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박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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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박의 침공

우종율<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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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율<수필가>

 

우후죽순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빈틈없이 장악했다.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침공하듯, 며칠 전 새 넝쿨손이 울타리 전체를 덮어버렸다. 이대로 둔다면 온 밭 전체가 녀석의 줄기로 싹쓸이할 게 틀림없다. 낫을 들고 녀석들의 줄기를 자른다. 녀석들은 억울하단 말조차 하지 않는다. 철면피다. 경계가 있는 곳에 함부로 뿌리를 내리면 주거 침입죄에 해당이 된다. 도대체 어디서 온 녀석일까.
닷세 동안 텃밭을 찾지 않은 게 이유라면 이유다. 그동안 우기가 길기도 하고 일상에 푹 빠져 다른 곳에 눈을 둘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 사이 불한당이 야금야금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다른 밭에 비해 필요 이상의 잡초들이 많아 성가시던 참이었다. 이 녀석까지 들어왔으니 지나는 이들, 얼렁뚱땅하는 농투성이에게 많은 야유를 보냈을 게 틀림없다.
우선 보기엔 박 줄기와 비슷하다. 처음 보는 이들은 어디서 이런 박이 넝쿨째 굴러왔느냐고, 키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건 엄연히 보호색을 위장한 나쁜 녀석의 행태다. 엄연히 녀석은 박이 달리지 않는다. 다가가 보면 잔가시가 수없이 돋아있다. 맨손으로 만지면 세균에 감염될 것 같고 녀석의 진액에 묻으면, 내 손도 변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비들이 몰려온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녀석들은 세포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 둘, 자르면 또 자라고 연이어 넝쿨손을 뻗어 시골뿐만 아니라 도심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반항심으로 유독 가스를 도시 전체에 뿌려 애먼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영화를 본 탓인가. 주인공은 그 원인을 찾으러 간다. 알고 보니 한 사람이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시기와 질투로 이어진 범죄 행위였다.
이건 엄연히 인간에 대한 도전,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질투심으로 이어지는 항거임이 분명하다. 하여 이름조차 ‘가시박’이라 붙였다. 우선 보면 가냘프지만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무서운 돌격대다. 모조리 끊는다. 뿌리까지 발본색원해야 한다. 어느 무리에 묻어서 이곳까지 온 씨앗인가. 우리네 환경을 초토화시키는 자연의 무법자다.
이러한 것들이 자연에만 있으랴. 인간 세상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금세 모든 속을 내어줄 듯 알랑거리다가,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외면하고 돌아서는 여반장如反掌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러한 인간들이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다. 미디어에선 흡사 경쟁이라도 하듯 자연인이라며 이들을 극복한 이를, 재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가시박 같은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자라나는 아이들조차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의 삶을 동경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져 가고 있다. 인간미가 점점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다 보니 이웃을 무시하고 심지어 자기 부모조차 버리는 세태다. 엄연히 그가 그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돌려받을 세상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세상이다.
집요한 침공, 수많은 씨앗 폭탄이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다. 태무심한 사이, 온 들판이 녀석들의 영역으로 바퀼 게 뻔하다. 중요한 건 그들과 외면하고 그도 안 되면 과감히 결별 선언을 할 일이다. 낫 든 손에 점점 힘을 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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