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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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1)

서상조(시인·소설가)

서상조(홈페이지용).jpg

 

작전명 “동백꽃”(1)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
“그것을 안다면 오늘 할 일이 보일 텐데, 죽음이 언젠가는 반드시 닥치게 된다는 것 같은 그런 확고한 내일의 모습 말이야.”
“…….”
양 기사는 대답 대신 절망 어린 눈빛으로 어두운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별장의 1층 거실에서 작은 조명등 하나로 두 사람은 소파와 창문 아래의 간이의자에 각자 편안한 대로 앉아 있었다. 양 기사는 깊은 두려움 속에서도 작은 불빛 속의 아늑함이 어릴 적 초가지붕 아래의 호롱불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큼직한 2층 별장을 자그맣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빛의 마술 같았다.
“날이 밝으면 2층에 숨을 만한 비밀공간을 만들면 어떨까요?”
말이 없던 양 기사는 예상되는 사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유 목사에게 제안했다. 유 목사는 의외의 제안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정지된 모습으로 있더니 반색을 하며 무릎을 쳤다.
“맞아! 우리가 구원파와 연관이 있는 별장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겠지만, 한번쯤은 기본으로 훑고 지나가겠지. 비밀공간만 확보해 놓으면 그런 순간쯤은 쉽게 넘길 수 있겠군.”
“목사님을 끝까지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별 생각을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양 기사가 굿 아이디어를 낸 것이야. 나는 내일의 일을 알아야만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멍청이였어. 양 기사는 위기를 예견하고 대처하는 지혜로운 생각을 한 거야.”
긴 세월 동안 운전기사로 유 목사를 보면서, 목사 스스로 자신의 판단에 대하여 폄하 하는 경우를 처음으로 대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조건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느껴왔던 양 기사는 유 목사의 상황이 몹시 어려운 조건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유 목사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해법을 찾는 것인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별장의 울타리를 겸해서 심겨진 사철나무는 별장이 지어진 세월의 길이를 말하듯 키 크게 자라나 있었다. 사철나무는 잎이 귀한 이른 봄의 보금자리가 되어 밤잠 설친 작은 새들이 푸득거리고 있었다. 양 기사는 새들과 같이 이 밤에 깨어있는 처지임을 생각하면서도 새들의 단란한 평화로움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목사님, 방으로 가셔서 주무세요.”
깊은 생각에 빠진 듯도 하고 졸고 있는 듯도 한 유 목사에게 편하게 잘 것을 권했다.
“나는 소파가 편할 것 같아. 여기서 잘 테니 양 기사가 방으로 가서 자도록 해.”
소파에서 몸을 천천히 눕히며 말을 하는 터라 재차 주문도 어려울 것 같아서 양 기사는 자신이 방으로 들어갔다. 쫓기는 사람의 심리로는 방의 갑갑함보다 비교적 개방된 거실이 편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온 아침 햇볕이 창문을 뚫고 맞은편 벽에서 기괴한 무늬로 일렁이고 있었다. 늦게 잠들기도 했지만, 극도의 긴장이 잠속에서 풀린 탓에 평소보다 두 시간은 늦게 일어난 듯 했다. 양 기사는 급하게 유 목사의 침실을 확인했다. 아침 늦게까지 방에 있을 리가 없었다. 양 기사는 별장의 정원을 둘러보고는 산으로 이어진 뒤뜰로 돌아갔다. 유 목사는 전화기를 귀에다 집어넣을 듯이 통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양 기사는 유 목사가 놀랄 것 같아 일부러 딴소리를 한마디 했다. “이놈의 새들은 밤낮없이 시끄럽네.” 유 목사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양 기사는 유 목사가 김 집사와 통화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구원파 본당에서 웬만한 일은 김 집사가 알아서 처리할 정도로 유 목사의 복심으로 알려져 있었다. 전화를 끊은 유 목사가 판단을 내리기 힘든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었습니까?” 양 기사의 질문에 유 목사는 땅을 보며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대답이라기보다는 간절히 답을 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 집사한테 연락이 왔다는구먼, 그놈들이 김 집사한테 연락하면 내게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놈들이라면…….” “딱, 한군데 있잖아. 국가수호란 명분으로 정보를 가지고 힘쓰는 사람들. 필요한 정보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족치기도 하고, 또 그 정보를 이용해서 또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곳.” “그렇다면 검경이 문제가 아니군요. 그자들을 피한다는 것은 촘촘한 지뢰밭을 건너기보다도 힘든 일이 될 텐데요.”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김 집사한테 연락이 온 것 같아. 자기들을 믿고 시키는 대로 하면 모두 다 잘 풀린다고 얘기한다는군.” “그 사람들은 목사님과 깊은 인연이 있잖아요. 오대양 사건부터 시작해서, 우리 배를 일본에서 들여올 때에는 자기네 퇴직자들 숟가락을 얹어 주기 위해 쉽게 처리가 되었잖아요.” “하긴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지. 30여 년 동안 도움 받고, 도움 주고 그러기를 수차례 했으니까. 그것이 진실을 덮기 위한 어두운 거래였기에 그게 문제지.” “그러니까, 직접 통화를 하셔서 해결책을 의논해 보시죠.”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내 소유의 배가 사고가 나서 삼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온 국민의 지탄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절대 얽히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기 조직과 최고 권력을 보호하려 하는 것이지.” “따지고 보면 목사님은 불법개조와 과적에 대한 처벌만 받으면 되는데, 이상하게 직접 그 많은 사람을 살인이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겁이 나는 거야. 저들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재물을 구하고 있거든. 자신들의 늑장대처로 그 아까운 목숨들을 수장시켜 놓고 나의 불법 부분으로 묻어 버리고자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절대로 나를 함부로 체포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동안 나와의 거래가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거든.” “어쨌든 저는 2층에 비밀공간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경찰 쪽에 걸려서 매스컴을 타버리면 저들과의 흥정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 기사는 유 목사를 남겨두고 창고의 공구를 챙겨 2층으로 향했다. 유 목사는 뒤뜰을 서성이며 최고 권력가인 K실장을 떠올렸다. 별장으로 오기 전에 너무 노골적으로 심하게 어필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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