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나라> 중심잡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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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나라> 중심잡기 (2)

한현정<시인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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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시인 / 소설가>

 

 

“아줌마, 얼마에요?”
“음, 삼천 오백 원이구나.”
겨울이는 천 원짜리 네 장을 분식집 아줌마 앞에 놓았어요. 아줌마는 백 원짜리 다섯 개를 남겨 주었어요.
왠지 거스름돈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꼈어요. 바지에 돈이 남아 있으면 엄마한테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태권도 수업도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딱히 갈 곳도 없었어요.
‘그동안 돈이 없어서 못 했는데 인형이나 실컷 뽑자.’
겨울이의 눈이 빛났어요. 인형 뽑기 방에는 중학생 형이 세 명 있었어요.
“아흐! 뽑을 뻔했는데…….”
형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괴성을 질렀어요.
겨울이는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지폐 교환기에 넣었어요. 만 원짜리 열 개가 되었어요. 미리 눈여겨봐 둔 인형이 있는 기계로 가서 돈을 밀어 넣었어요. 음악이 흘러나오고 집계가 움직였어요. 잡혀 올라오던 인형이 스르륵 힘이 빠져 흘러내렸어요.
겨울이도 중학생 형들처럼 안타까운 괴성을 질렀어요. 돈이 하나 둘 물거품처럼 사라졌어요.
“초딩이 무슨 돈이 이렇게 많냐? 천 원만 좀 빌려 줘라.”
아까 그 중학생 형들 중 한 명이 말했어요. 겨울이는 말없이 돈을 꺼내 줬어요. 그 형이 드디어 인형을 뽑았어요. 겨울이도 기뻐하는 형들과 한쪽 손을 들어 즐겁게 마주쳤어요.
그런데 한 번 손맛을 본 형들은 멈추지 않았어요. 자꾸 돈을 달라고 했어요. 겨울이는 아예 뽑기를 포기하고 중학생 형들이 하는 걸 구경했어요.
“돈 더 없어?”
“어, 없어, 이젠 진짜 없어!”
덩치 큰 중학생 형들이 겨울이를 둘러쌌어요.
“너 바지 주머니에 돈 있잖아! 인형은 너 줄 테니까 돈 내놔봐.”
“안돼. 우리 엄마 갖다 줘야 해!”
“만 원만 줘봐. 이번이 마지막이야!”
형들이 무서운 눈으로 겨울이를 째려봤어요. 겨울이는 망설이다 주섬주섬 돈을 꺼냈어요. 인형 뽑기 기계 위에 오천 원짜리 두 장과 동전들을 올려놓았어요. 형들은 동전을 놔두고 지폐만 챙겼어요. 그리고는 가방을 들고 우르르 나갔어요. 인형도 주지 않았어요.
“인형은 준다고 했잖아. 내 돈 내놔!”
형들은 키득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갔어요.
“경찰에 신고할 거야. 야, 이 도둑놈들아!”
겨울이가 냅다 소리를 질렀어요. 형들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어요.
‘도둑은 네가 도둑이잖아!“
마음 깊은 곳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겨울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저도 모르게 찔끔 눈물도 났어요.
남은 건 팽이가 든 상자와 수북한 동전뿐이었어요. 오만 원이라는 돈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어요 유리 상자 속에서 인형들이 웃고 있었어요. 마치 겨울이를 비웃는 것 같았어요.
아파트 단지 앞에 태권도 학원 차가 섰어요. 아이들 사이로 민준이가. 보였어요. 민준이는 누군가를 찾는지 두리번거렸어요. 겨울이는 민준이가 찾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태권도 도장을 다니거든요.
오늘은 도장에 갈 기분이 아니었어요. 도복도 입지 않아서 사범님께 야단을 맞을게 뻔했어요. 그렇다고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겨울이는 할 수 없이 팽이를 들고 버스를 탔어요. 민준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요.
“야, 이겨울! 너희 엄마가 찾던데?”
민준이의 말에 겨울이는 바늘에 찔린 듯 찔끔했어요.
태권도 도장에 도착하자마자 둘은 팽이를 꺼냈어요.
“오호,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것! 비싼 건데 어떻게 샀어?”
“하, 할머니가 준 용돈으로 사, 샀어.”
또 거짓말을 했어요.
“한판 뜰까?”
“오케이! 콜!”
민준이의 베이블레이드 크라이스 사탄과 겨울이의 베이블레이드 바스트 갓이 드디어 결전을 치르게 되었어요. 줄을 당기자 팽이는 윙 소리를 내며 휘돌았어요. 두 팽이가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겨울이의 팽이는 예상과는 다르게 점점 힘을 잃어 갔어요.
“에이, 다시 해!”
겨울이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무적의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갓이 이렇게 하무하게 쓰러질 줄은 몰랐어요. 겨울이는 힘껏 줄을 당겼어요. 팽이는 아까보다는 쌩쌩하게 돌아갔어요. 바람 소리가 휙휙 나는 것 같았어요. 날개도 더 크고 강해 보이는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몇 번을 해도 결과는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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