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잡기 (1)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이프

중심잡기 (1)

<동화나라>
한현정<시인 / 소설가>

한현정 홈피.jpg

한현정<시인 / 소설가>

 

 

“더는 안 돼!”
엄마가 딱 잘라 말했어요.
“딱 한 개만! 응, 엄마!”
겨울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어요.
“그게 얼만데?”
잠시 마음이 흔들린 엄마가 값을 물었어요.
“만 칠천 원이요!”
“뭐? 만 칠천 원? 무슨 팽이가 그렇게 비싸!”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어요.
“날개가 달라요. 엄청 크고 튼튼하거든요.”
“오나돼! 그렇게 비씬 물건은 사줄 수 없어. 안 그래도 할머니 때문에 정신없는데 팽이 사달라는 말이 나오나? 그건 그렇고 아까 학습지 하라고 한 건 다 했어?”
엄마가 말을 돌렸어요.
“아, 아직…….”
“숙제도 하지 않으면서 팽이 사달라는 말이 나오니?”
겨울이는 더 큰 꼬투리가 잡히기 전에 얼른 방으로 돌와왔어요.
맥없이 침대에 쓰러져 누웠어요. 천장에서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갓이 뱅글뱅글 맴돌았어요.
‘어떡하지? 그 팽이를 사야 민준이 녀석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가 되지 않았어요.
겨울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책상으로 가서 밀린 학습지 숙제를 하기 시작했어요.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사줄지도 몰라.’
겨울이는 의기양양하게 숙제를 마친 학습지를 들고 거실로 나갔어요. 그런데 암마가 보이지 않았어요.
안방 문을 열어보니 샤워를 하는 것 같았어요. 학습지를 식탁에 올려놓는데 다른 날보다 배가 볼록한 엄마 지갑이 눈에 띄었어요. 지갑을 살짝 열어보았어요.
‘엥, 무슨 돈이 이렇게 많지.’
오만 원 종이돈이 가득했어요.
그때였어요.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뭐해? 얼른 빼내지 않고. 너 지금 돈 필요하잖아.’
겨울이는 땀이 삐질 나는 것 같았어요. 덩달아 가슴도 쿵쾅쿵쾅 뛰었어요.
‘저 지갑 좀 봐. 어찌나 두툼한지 한 장 쯤 없어져도 모르겠다.’
겨울이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아냐, 이건 도둑질이야.’
‘엄마 돈 좀 가져갔다고 도둑이냐? 어차피 가족인데.’
가을이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엄마가 샤워를 마쳤는지 욕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어요.
겨울이는 떨리는 손으로 지폐 한 장을 꺼내 재빠르게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어요.
‘어서 자리를 피하자.’
급히 집을 빠져나왔어요.
“겨울아, 어디 가니?”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마음이 조급했어요. 엄마가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 것만 같았어요. 더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어요.
‘아들이 엄마 돈 잠깐 빌렸다고 감옥에 가지는 않아.’
겨울이 마음속에 있는 검은 목소리가 말했어요.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도둑질이잖아!’
‘지난번에 외할머니한테 받은 용돈도 엄마가 가져가서 안 줬잖아! 그 돈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자.’
겨울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엄마는 항상 내가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이나 세뱃돈은 가져갔어. 그 돈만 모아도 백만 원은 훨씬 넘을 거야.’
그러고 보니 엄마가 지키지 않은 약속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지난번에도 수학 시험 잘 보면 핸드폰 사준다고 해놓고도 안 사줘서 실망한 일이 있었어요.
겨울이는 그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수학 시험에서 겨우 한 개 틀렸다고 사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때 다시는 엄마와 약속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아파트 상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던 문구점이 다가오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겨울이는 떨리는 손으로 팽이가 든 커다란 상자를 꺼내 들었어요.
“그거 사려고?”
“네!”
“그 팽이 비싼데.”
문구점 아줌마가 겨울이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어요. 겨울이는 얼른 그 눈을 피했어요.
“알아요. 만 칠천 원이잖아요.”
“엄마가 사도 된대?”
“네. 외할머니가 용돈을 줬어요.
“그래? 겨울이 외할머니 편찮다고 들은 것 같은데…….”
겨울이는 떨리는 손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어요. 구겨진 오만 원짜리 한 장이 얼굴을 내밀었어요. 아줌마는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었어요.
겨울이는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어요. 바지가 불룩해졌어요.
팽이 상자를 들고 집으로 갈 수는 없었어요. 빨리 팽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문구점 옆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갓의 멋진 몸체가 햇빛에 반짝였어요.
조심스럽게 포장지 상자 안에 팽이를 넣고 보니 딱히 갈 곳도 없고 배도 조금 고픈 것 같았어요. 상가에 있는 분식집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혼자 먹으려니 좋아하던 떡볶이도 별로 맛이 없었어요.
다음에 계속

구독 후원 하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