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동나무와 오동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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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오동나무와 오동나무(1)

서상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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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조(시인·소설가)

 

작은 호수엔 반달이 조심스레 발을 담근다. 저물어 가는 가을의 그리움 같은 달이 영순을 앞서 호수를 찾은 것이다. 보고 있으면 가지 않고 보지 않으면 어느새 성큼 가버리는 저 달의 걸음이 흐르는 세월의 모양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낯선 시집생활이 삼 년을 다 채워 가고 영순은 꽤나 길었던 그 세월을 마음 다독이며 잘 견뎌왔다. 저녁 설거지가 끝난 뒤에는 집 옆의 호숫가, 자그마한 바위에 걸터앉아 능금같이 상큼한 스물다섯 살의 마음을 풀어놓았다가 주워 담기를 수없이 하였었다. 그 사이에 팔뚝만큼의 굵기밖에 되지 않던 바위 옆 오동나무도 청년기를 바라보는 사내아이처럼 제법 듬직하게 자라나 있었고, 그 오동나무 또한 외롭게 홀로 선 제 운명의 길을 거꾸로 거슬러 자신의 근원에 닿아 보고자 상념이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호수는 달의 쉼터만 되어 준 것이 아니고 영순과 오동나무에게도 낯선 곳에서의 뿌리내림에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축복을 받으며 혼례를 치르고 들어온 시집이라면 남편의 그늘 아래서 정만 붙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영순은 산골의 논 여섯 마지기에, 우시장의 값을 치른 소처럼 신랑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중매쟁이 손에 끌려 낯선 경상도 땅에 왔었다.
신랑이 몸이 좋지 않음은 미리 들어서 알았지만 뇌 기능이 점차 마비되어 가는 심각한 정도라 면사포는 물론이고 시골 동네 족두리조차 얹어 보지 못했다. 자신 한 몸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은 채 따라 나선 길이라 달리 실망이나 원망도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없다. 내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종살이라도 좋아! 다 죽느니 나 혼자 죽으면 되지.’하고 늘 마음속으로 되뇌며 살아왔던 터였다.
초저녁부터 영순이 호숫가에 앉아 있는 시간은 자신을 죽이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끓어오르며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그것을 죽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애착을 죽이며 지난날의 꿈 부풀던 추억을 죽이고 또 죽였다.
오늘은 저 달이 호수를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했다. 점심 때 받은 한통의 전화가 힘들게 정돈되어진 영순의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오빠처럼 편하게 따르면서도 마음속 연정을 걷어낼 수 없었던 재우 오빠의 속울음이 깊게 배인 목소리였다. 영순이 경상도로 온 후 곧바로 대전으로 가서 요릿집 허드렛일을 거들며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영순을 떠나보낼 때 재우 오빠도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서 빈곤과 빈곤이 합치면 더 큰 빈곤이 될 뿐이라며 억지 자위로 이별을 하였었다. 가난이 가져다주는 배고픔과 인간답게 살지 못함이 한으로 맺혀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마저 접어 버리는 것이 배려라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것이 가슴속에서 조약돌처럼 조금씩 닳아 영순의 볼을 타고 서러움으로 흘러내렸다.
이 어두운 산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산짐승들이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자신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영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영순에게는 스스로의 희생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재우 오빠는 영순이 소문대로 경상도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었다. 사실 그것은 천평골이 떠들썩하도록 소문난 일이고 어느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이다. 그리고 영순의 친정에서는 못사는 친정식구가 들락거리면 영순에게 행여 피해가 될까싶어 발걸음을 일절 끊다시피 했었다. 그 뿐 아니라 토지를 받고 딸을 건네준 부모의 부끄러운 마음에서도 웬만하면 핑계를 대고 걸음을 피해 왔었다.
그런데 지난 봄 두 살 아래 여동생 경순이가 형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겠노라고 왔다 가고서는 식구들의 한숨소리가 잦아지고 또, 여동생은 지난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재우 오빠에게도 이야기를 해버렸던 것이다.
경순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재우오빠는 경순이가 다녀간 달포 후에 이종사촌 오빠라고 거짓소개를 하며 찾아와 한나절을 머물다가 갔었다. 재우 오빠의 생각을 떠올리자 갑자기 속울음으로 깊게 흐느끼는 한 남자의 가슴이 싸늘한 날씨 속에서 영순의 몸 안으로 주체하기 힘들게 밀려 들어왔다.
‘나는 죽었다. 이영순은 죽었다. 내가 죽고 또 죽어야만 친정식구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내 남편이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다. 내 운명은 결정되어 버렸다.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거역 못할 그 잘난 신의 뜻일 것이다.’
영순은 내면에서 고개를 치미는 모든 것들에 대해 비닐을 덮어 질식시키듯 죽여 나갔다.
오동나무의 까칠한 껍질이 영순의 손바닥에서 상념을 긁어내고 있었다. 영순은 오동나무에 이마를 맞대었다. 오동나무의 가녀린 떨림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은 떨림이 아니라, 오동나무의 숨소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이 편했다. 자신을 오동나무에 의탁해 버리고 매미 껍질처럼 가볍게 붙어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이래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인가?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쓰러지려고 할 때 그 무거움을 대신 받아 주는 것이 사랑인가? 오동나무가 쇠기둥처럼 굳건하게 느껴졌다. 믿음이었다. 내가 손을 놓지 않고 이마를 떼지 않는 한 오동나무는 영원히 외롭지 않은 숨결을 전해 줄 것 같았다. 천평골에서 들었던 면 소재지의 예배당 종소리는 그래서 울렸던 것인가. 초하루가 되면 어머니의 나일론 보자기는 그 귀한 쌀 몇 홉을 움켜쥐고서 목탁소리 들리는 절을 향하여 어머니를 따라 나섰던 것인가?
‘내게는 사랑도 필요 없다. 나는 종교도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오동나무야, 내 삶에는 너만 해도 벅찬 위안이구나.’
영순은 한없는 평화로움에 젖어 있었다. 아늑한 보금자리로 드는 듯 안온했다. 쌀쌀한 가운데서 한 줄기 따뜻한 공기가 등을 에워싸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순은 자신의 피가 오동나무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흘러들어 오는듯하여 다시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오동나무를 감싸 안은 채 양 볼을 살며시, 그리고 은밀하게 비벼 보고는 돌아서서 호수의 달을 보며 등을 기대었다.
달은 호수의 반쯤도 못 미친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머물러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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