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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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4)

서상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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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조(시인·소설가)

 

<지난호에 이어>

두 개의 가방 중 하나를 열었다. 가방이 꽉 차도록 가득히 채워진 장부가 나름의 순서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이 많은 장부의 90%는 나머지 10%를 보호하기 위한 가짜 장부야. 90%의 내용은 어마어마하고 그럴듯한 것들이지만 다만 소설일 뿐이지.” 긴장한 채로 우두커니 곁에 서 있는 양 기사를 바라보며 유 목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가방만큼은 목숨 걸고 지켜야 돼, 알았지?” 가방 앞에서의 유 목사는 승리의 깃발을 든 장수처럼 자신감에 꽉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일이 잘못되어 내가 구속이 되고 여기 있는 가방마저 압수당하게 되면 양 기사가 가지고 있는 복사 본을 철저히 잘 관리해야 하네. 그 후의 일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면회를 왔을 때 일러주도록 하지.” 그리고는 제일 깊은 구석의 이불 뒤쪽에 가방을 두도록 지시했다.
날이 어둑해지자 김 집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 조 차장과 연결됐습니다. 말씀처럼 말 끄집어내기가 무섭게 와락 달려들던데요. 목사님은 자기네들이 보호해야 제일 안전하다면서 같은 편이라 생각하고 소통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별장에 계신 것을 이미 아는 듯이 말하기에 기다리고 계실 거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몇 시쯤에 통화를 했지?” “오늘 오후 3시쯤에 했습니다.” “곧 도착하겠군. 수고 많았어. 이제는 나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군.”
정원의 나무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어지기 시작할 무렵 벨소리가 울렸다. 유 목사에게 그 벨소리는 운명의 심판관이 결정문 낭독 후에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대문까지 마중을 나간 양 기사의 뒤로 건장한 남자 넷이 하나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 거실로 들어왔다.
유 목사는 긴장을 감춘 채 반가운 듯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넷 중 나이가 있어 보이고, 그나마 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 보이는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아마도 선임자인 듯 보였다. 유 목사는 그 남자의 손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일순간 긴장이 와르르 무너져 사라짐을 느꼈다.
“목사님 고생이 많으시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계신 분이신데…….”
첫 인사말에 유 목사는 이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서 회오리처럼 일어났다.
“예, 선생님. 일이 감당 못하게 꼬여가지고 제가 본의 아니게 신세를 져야 될 것 같습니다.”  
유 목사는 입을 연 김에 자신이 가장 강력한 끈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예의를 갖추고자 인사말을 이어갔다.
“어르신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죠?”
막강한 힘과 자신이 꽤 깊은 관계임을 과시하고픈 인사말에 남자 넷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짐을 느꼈다. 유 목사는 자신이 불필요한 말을 꺼냈구나하고 느끼는 순간에 남자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 듯 되물어 왔다.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유 목사는 종료시키고 싶은 대화였지만 이미 시작한 것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아! 저……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네요. 텔레비전을 통해서 자주 뵙고 있는데…….”
네 남자는 무표정하게 유 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몹시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휘감으면서 악수할 때의 체온은 체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이가 들고 선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살짝 젖히며 세 남자에게 신호를 했다. 그 신호와 동시에 세 남자는 별장의 1층과 2층을 뒤지기 시작했다. 양 기사는 눈이 둥그런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멀거니 서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간 남자가 “2층으로 올라와 보시죠!” 하고 다급히 선임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 목사와 함께 있던 그 남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동시에 1층을 수색하던 두 명 중 한 명이 유목사의 옆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유 목사와 양 기사는 비밀은신처와 그 안에 보관해 둔 가방이 발견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마음이 허망하게 내려앉았다. 2층에서는 가방을 펼치는 소리와 두 남자가 주고받는 얘기 소리가 강한 억양으로 들려 왔다.
“두 분 모시고 2층으로 올라와!”
단호한 명령 투의 목소리가 한 순간 별장 안을 두드렸다. 젊은 사내는 유목사의 팔짱을 끼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먼저 올라가 비밀공간을 발견하고 선임자를 불렀던 사내는 가방 두 개를 번호가 보이도록 놓아두었다. 4번과 5번의 번호가 또렷이 적혀있었다.
선임자인 그 사내는 유 목사에게 “4번과 5번이 있으면 1, 2, 3번도 있을 것이고, 그 뒤 번호도 분명 있을 터인데 나머지는 어디에 숨긴 것이요?” 하고 물었다.
유 목사는 5만 원 권 현금이 가득 든 가방과 공기총, 가스총, 구형권총을 합하여 5자루의 총이 들어있는 가방을 벽 쪽으로 밀쳤다. 그리고 자신이 보험 삼아 보관하고 있던 목숨 같은 서류 가방이 열어 젖혀져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선임자에게 말을 했다.
“이 번호는 원래부터 의미 없이 붙어있던 번호일 뿐 순서를 정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자 그 사나이는 “기대했던 대답이군요. 그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오대양 사건은 이미 역사 속에 묻힌 사건이니까 볼 것도 없는데, 리스트는 거의가 내가 아는 굵직한 사람들이네요. 일련번호가 붙어있고…….”
유 목사는 대답할 방향을 잡지 못한 듯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보아하니 커넥션의 기록 같아 보이는데, 설명을 좀 해 줄 수 있겠습니까?”<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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