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미성년의 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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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미성년의 밤(1)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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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이른 퇴근을 하고 내 구두 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번화가를 벗어나 편의점이 있는 골목에 도달했을 무렵, 웬 여학생이 아를 붙들었다. 

“저기, 언니… 저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미성년자가 편의점 근처에서 할 부탁이래 봤자 뭐가 있겠는가. 나도 살다 보니 말로만 들어오던 담배 셔틀을 부탁 받는구나 싶어 긴장했다가 여학생의 차림새를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귀밑까지 바짝 자른 똑단발에 뿔테 안경을 쓰고, 화장기나 꾸민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여자애의 차림새는 누가 봐도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모범생의 전형이었다. 이런 애도 담배를 피나?

“어떤 부탁요?”

“저… 소주 두 병만 좀 사다 주시면 안 될까요? 수고비는 드릴게요.”

눈가에 운 듯한 흔적이나 우울한 표정을 보아하니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직접 마시려는 것이거나, 혹은 나쁜 애들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이거나.

“학생이 먹을 거예요?”

여학생은 우물쭈물하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심부름이라면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애가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술 셔틀을 구하기도 어렵겠다 싶은 생각에 나는 피식 웃었다.

“수고비는 필요 없고, 나도 마침 술 땡기고 같이 마실 사람 필요한데 같이 갈래요?”

“네…? 어디를요?”

“내 원룸. 그게 싫으면 난 그냥 가고요.”

여학생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뭔가 궁리를 하는 듯 한참을 서 있었다.

“…그렇게 할게요.”

지루할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여학생이 내 제안에 수락했다.

나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고르고 계산했다.

“저 돈…….”

“됐어. 아니, 괜찮아요. 학생 우울해 보이는데 내가 쏘는 셈 치지 뭐. 소맥 괜찮죠?”

“네.”

“근데 나 말 편하게 해도 돼요? 대학생 동생도 있어서 존대 쓰는거 좀 어색한데.”

“그러세요.”

“학생도 나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고 말 놔도 돼. 통성명할래?”

“네. 저는 김민희라고 해요.”

“나는 정승연. 그냥 승연 언니라고 불러. 안주는 뭐 먹고 싶어?”

“아… 아무거나… 안 먹어도 괜찮고…”

“술 먹어 본 적 있어?”

“전에 무알콜 맥주 한 번 먹어 본 적 있어요.”

“무난하게 치킨 시킬까? 매운 것도 먹을 수 있어?”

“네.”

나는 폰을 꺼내 자주 시켜 먹는 치킨집에 전화를 걸었다.

“다솜빌라 304호구요, 후라이드 맵게 해서 하나 갖다 주세요.”

곁눈질로 보니 민희라는 여자 애는 어리둥절한 것처럼도 보이고, 조금 겁먹은 것처럼도 보였다. 안심을 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나 얼마 전에 남친이랑 헤어졌거든. 채인 건 아니고 그냥 서로 식어서 합의하고 헤어졌는데 오늘 같은 불금에는 역시 좀 허전한 생각이 드네. 오늘 술 먹고 다 털어 버릴려구.”

“네에……….”

“친구들 다 시집가서 살림하고 애 보느라 정신없는데 대고 술 푸자고 조르기가 뭐하더라고. 근데 혼술은 하기가 좀 그래. 원래 혼술하는 타입도 아니고 뭔가 처량맞잖아.”

민희의 반응을 살피며 아무 얘기나 두서없이 주절대는 사이, 원룸에 도착했다.

“들어와. 좀 좁지만.”

“실례할게요.”

다소곳한 태도로 재차 인사하는 모양새가 썩 건전해 보였다.

“너 공부 잘하지?”

“아뇨, 별로…”

“에이, 잘할 것 같은데.”

“나쁜 편은 아닌데 이번에 성적 엄청 떨어졌어요.”

“그래? 어쩌다가?”

나는 너저분한 방 안을 둘러보면서 청소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민희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가… 백승호 오빠 팬이데…”

“백승호라면… 블러퍼?”

“네.”

TV에서 몇 번 스쳐 가듯 본 적이 있을 뿐, 제대로 노래를 듣거나 한건 아니라서 어떤 연예인인지도 잘 모르지만 하여튼 아이돌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이었다.

“오빠가 이번에 드라마를 찍었어요. 그거 나온 시기가 하필 기말고사 기간이랑 겹쳐서… 인강 보는 척하면서 드라마 계속 봤어요. 넘 멋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오빠가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사람들이 다 처음인데도 연기 그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칭찬했어요. 액션씬도 스턴트맨 없이 막 찍고, 드라마 땜에 근육도 만들고…”

탁자를 대충 치우고 배달 온 치킨과 술을 같이 세팅하는 동안 민희가 하는 말에 내가 피식피식 웃었다. 민희는 자기가 생각해도 오빠에 대한 자랑이 너무 늘어졌다 싶은지 멋쩍게 같이 웃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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