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천국 위스키 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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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천국 위스키 바 (1)

강기철
고령문인협회 회원
고무신STUDY 글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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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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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 앞에 두 손을 꽁꽁 묶여서 끌려가던, 눈물의 이별 고개를 넘어 갈 때처럼 나는 묶인 것도 없는데 어쩌지 못하고 묶여서 끌려가듯이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BTS 노래를 들으며 마지못해 출근을 한다. "아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을 안고 대중교통의 수많은 냄새에 잡아먹혀 나도 커다란 하나의 냄새가 되어서 간다.
나의 사장님은 외모만 보면 누구나 생각 하는 것처럼 별 볼일 없는 한 마리 짐승이다. 그렇다고 그에 비해 내면은 좋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런 사장님은 꼭 다들 주말의 피곤이 남아서 아직 몽롱한 월요일 아침마다 사무실 직원을 모두 모아서 논리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디 신문이나 방송에서 본 이야기를 앞뒤 생략하고 자기 혼자 도취해서 말씀을 하신다. 어떻게든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 아라비안나이트의 40인의 도적 같다. 머리는 좌에서 우로 3대7 가르마를 넘겨 기름을 발라 영락없는 부패한 정치꾼 같은 모습으로 우선 약간 뒤뚱 거리며 단상에 오른다. 배가 나오고 다리가 짧으니 당연한 폼이다. 볼수록 몇 해 전에 본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단상의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며 소리가 잘 나는지 아-, 아- 소리를 내 보고는 " '싹쓸이 PF' 사원 여러분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라는 고정 맨트를 시작으로 본인만 모르는 잠깐의 언어폭력이 이어진다.
"여러분 최근 우크라이나와 소련의 전쟁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총을 맞을 일도 없고 겨누고 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큰 행운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모두 축복을 받았다 생각 하시면 됩니다. 이제 그 행운에 보답을 한다 생각을 하시고 다들 열심히 업무를 잘 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그리고 열심히 그렇게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멋진 여러분이 되기를 기대 합니다." 라고 연설을 하신다.
일제 강점기 때 자기 할아버지가 아주 악명 높은 순사 이었다던데 그런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 아주 필이 충만해서 연단에서 고래고래 가미카제(일제의 자살특공대)의 쇼를 하듯이 로봇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말소리는 인근 산에서 메아리가 울려 같은 말을 꼭 두 번씩 떠들고 있다. 그럴 때면 주인을 닮아서 일하기 싫어하는 회사 앞 봉필이네 논에 허수아비도 놀라서 본의 아니게 참새를 날려 버리고는 눈을 감고 있곤 했다. 사실 말이 나서 말인데 그 행운이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자.그게 정말 공평하게 받았다면 말도 안 하겠다. 누가 봐도 모두가 고통 받았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시대적 아픔을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데만 이용한 사장님 조상의 덕 아닌 덕에 우리의 몇 수십만 배는 더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행운이고 고마운 일이라면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죽도록 일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아니 그렇게 까지는 공평하게 못 해준다 하더라고 내가 첫 데이트까지 펑크 내 가며 작업했던 그날의 야간 근무 수당, 그러니까 평일 시간의 1.5배의 수당을 지급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말이다.
그래봐야 갓 신입인 나의 야근 수당이 몇 푼이나 된다고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하긴 사출 파트에 근무하는 태식이 말에 의하면 어느 날 직원이 그만 발이 미끄러져 그 육중한 사출기에 바지 자락이 감겨 결국 발과 발목뼈가 으스러 저셔야 기계를 멈추었고 병원에 옮기려고 119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더니 사장님의 이복동생이며 하는 일 없이 도박판에나 기웃 거리던 사람을 둘째어머니 부탁으로 할 수 없이 사장님이 회사에 앉힌 부장님이 가발도 벗어서 손에 들고 민머리를 사이렌처럼 반짝 이시며 책상 다리 같은 그 짧은 다리로 급하게 헐래 벌떡 달려 와서는 119 구급차를 부르지 말고 기다려 보라고 하고는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직원에게 가서 보험을 산재로 하지 말고 회사에서 치료비를 줄 테니 그냥 혼자 공장 밖에서 농사일 하다 다친 걸로 하자고 강압적으로 말했다 한다. 그리고는 그러자는 대답이 나올 때 까지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을 태세를 보이자 그 직원이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하고 나서야 구급차도 아닌 그 직원 차로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출근을 강요하여서 할 수 없이 그 직원은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같은 그물 안에 든 피라미 같은 직원 고혈을 짜서 저렇게 번지르르한 명품을 올챙이처럼 배가 툭 나온 옷걸이에 걸쳐 입고 명품을 만든 장인에 대한 모독을 하면서 저런 낮 두꺼운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사람의 행운도 모자라 아마 근처 동물들의 행운인지 불행인지도 모를 것들을 죄다 자기가 싹쓸이 해갔나 보다.
나와 태식이도 처음부터 피라미는 아니었다. 우리는 지역 초·중·고를 다니며 서로 번갈아 가며 반장도 하고 나름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나는 도시로 대학을 가고 태식이는 어머님을 중학교 때 사고로 여의고 아버지 마저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셔서 그 충격과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하셔서 고향을 떠날 수 없어 남아서 영농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 태식이 농사는 그해 역대 초강력 태풍으로 비닐하우스 까지 날아가면서 빚만 잔뜩 지게 되었고 나는 전쟁으로 인한 유래 없는 고유가로 경기가 급속히 둔화되고 연일 폭락하는 주가로 기업들이 어려워 합격 통지를 받고 출근하기로 했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취직을 못해 동가식서가숙 하며 지내고 있던 차에 마침 고향에 산업단지가 들어온다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우선 입사하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변두리에 있는 산업단지라 그런지 사원들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노무 업무의 기본인 노동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부당함을 알리거나 호소하지는 않았다. 근로자의 대부분이 근처에서 농업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라 올해처럼 자연재해로 인해 농사를 망친 해에는 비료·퇴비·사료·비닐·철골 등 시설 재료와 여러 가지 부대비용으로 농협에서 초봄에 대출 받은 농자금을 갚기 위해서와 또 다음 해에 수확이 있을 때까지의 기간에도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해 주는 그 일자리는 그 만큼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행운은 풍선에 들어가는 바람이라 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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