 때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사이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그 돈은 외할머니 병원비에 보태려고 준비한 돈이었어. 사실을 알고 엄마가 많이 울었지. 아빠도 깜짝 놀랐다. 화도 많이 났지만 좀 슬펐어. 우리 겨울이가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아빠가 겨울이에게 휴지를 건네주었어요. 아빠의 눈가에도 물기가 고였어요. 겨울이는 다시 고개를 숙였어요.
“그건 그렇고, 나머지 돈은 어떻게 했니?”
겨울이는 아빠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어요.
‘잃어버렸다고 할까? 빼앗겼다고 하면 아빠가 더 회를 내실지도 몰라.’
훅 치고 들어오는 팽이처럼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겨울이는 얼른 머리를 저었어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강력한 양심으로, 흔들리려는 마음의 중심을 꽉 잡았어요.  끝

구독 후원 하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