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미 마을에 경사가 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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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꼬미 마을에 경사가 있던 날

김광숙(보훈 실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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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과 15일 이틀 간 개진면 치산길 꼬미마을에 경사가 있었다. 꼬사모(꼬미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 이영종) 주최로 ‘내 고향 찾는 날’ 행사에서 꼬미마을 출향인, 마을 주민, 내빈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화합 한마당 잔치’를 성황리에 펼쳤다.

특히 이날 이남철 군수를 비롯한 각급 기관장들이 참석해 주최 측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향수를 달래는 기획에 찬사를 보내줘서 주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이날 꼬미마을 출향인과 주민이 모처럼 한데 어울려 추억을 간직한 치산마루 등 마을 곳곳을 둘러보면서 어린 시절을 함께 회상할 수 있어서 더욱 뜻이 깊었다.

나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최근에 귀향한 나로 이어지면서 100년을 훌쩍 넘기며 대대로 꼬미마을에 터 잡고 살았기 때문에 이날이 남다르게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님(김태만, 86) 말씀에 의하면, 꼬미마을이 한창 번성했을 때는 50여 가구에 150여 명이 이웃하면서 정겹게 살았다고 하셨다. 현재는 17가구에 27명이 살고 있어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된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열일곱 집, 사람이 거처할 수 있는 빈집이 일곱 집, 거처가 불가능한 빈집이 네 집, 허물어진 집터가 세 집 등 서른한 집으로 꼬미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영동초등학교 1회부터 폐교 후 개진분교를 거친 꼬미마을 졸업생이 200여명에 이른다. 

나는 누구보다도 꼬미 마을을 사랑하고 또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꼬미마을 가꾸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성미여서 ‘꼬미마을 가꾸는 일’이 직업이 됐다. 그리고 국가보훈처 ‘보훈 실무관’으로도 현재 활동 중이다.

지금 꼬미마을에 터 잡고 살고 있는 나의 작은 소망은, 이번에 ‘내 고향 찾는 날’ 행사를 통해 출향인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고향에 돌아와서 이웃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꿈꾼다.

‘꼬미마을 가꾸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몇 가지 욕심이 생긴다. 첫 번째로 배신 선생의 낙산서원과 마을 입구에 있는 효자비를 지방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이다. 두 번째 조희송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허락한 상태인 소장도서를 박물관 등 교육재단에 기증하는 일이다. 교육도서로서 소장 가치가 적다면 마을에 역사관을 만들어서 소장하는 방법도 있겠다.

세 번째 마을 주차장을 조성하면서 땅 밑에 묻혀버린 연자방아 돌 두 개를 꺼내서 마을의 역사를 증명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꼬미 마을을 가꾸는 일이 더 많지만 모두가 재원 조달과 맞물려 이 정도로 하고, 마지막으로 마을 게시판과 이정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현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구 소멸을 걱정한다. 인구의 가장 기본 단위인 마을의 주민이 점차 줄어드는 게 너무 안타깝다. 옛날처럼 이웃이 와글와글하면서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은 바라지 않더라도 꼬미마을에 최소한 더는 주민이 줄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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