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청렴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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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조선 중기의 문신 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청렴의 표상

<인물평전> 죽유(竹牖) 오운(吳澐) 재조명(4)

죽유종택(쌍림면 송림리 소재).jpg

죽유종택(쌍림면 송림리 소재)


마지막으로 성오당 이개립의 성오당에 쓴 ‘省吾堂八詠’이 있다. 이 작품도 일반적으로 볼 때 성오당의 각 건물과 경관의 성격에 비슷하게 맞춰 읊고 있으나 작자의 의도가 비교적 드러난다고 생각되는 작품 한두 수를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서적을 간직한 누대’라는 제목의 장서루(藏書樓)란 작품을 보자. 장서루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도서관인데 도서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 죽유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영백흥망백변여(映帛興亡百變餘)
역사의 흥망은 백번 이상의 변화를 겪었는데
성경제자집영차(聖經諸子集盈車)
성인 경전과 제자서가 수레 가득 모여 있네
청창일열흉천고(晴窓日閱흉千古)
갠 창문에서 날마다 천고 역사를 채득해야지
소살주과쇄복서(笑殺徒誇曬復書)
한갓 복서를 말린다고 자랑함은 우스운 일이라네

모아놓은 서적으로는 수많은 흥망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와 성인과 현인의 경전을 비롯해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가 있는데 이를 수레에 실으면 가득 찰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기구와 승구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서(史書)와 경전(經傳)과 제자서(諸子書)를 아무리 많이 간직하고 또 아무리 많이 읽어서 기억하더라도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날마다 천고의 세월 동안에 산출된 책을 가슴으로 읽어서 체득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구와 결구에서강조하고 있다. 한갓 기억된 지식을 자랑만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해서 지식의 체득을 통한 경륜과 지혜로의 심화(深化)나 승화(昇華)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바로 ‘흉천고(胸千古)’란 시어가 이를 상징하고 ‘복서(腹書)’는 그렇지 못한 지식의 단순한 암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성오당(省吾堂)의 장서루(藏書樓)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나름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어리고 어리석은 사람을 기르는 재실’이라는 제목의 ‘양몽재(養蒙齋)’란 작품을 보자.

청촉비난지수성(淸灟非難知水性)
청탁으로 물의 속성을 알기가 어렵지는 않으나
요수관수출산초(要須觀水出山初)
물을 볼 땐 산에서 처음 너울 때를 봐야 한다네
다군취의명재액(多君取義名齋額)
많이 그대가 뜻을 취해 재액의 이름을 지었으니
전극배란차물서(剪棘培蘭且勿徐)
가시 자르고 난초를 기름에 천천히 하지 말게나.

청촉으로 물의 속성을 알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나 물의 본질을 보려고 한다면 물이 산에서 처음 흘러나올 적에 봐야 한다는 사실을 기구와 승구에서 전재로 해서 표출하고 있다. 이 논리대로 가시를 자르고 난초를 기를 때에도 부지런히 제초와 배양을 해야 하듯이 어리고 어리석은 사람을 기를 때에도 처음부터 부지런히 일깨워주고 잘못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전구와 결구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재실의 액자 이름을 ‘양몽(養蒙)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의미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양몽’을 ‘관수’에서 취해 해석한 것은 죽유의 독특한 안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국화를 심어놓은 언덕’이라는 재목의 ‘종국오(種菊塢)’란 작품을 보자.

불종한화재은일(不種閒花栽隱逸)
잡다한 꽃 심지 않고 국화를 심은 것은
한영요대설상여(寒英要待雪霜餘)
찬 꽃이 눈과 서리에도 남기를 바란 때문이네
도리한포추향만(陶籬韓圃秋香晩)
도연명 울타리와 한씨 채전에 가을 향기 늦으니
일멱남린범옹저(日覓南鄰泛瓮蛆)
날마다 남쪽 이웃 찾아 술 단지에다 띄우네

국화의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구와 승구에서는 언덕에 국화를 심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잡다한 꽃을 심지 아니하고 유독 국화를 심은 것은 국화가 눈과 서리를 이기고 살아남아 꽃을 피우기 때문이란 것이다. 바로 국화가 지닌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속성을 알기 때문에 심는다는 것이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향기가 물씬 풍기는 국화 꽃잎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다소 풍류스러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도연명의 울타리와 한씨(?)의 채전(菜田)에 있는 국화가 진한 향기를 뿜어내니 이것을 따다가 날마다 남쪽 이웃집을 찾아가서 술 동아리에다 띄우고 함께 술을 마시는 모습의 묘사에서 풍류스러운 장면을 떠올릴 수가 있겠다.
일반적으로 국화주는 들어보아도 국화 꽃잎을 술에 띄워 마시는 것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옛날 굴원(屈原)도 ‘이소경(離騷經)’에서 ‘조음목란지추노혜, 석찬추국지락영(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아침에는 목란에서 떨어진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에서 떨어진 꽃잎을 먹는다) 이라고 해서 국화를 먹는다는 말은 들어봤으나 술에 띄워 마시는 것은 과문(寡聞)한 탓인지 몰라도 들어본 적은 없는 듯하다.
하여간 국화 꽃잎을 술에 띄워 마시는 발상을 성오당의 ‘종국오(種菊塢)’란 언덕에서 발상한 것은 참신하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죽유의 연작시에 나타난 죽유의 특징적인 세계를 살펴봤다. 여타의 시인과 비슷한 발상으로 작품을 구성한 것도 있지만, 죽유 특유의 발상으로 노래한 작품도 있음을 알 수 가 있었다.

▣ 기행시(紀行詩)의 세계
죽유의 금강산과 강원도 기행시에 많은 시세계가 존재하고 있겠지만 그 가운데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 가운데 비교적 특징적인 것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자각자성(自覺自省)의 계기와 탈속성계(脫俗仙界)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죽유가 세속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강한 집착과 욕망을 인식하고 이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과 좁은 세계관을 극복하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된 계기를 자각자성(自覺自省)의 계기라는 항목으로 마련해 놓고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묘길상에서 비가 내린 뒤에 장차 외산을 향하며’라는 제목의 ‘妙吉祥雨後, 將向外山’이란 작품을 보자.

한계우후농청종(寒溪雨後弄靑淙)
찬 시냇물은 비 온 뒤에 푸른 물결 자랑하고
녹수창산총개용(綠樹蒼山總改容)
녹색 나무 선 검푸른 산 모두 모습을 고쳤네
일숙선감신돈성(一宿仙龕神頓醒)
절간의 하룻밤 숙박에 정신이 갑자기 각성되니
출산공괴구진종(出山空媿舊塵蹤)
산을 나섬에 공연히 옛 속세 발자취 부끄럽네

예시 작품의 기구와 승구는 비 온 뒤의 묘길상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강우(降雨)로 인해 수량(水量)이 별로 많지 않던 찬 시내에 물이 불어나 드디어 푸른 물결이 일렁거릴 정도로 소리치며 시냇물은 흘러가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색의 나무들이 들어찬 검푸른 산도 먼지를 씻어내고 나니 더욱 짙푸른 산으로 탈바꿈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태도로 연결해 보여주고 있다. 즉 묘길상의 절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이러한 경관의 변화를 보고 나서 자신이 지난날 케케묵은 속세의 발자취를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한 태도로 지냈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게 댔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강우라는 자연 현상이 자연에서 일으키는 변화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지난날의 잘못과 좁은 시야를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단순하게 금강산의 빼어난 경관만 구경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깊이 관찰해 이를 자신의 변화로 전이(轉移)시키려는 죽유의 자연 인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겠다.
‘불정대 즉사’라는 제목의 ‘佛頂臺 卽事’란 작품도 유사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임진봉래기만봉(臨盡蓬萊幾萬峯)
봉래산 수많은 봉우리를 모두 밟아보는데
일공래의소대풍(一笻來倚小臺風)
한 지팡이로 와서 작은 대의 바람에 기댔네
종금시각건곤대(從今始覺乾坤大)
지금부터 비로소 천지가 광대함을 깨닫겠으니
북극남명망안중(北極南溟望眼中)
북극과 남명이 바라보는 눈 속에 있구나

예시 작품 기구와 승구는 금강산 거의 전체를 작은 지팡이 하나 짚고 직접 답사하는 장면을 노래하고 있다. 일만이천 봉우리나 되는 금강산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거의 밟아보는데 이제 불정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구와 결구에서는 불정대에 이르러 광대한 건곤을 깨닫게 된 심정을 ‘비로소’라는 한 글자의 시어가 바로 이전에는 그렇게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전에 가졌던 좁은 시야와 세계관이 불정대를 와서 봄으로서 처음으로 확대되고 확장되는 감흥을 이 작품에서 노래하고 있다.
한편 죽유의 금강산을 노래한 작품에는 속세를 떠나 선계(仙界)로 지향하고자 하는 탈속선계 지향(脫俗仙界 志向)의 성격을 지닌 작품들도 있다. 탈속선계를 지향한다는 것은 그만큼 속세에 굳게 묶여 있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고백일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탈속을 지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빼어난 절경의 금강산을 보고 막연하게 일시적으로 가지는 단순한 탈속선개 지향이 아니라 평소 자신의 내면에 깊숙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금강산이라는 절경을 마주하고 보니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러한 경우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만폭동에서 앞의 운자를 다시 쓰며’라는 제목의 ‘萬瀑洞, 再疊前韻’이란 작품을 보자.

자한기유부장년(自恨奇遊負壯年)
기이한 유람을 장년에 저버릴까 봐 스스로 한탄하여
공지근력임퇴연(笻枝筋力任頹然)
무기력한 근력이나마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섰네
운변미상삼생채(雲邊未償三生債)
구름 가장자리에서는 삼생의 빚을 갚지 못했고
호상장무수경전(湖上將蕪數頃田)
호수 위에는 두어 이랑의 밭이 장차 묵어가는구나
학거대공찬속검(鶴去臺空攢束劒)
뭇 봉우리 솟은 아래 학은 떠나고 대는 비었으며
신참귀삭후비천(神劖鬼削吼飛泉)
귀신이 깎고 판 듯한 폭포는 큰소리로 울부짖네.
선구세월한다소(仙區歲月閒多少)
신선 구역에서 보내는 세월은 한가함이 많으리니
하일추잠단속록(何日抽簪斷俗綠)
어느 날 비녀를 빼 던지고 속세 인연 끊어볼까?

이 작품의 두련에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명산 유람을 나서려는 작자의 강한 의지가 나타나 있다. 나이가 더 들면 지팡이를 짚을 힘조차 없을 것이고 따라서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유람에 나서지 못하면 이를 두고두고 자기 스스로 한탄하게 될 줄을 알기 때문에 명산 유람에 나서야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함련과 경련에서는 자신의 심정과 가는 도중에서의 상황, 그리고 금강산 만폭동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三生債’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금강산에 가서 시를 지어보려는 크나큰 숙제가 아니가 한다. 아직까지 금강산을 들어가지 못해 삼생의 빚을 갚지 못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가는 도중에 보니 호수 위에는 넓은 발이 묵어 있는 상황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만폭동을 들어서니 칼을 묶은 듯이 뾰족하게 솟은 금강대와 서학봉에 학은 날아가고 없고 사람 하나 없는 누대만 덩그렇게 서 있다. 귀신이 깎고 판 듯이 신비스러운 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내리쏟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적막하지만 빼어난 경치는 대단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미련에서 자신의 속세를 떠나 선계를 지향하려는 생각을 마침내 밝히고 있다. 신선 구역에서 보내는 세월에는 한가로움이 많은 까닭에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속세에서의 삶을 떠나 선계로 지향하려는 의지를 ‘추잠단록(抽簪斷綠)’이란 시어(詩語)로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금강산이 속세를 떠나 선계로 지향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할 만큼 빼어나다는 사실과 실제로 속세를 떠나 선계의 명산에서 살아보려는 강렬한 희망과 의지를 표출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아래 ‘백천동 시내 위에서 읊조린다.’라는 제목의 ‘백천동계상음(百川洞溪上吟)’이란 작품을 보자.
이 작품에서 앞의 작품과 유사한 인식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자하선동수빈회(紫霞仙洞首頻回)
자하의 신선 골짜기 미련 남아 자주 돌아보는 것은
청흥전소호막재(淸興前宵浩莫裁)
지난밤 맑은 흥취가 커서 재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네
진누백년종미료(塵累百年終未了)
속세 번뇌 백년 세월에도 마침내 끝나지 아니하니
몽혼장요정양대(夢魂長繞正陽臺)
꿈속의 혼은 길이길이 정양대를 맴돌고 있다네

예시 작품의 기구와 승구는 한없는 맑은 흥에 도취가 돼 자줏빛 노을이 낀 신선 골짜기에 강한 미련이 남아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청흥(靑興)’으로 대표되는 감정은 속세에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감정으로 묘사돼 있다. 자신으로서는 주체할 수가 없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러한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자줏빛 노을이 낀 신선의 골짜기를 쉽게 떠날 수 없어서 자주 머리를 돌려 바라보는 행위는 결국 떨쳐버릴 수 없는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속세의 번뇌는 쉬 사라지지 않으므로 선계를 꿈꿀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노래하고 있다. 선계로 대표될 수 있는 장소로 결구에서 ‘정양대(正陽臺)’를 설정하고 있는데 꿈속의 혼백(魂魄)이 길이길이 맴돈다는 것은 그만큼 선계에의 지향이 강렬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정양대’는 실제로 그런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금강산 정양사 부근에 있는 천일대(天一臺, 혹은 天逸臺)나 개심대(開心臺)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속세를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함으로써 탈속선계에의 지향이 강렬함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바로 ‘사주대에서 중린의 운자를 차운한다.’라는 제목의 ‘瀉珠臺, 次仲隣韻’이란 작품이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 (사)남명학연구원 발행 죽유 오운의 학문과 사상
죽유 오운의 삶과 문학세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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