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청렴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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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조선 중기의 문신 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청렴의 표상

인물평전
죽유(竹牖) 오운(吳澐) 재조명(3)

운양각(죽유 종택 내.JPG

운양각(죽유 종택 내)

 

당시적 풍격을 지녔다고 널리 알려진 權應仁(권응인, 1521~? )이 소식의 「적벽부」에서 운자를 취하여 절구 10수를 지었는데, 오운이 이것을 모방해 위의 시를 지었다. 이 작품에서 오운은 소식이 「적벽부」에서 발휘한 시적 상상력을 대폭 수용하고 있다. 객과 나를 내세워 대화체로 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天地一瞬耳’와 ‘飛仙挾不得’ 등은 「전적벽부」의 ‘天地曾不能以一瞬’, ‘挾飛仙以遨遊’를 적극적으로 용사한 것이다. 이 용사는 위에서 제시된 시편에 제한되지 않고, ‘何用羨登仙’, ‘有客橫長槊’, ‘天地亦一物’, ‘淸風明月也’ 등 허다한 시구로 발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술과 신선과 시라는 소재적 측면에 있어서도 소식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 작품의 ‘飛仙’과 ‘詩酒’, ‘詩友’와 ‘罇中酒’, ‘擧酒’와 ‘蘇仙’, ‘獨酌’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소식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운의 위의 작품은 시와 신선과 술이라는 낭만적 상상력이 철학적 논리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운이 주로 활용한 철학적 논리는 「장자」에서 빌려 왔다. ‘莊子’ 「大宗師」를 보면 ‘골짜기 속에 배를 숨겨두고는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한밤중 힘센 자가 등에 지고 달아나도 어리석은 사람은 알아채지를 못한다고 했다.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더욱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조물주의 섭리는 조금도 빗나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莊子’ ‘秋水’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두고 장자와 혜자가 벌인 논쟁을 용서한 것이다. 오운은 이를 통해 사사로운 욕망을 벗어나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내적인 즐거움은 절대적인 것으로 외부의 어떤 것으로도 제어될 수 없음을 보였다.
오운의 시세계에 끼친 소식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식이 기본적으로 유학을 숭상했지만, 도가사상도 적극 받아 들여 그의 문학을 낭만적이고 열정적이게 했다. 시와 신선과 술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겨 거대한 자유세계를 지향했다. 소식은 도잠(陶潛)에 대해서 자기 동일시를 하기도 했으며, 진사도(陳師道)가 그렇게 말하고 있듯이 만년에는 이백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오운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바다. 그가 기본적으로 유학적 분위기에서 성리학을 숭상하지만, 문학정신에서 살펴봤듯이 도가나 불가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소재적인 측면에서도 시·선·주를 적극 활용하면서 세속적 속박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물 인식방법에서 확인한 것처럼 도잠의 자연친화적인 태도에 공감했고, 이백의 낭만적 취향을 적극 구가했다. 이처럼 소식과 거의 문학적 구도를 같이하므로, 소식을 위의 작품에서처럼 ‘소선’이라며 칭송할 수 있었고, 문집 서문이나 ‘사제문’ 등에서도 시는 소식과 황정견을 대적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오운의 시세계에 성리학적 도학풍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나 당시적 성격이 짙다. 역사현실에 밀착돼 있으면서도 섬세한 감흥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흥은 그의 시를 두보보다 이백에 가깝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시정신이 기본적으로 낭만주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주자학을 신봉하면서 일련의 서적을 편집하고, 성리학적 이황을 모신 제자로서 그는 주자학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자연스러운 소식을 떠올리면서, 주희나 이황보다 덜 도학적이고 이백보다는 더 철학적인 방향으로그 낭만주의의 향방을 설정했다. 이것은 소식이 그러했던 것처럼, 유가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자연 친화적 성격의 도잠과 낭만적 자유주의를 구가한 이백의 시정신을 종합적으로 성취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성리학자의 낭만주의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 연작시(連作詩)의 세계

 

죽유의 문집에는 우선 눈에 띄는 특징으로 4題 44首의 연작시(連作詩)가 실려있다. 첫 번째 작품은 감사(監司) 박계현(朴啓賢)이 지은 ‘紫溪十六詠’에 차운한 작품이고, 두 번째는 송계(松溪) 권응인(權應仁)이 지은 ‘效權應仁摘松雪赤壁賦字.模得十絶’이고, 세 번째는 ‘摘鮮于樞所寫前後赤壁賦.模作夏寒十絶’이며, 마지막으로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의 성오당(省吾堂)에 쓴 ‘省吾堂八詠’이다.
그런데 대체로 차운시(次韻詩)의 성격상 원시(原詩)나 혹은 소재에 구애되어 시상이 그 범위를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그러한 한계를 조금 벗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을 중심으로 내용 항목을 설정해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우선 ‘次紫溪十六詠韻’에서는 독락당(獨樂堂) 주변에 있는 여러 명소를 노래한 박계현 감사의 ‘紫溪十六詠’을 차운한 작품으로 많은 작품은 각 명소의 이름이나 본래적 의미에 충실하게 노래하고 있으나 몇몇 작품은 작자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작품 몇 수만 골라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선현(先賢)의 부재에 대한 무상감(無常感) 내지는 아쉬움을 노래한 작품과 자신의 수양(修養) 의지를 표출한 작품만 살펴보기로 한다.
독락당(獨樂堂)이란 제목의 작품을 보자.

 

무복구의승차당(無復摳衣升此堂)
다시는 옷을 걷고 이 당을 오를 수 없으니
당존인거감여장(堂存人去感余腸)
당은 있는데 사람은 가서 내 마음 아프다네
당년독락심하처(當年獨樂尋何處)
당년의 독락을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월백당전계수장(月白堂前溪水長)
월백당 앞으로 시냇물이 길이길이 흘러가네

 

이 작품 기구와 승구를 보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같은 대현인에게 학문을 배워보고 싶은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과는 세월이 어긋나서 그롷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독락당은 존재하고 있으나 사람은 떠나고 없어서 자기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을 통해 선현의 부재에 대한 무상감과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 ‘시냇가 정자’라는 제목의 ‘계정(溪亭)’이란 작품에서도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칠리탄응양일두(七里灘應讓一頭)
칠리탄에 응당 한 머리는 양보하겠지만
풍류불멸피양구(風流不滅披羊裘)
풍류는 엄자릉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네
수연정사인안재(數椽亭舍人安在)
두어 서까래 정자에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영상한운춘복추(嶺上閒雲春復秋)
고개 위 한가한 구름은 사시로 떠다니네

예시 작품 전구를 보면 역시 선현의 부재를 언급하고 있다. 기구와 승구를 보면 이 계정이 비록 당춘산(當春山)에 있는 엄광(嚴光)의 칠리탄 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선현의 풍류만큼은 결코 엄광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선현에 대한 강한 존경심과 자부심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현이 떠나고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전구에 표현하면서 결구에서는 고개 위 사시로 떠다니는 구름을 선현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명소를 보고 자신의 내면적 수양의 의지를 노래한 작품도 있다. ‘華蓋山’이란 작품이 그것이다.

소대천운계수동(掃黛穿雲溪水東)
시냇물 동쪽 검은빛 쓸어내고 구름 뚫고 오르니
천암만학약상종(千巖萬壑若相從)
천암과 만학이 마치 서로 따르는 듯하네
문삼안득봉두립(捫參安得奉頭立)
어떻게 하면 높디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세진생평개대흉(洗盡生平芥滯胸)
평생 가슴속 찌꺼기를 죄다 씻어낼까?

 

이 작품 전구와 결구를 보면 높디높은 화개상 꼭대기에 오라가 평생 가슴속에 가득찬 찌꺼기를 일시에 모두 씻어버리려는 강한 열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힘든 여정을 거쳐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호연(浩然)한 기상을 느끼며 평생 가슴 속을 채우고 있던 찌꺼기를 모두 씻어버리고 싶다는 표현에는 자신의 내면적 수양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은 ‘권응인의 송설적벽부란 작품에서 글자를 뽑아내어 그것을 모방해 지은 10수의 절구’라는 제목의 ‘效權應仁摘松雪赤壁賦字.模得十絶’이란 작품이다. 송계 권응인의 이 작품을 모방해 지은 죽유는 작품 속에서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으로 무상감과 풍류에 대한 인식, 달관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순서대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상감을 노래한 작품이다.

가무증유지(歌舞曾遊地)
일찍이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곳이
공여강자류(空餘江自流)
강물만 속절없이 절로 흘러가고 있네
오생엽상로(吾生葉上露)
우리 인생은 이파리 위에 이슬과 같고
인세학장주(人世壑藏舟)
세상은 골짜기에 숨긴 배와 같다네

 

예시 작품 기구와 승구는 번화한 곳이 적막해진 것을 노래하고 있다. 일찍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질탕하게 놀던 곳이 지금에 와서는 속절없이 강물만 절로 흘러가는 적막한 땅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해서 전구와 결구에서는 이파리 위의 이슬과 같은 인생과 골짜기에 감춘 배처럼 부단한 변화를 거듭하는 세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파리 위의 이슬은 해가 뜨면 곧바로 말라서 사라지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동시에 사람이 사는 세상도 골짜기에 감춰둔 배처럼 부단하게 변화하고 바뀌는 곳이어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壑藏舟’는 ‘장자 대종사’에 나오는 말로 사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바뀌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풍류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좌상영시우(坐上盈詩友)
자리 위에는 시인 벗들이 넘쳐나고
준중주불공(罇中酒不空)
술통 속에는 언제나 술이 가득하네
일생장득차(一生長得此)
한평생 길이이런 경우를 얻는다면
하락경무궁(何樂更無窮)
어떤 즐거움인들 다시 무궁하리라

시를 짓는 벗들이 넘쳐나고 굴통에 술이 마르지 않는 상황을 한평생 누릴 수만 있다면 어떤 즐거움이라도 무궁할 것이란 표현에서 작자의 풍류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겠다. 시주(詩酒)를 한평생 마음껏 누리는 것보다 더한 풍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관의 태도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세장강수(耳洗長江水)
귀는 긴 강물에 씻어버리고
금청절학풍(襟淸絶壑風)
회포는 골짜기 바람에 맑게 하네
세간천만변(世間千萬變)
세상의 천변만화가
일소진성공(一笑盡成空)
모두 헛됨을 한번 웃어보노라

강물에다 귀를 씻고 골짜기 바람에 회포를 맑게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의 천변만화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리해서 또 세상의 천변만화가 결국에는 모두 헛되다는 것을 알고 한번 크게 웃을 수 있다면 달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디음은 ‘선우추가 모사한 전적벽부와 글자를 적출해 그것을 본떠 하한정 10首의 절구를 짓다.’라는 제목의 ‘摘鮮于樞所寫前後赤壁賦.模作夏寒十絶’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죽유의 인식이 비교적 잘 드러난 작품을 살펴보자.
먼저 난국을 타개할 인물의 도래를 기대하는 인식이 드러난 작품으로 ‘반동에 내리는 소나기’라는 제목의 ‘반동취우(蟠洞驟雨)’란 작품을 보자.

 

정삭입천만(旌槊立千萬)
깃발과 창도 수없이 우뚝 서고
호표우횡반(虎豹又橫攀)
범과 표범도 또 횡행하고 있네.
주경수용기(疇驚睡龍起)
누가 잠자는 용을 깨워 일으켜서
변화수유간(變化須臾間)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키게 할꼬

예시된 작품 기구와 승구를 보면 자세하지는 않으나 내용으로 짐작해볼 때 임진왜란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군기(軍旗)와 창이 천만으로 우뚝 섰다는 것은 병사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고 ‘호표(虎豹)’는 일반적으로 사나운 짐승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왜적을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횡반(橫攀)’은 이리저리 마구 날뛰는 모습을 뜻하고 있어서 왜적들의 준동(蠢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인물의 출현을 고대하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수룡(睡龍)’은 와룡(臥龍)과 같은 말로 잠자는 용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는 능력자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용을 일깨워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켜서 상황의 반전을 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기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이고 혼란한 시대가 되면 그런 혼란을 잠재울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일반적인 바람이기에 죽유도 같은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은 은거(隱居)의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으로 ‘북촌의 저문 연기’라는 제목의‘북촌모연(北村暮煙)’이란 작품을 보자.

일모횡복단(日暮橫復斷)
날 저물 때 구름 모였다 흩어지고
풍전반유무(風前半有無)
바람 앞에선 반이나 있다가 없네
어초일생락(漁樵一生樂)
고기 잡고 나무하는 한평생의 즐거움
갱유타산호(更有他山乎)
다시 다른 산에도 있으려나

 

이 작품 기구와 승구는 날 저물 때의 연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연기 가운데 특히 저녁의 연기는 밥을 지을 때 발생한다. 동네의 밥 짓는 연기는 피어올라 공중을 가로 지르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렇지만 바람이 불면 더 쉽게 사라진다.
밥 짓는 연기는 일반적으로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느긋함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그런 연기를 언제나 볼 수 있는 어촌과 산촌의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물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 실제 생활인의 삶은 고달플 수 있겠으나 은자(隱者)의삶은 자족을 할 때 즐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한평생의 즐거움은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가? 라는 반문을 통해 현재 이곳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족(知足)과 자족(自足)이 전재된 어촌과 산촌 은자의 즐거운 삶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겠다.  

 

출처 : (사)남명학연구원 발행 죽유 오운의 학문과 사상
죽유 오운의 삶과 문학세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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