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산수·의약·풍수·역사·천문·예학 다방면에 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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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경학·산수·의약·풍수·역사·천문·예학 다방면에 정통

<인물평전>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 재조명(1)

1. 한강 선생 영정.jpg

한강 선생 영정

 

2. 무흘구곡 표지석.JPG

무흘구곡 표지석

 

▣ 무흘구곡(武屹九曲)

고령에서 성주, 김천을 이어주는 길과 계곡이 무흘구곡(武屹九曲)이다.
이 계곡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이하 한강) 선생이 남송 때 주희가 노래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은 무흘구곡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한강(寒岡)의 무흘구곡(武屹九曲), 1곡부터 9곡에 이르는 詩를 소개한다.
천하산수최저령(天下山誰最著靈)
천하의 산중에 어느 곳이 가장 신령스러운가
인간무사차유청(人間無似此幽淸)
인간 세상 이곳처럼 그윽한 곳 없을 듯
자양황복증서식(紫陽況復曾棲息)
하물며 자양선생 깃들어 살던 곳
만고장류도덕성(萬古長流道德聲)
만고에 도덕 명성 길이 흘러내리네
구곡(九曲) 중 제1곡은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에 있는 봉비암(鳳飛岩)으로 한강은 봉비암을 소재로 석양에 낚싯배를 띄우고 무심히 노니는 연하지경(煙霞之景)을 읊다.
일곡탄두범조선(一曲灘頭泛釣船)
첫 굽이 여울에 낚싯배 띄우노라
풍사요요석양천(風絲繞繞夕陽川)
석양 냇가 바람에 흔들리는 낚싯줄
수지손진인간염(誰知損盡人間念)
뉘 알랴 인간살이 옥갖생각 다 버리고
유집단 불만연(唯執檀 拂晩煙)
박달 삿대 짚고서 만년의 늙은이 시름 헤치는 걸  
제2곡은 성주군 수성리(갓말 뒷산)에 위치한 한강대(寒岡臺)로 굴원(屈原)이 난경(難經)에 비유할 만한 한강대의 아름다운 정경을 읊었다.
이곡가주화작봉(二曲佳姝化作峰)
둘째 굽이 미녀와 봉우리 되었다는
 춘화추엽정장용(春花秋葉靚粧容)
봄꽃 가을 낙엽단장도 고울시고
당년약사영균식(當年若使靈均識)
당시에 영균이 있어 알았더라면
첨각이소설일중(添却離騷說一重)
이소의 하소연에 일장 설화 더 했을 걸
제3곡은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에 소재한 배바위(船巖)으로 무학정을 소재로 한 것으로 천년동안 외로이 골짜기가 배 형상을 하고 있음을 읊었다.
삼곡수장차학선(三曲誰藏此壑船)
셋째 굽이 누가 배를 이 산골에 감추었나
야무인부이천년(夜無人負已千年)
밤에도 훔쳐갈 이 없어 천년 세월 지났네
대천병섭지하한(大川病涉知何限)
건너기 어려운 큰 강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용제무유지자련(用濟無由只自憐)
건네 줄 방도 없어 혼자 슬퍼하노라  
제4곡은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에 소재한 선바위(立巖)으로 밝은 달밤에 못에 비치는 높은 입암의 위용을 읊었다.
사곡운수백척암(四曲雲收百尺巖)
넷째 굽이 백척 바위에 구름 걷히고
암두화초대풍삼(巖頭花草帶風鬖)
바위 위 꽃과 풀은 바람결에 나부끼네
개중수회청여허(箇中誰會淸如許)
그 중에 그 누가이런 맑음을 일겠는가?
제월천심영락담(霽月天心影落潭)
천심에 갠 달빛 못에 비치는 것을
제5곡은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 사인암(舍印巖, 捨印巖)에서 강학의 생활을 읊었다.
오곡청담기허심(五曲淸潭幾許深)
다섯 굽이 맑은 못은 얼마나 깊은지
담변송죽자성림(潭邊松竹自成林)
못가에 솔과 대는 절로 숲을 이루었네.
폭건인좌고당상(幅巾人坐高堂上)
두건 쓴 사람은 단 위에 높이 앉아
강설인심여도심(講說人心與道心)
인심과 아울러 도의심을 설파하며 강의하네
제6곡은 김천시 증산면에 소재한 옥류동(玉流洞)으로 옥류동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의 심상을 그리고 있다.
육곡모자침단만(六曲茅茨枕短灣)
여섯 굽이 초가집이 물굽이를 베고 누워
세분차융기중관(世紛遮隆幾重關)
세상의 근심 걱정 여러 겹으로 걸어 막았네
고인일거금하처(高人一去今何處)
고매한 그 사람은 이제 어디로 갔나
풍월공여만고한(風月空餘萬古閑)
바람과 달만 남고 천지는 한적하네
제7곡은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소재 만월담(滿月潭)으로 만월담에서 돌여울을 둘러선 층층한 봉우리에 학이 나는 풍광을 읊었다.
칠곡층만요석탄(七曲層巒遶石灘)
일곱 굽이 산 겹겹 돌여울을 둘렀는데
풍광우시미증간(風光又是未曾看)
풍광은 이 또한 지금까지 못 보던 곳
산령호사경면학(山靈好事驚眠鶴)
산신령은 호사가라 자던 학 놀라게 해 깨고
송로무단락면한(松露無端落面寒)
솔 이슬이 까닭 없이 무단한 얼굴에 떨어져 차갑네
제8곡은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소재 와룡암(臥龍巖)으로 와룡 앞에서 자연과 혼영일체가 돼 인간을 잊고 사는 생활을 읊었다.
팔곡피금면익개(八曲披襟眠益開)
여덟 굽이 가슴을 여니 눈앞이 활짝 열리며
천류여거복여회(川流如去復如廻)
냇물은 흘러가는 듯 다시금 맴돌고
연운화조혼성취(煙雲花鳥渾成趣)
희뿌연 구름 꽃과 새는 혼연히 어울리네
불관유인래불래(不管遊人來不來)
유람객이야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누나
제9곡은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소재 용추(龍湫)다. 와룡 앞에서 자연과 혼영일체가 돼 인간을 잊고 사는 생활을 읊었다.
구곡회두갱위연(九曲回頭更喟然)
아홉 굽이 머리 돌려 다시금 한숨 쉬니
아심비위호산천(我心非爲好山川)
내 마음 산천이 좋아 이러함이 아니로다
원두자유난언묘(源頭自有難言妙)
근원은 본래 말로 하기 어려운 오묘함이 있나니
사차하수문별천(捨此何須問別天)
이곳을 버려두고 다른 세상 물어야만 하나 
한강은 경학을 비롯해 산수·의약·풍수·역사·천문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 정통했으며, 특히 예학에 뛰어났다.
한강은 1543년(중종 38, 계묘) 음력 7월 9일, 임자(壬子) 자시(子時)에 판서공(判書公 : 諱 思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이 태어난 곳은 성주군 대가면 사월리(沙月里 : 現 칠봉리 유촌) 마을이다.
태백산맥(太白山脈)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준령(小白峻嶺)이 서남방으로 줄달음쳐 영남의 명산 지리산(智異山), 가야산(伽倻山)을 이루고, 가야산에서 다시 동으로 뻗은 줄기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만들어 성주(星州)의 명산인 칠봉산(七峯山)으로 이뤘다.
이 칠봉산을 안산(案山)으로 하고, 발원해 이천(伊川)으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실개천을 임수(臨水)로 해서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다.
한강의 선친 판서공(判書公)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음양과 오행으로 우주만물을 설명하는 철학)에 능통했다. 한강의 맏형은 참찬공(參贊公) 괄(适)이며, 둘째 형은 백곡(栢谷) 곤수(崑壽 : 초명은 逵)이다. 백곡이 태어났을 때 “이 아이는 장차 일품(一品), 정승(政丞)이 될 것이다.”라고 했고, 한강이 태어나자 “이 아이는 반드시 명현(名賢)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한강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字)는 도가(道可)이며, 호(號)는 한강(寒岡 : 향리에 한강이라는 대가 있음)인데, 선대는 서울에서 살았다. 할아버지 승지공(承旨公)이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사위가 돼, 선친 판서공이 현풍(玄風)외가에 와 있으면서 성주 이씨와 혼인한 인연으로 서울로부터 성주(星州)에 이사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강이 태어나던 1543년(중종 38년)은 풍기(豊基)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書院)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해로, 3차에 걸친 사화(士禍 : 조선시대 초기조신 및 학계의 반목세력다툼으로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 이후 다소 문운(文運)이 부흥(復興)되는가 했더니, 곧이어 다음 해에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났고, 명종(明宗)이 왕위에 오른 초기 8년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섭정(攝政)이 극도로 혼란해 뜻있는 선비들은 다시 산림(山林)에 은거(隱居)하게 됐다. 후일 한강이 사사(師事)한 퇴계(退溪) 선생은 태백산(太白山) 아래인 도산(陶山)에, 남명(南冥) 선생은 지리산(智異山) 속 덕천(德川)에 은거했다.
태백산 아래서는 퇴계(退溪)가 나고, 지리산(智異山) 아래서는 남명(南冥)이 살았으며, 가야산(伽倻山) 아래서는 한강(寒岡)이 태어났으니, 이 또한 우연이라 하리오. 한강은 퇴계로부터는 인(仁)을 배우고, 남명으로부터는 의(義)를 배워 이 나라 유학(儒學)의 대통(大統)을 이었으니, 선생의 출생을 두고 그야말로 ‘큰 별이 성주(星州)에서 돋았다.“라 할 수 있다. <다음에 계속>
 
* 청주정씨문목공대종회 발행 ‘寒岡鄭逑先生’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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