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대가야읍)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특집

우리마을(대가야읍)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대가야읍(大伽倻邑)-4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재미있는 지명 유래 중 이번호는 대가야읍을 네 번째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외리(外里)

외1리마을회관.JPG

⑴ 연혁(沿革)

본래 고령군 일량면 바깥에 위치했다 해서 바깥마을, 바깥마, 바깥일량, 외일량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촌을 합해 외동(外洞)이라 해서 고령면에 편입되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거 고령면이 읍이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일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바깥장터, 장거리, 장터, 장기점(場基店), 장기(場基) : 현 장기리의 주동은 모듬내 건너 솥질 마을이 주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1920년 이전에는 현재 상수도 바로 서남쪽 약 30m 지점에 당시 약 80여 가구의 마을에 시장(市場)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대가야읍에서는 바깥에 있는 장터라 해서 바깥장터, 장터, 장거리라 했고, 한문으로 표기하니 장기(場基)라 했다. 

* 솥질, 정곡(鼎谷) : 지형이 밥해먹는 솥처럼 생겼다 해서 솥질, 또는 솥정(鼎)자를 써서 정곡이라 부르고 또 다른 것으로는 마을 개척 당시 큰솥 모양의 못이 있고 못둘레에 길이 있어 솥질이라고도 하는데, 전자가 옳은 것 같다. 지금 장기리의 주동이다.

* 배울, 배우리 : 솥질에서 북쪽에 위치한 금산재 바로 밑 골짜기로 자동차운전 교습소가 위치했던 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에는 모듬내(會川)가 흐르고 있다. 대가야국 시대 이곳에서 배를 건조했다고 해서 배울, 배우리라 했고, 옛날에는 약 20여호가 살았는데, 이주하고 지금은 (1920년 경신년 대홍수) 4~5호가 살고 있다.

* 알터 :원래는 개진면 양전리에 속했다. 1980년 12월 31일 대가야읍 장기리에 편입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주로 알터라 부르는데 마을이 있는 위치가 큰강 바로 옆 큰 산 밑에 자리해서 알터라 하기도 하고, 하늘신과 산신이 교합해 알을 낳았으므로 알터라고 한다. 금산재가 있기 전에는 이곳을 경유해 대구 방면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보물 제605호인 알터 암각화가 있다.

⑶ 기타

* 거북등 : 솥질 마을에서 동북쪽에 있는 기계유씨 선산이다. 산의 모양이 마치 거북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굽은등 : 솥질 동쪽에 있는 산이다. 산등성이가 굽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금산재 : 대가야읍에서 대구로 가는 회천교 건너에 있는 재 이름이다. 금산치, 금산티라고도 한다. 일제 때 고령에서 대구로 통하기 위해 길을 만들었는데, 길이 험하고 자동차 사고도 많았으나 지금은 넓고 환한 아스팔트 길로 단장돼 있다. 현재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뚫렸지만 옛날에는 이 재로 고령은 물론이고 서부 경남과 호남지방으로 가는 수많은 차량이 이 재를 통과했다.

* 대별-갱분 : 대벌리평(大伐里坪)이라고도 하고 대별갱빈이라고도 하는 알터 앞 넓은 들을 말한다. 옛날 신라 ‘이사부’ 장군이 대가야국을 칠 때 대가야군이 이곳에서 맞아 대격전을 이룬 들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동산 : 솥질 남쪽에 있는 산

* 모듬내다리 : 오리정다리, 오리정교, 회천교라고도 한다. 지금의 회천다리가 아니고 옛날 나무로 만든 다리 이름이다. 강 이름이 대가천과 알림천이 만나는 모듬내여서 모듬내 다리이고, 대가야읍에서 오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리라고 오리정교라 했다. 모듬내는 순수한 우리말을 한문으로 표기하니 회천교(會川橋)라 불린다.

* 밤숲 : 반수, 율림수라고도 한다. 오리정 다리에서 읍내쪽 모둠냇가에 밤나무 수백주가 있어 긴 숲을 이뤘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 수박등 : 솥질 동북쪽에 수박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등성이다. 

* 오리정 : 장터옆 들에 새겨진 이조 때 정자이다. 읍내에서 오리쯤 떨어져 있는 정자라 五里亭이라 했으며, 현재는 없다. 

* 망산산성(望山山城) : 대가야읍 장기리에 있다. 임진왜란 때 주산성의 정동(正東) 표고(標高) 290m의 금령산의 산정을 포위하듯이 쌓은 석토혼성(石土混城)으로 대가야시대에 전초(前哨) 방위성으로 신라군을 맞아 격전한 곳이라 전한다. 고려, 조선시대에도 외환(外患)의 방어지가 돼 온 중요한 요새지라 한다. 임란 시 대대적으로 수축(修築)한 것으로 추측된다.

* 경송정(景松亭) : 대가야읍 장기리 소재. 1941년에 창건됐으며, 고려 때 좌찬성을 지낸 기계인 유단은 이태조가 자기의 신하 되기를 바랐으나 끝내 복종치 않고 버티다가 죽자 자손들이 선생의 충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으며 경내엔 공의 신도비가 있다.

* 활인대(活人臺) : 장터에 있는 약 250년 전 노거수다. 경신년 대홍수 때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에 올라가 많은 생명을 구해 활인대라 했으며, 매년 정월보름이면 이곳에서 동제를 지냈다.

* 장터주막 : 장기점이라고도 하며 장터 앞에 있었던 주막마을이다.

* 양전리 암각화(良田里 岩刻畫) : 대가야읍 장기리 532번지에 소재한다. 1971년 발견된 이 유적은 높이 3m, 너비 6m 정도의 산비탈 바위 표면에 겹둥근무늬(同心圓紋), 십자무늬(十字紋), 탈(假面) 모양 등의 그림이 조각돼 있는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암벽 조각으로서 원시 신앙 유적지로 추정된다.

겹둥근무늬는 세겹이며 모두 4점으로 해(日), 달(月)을 상징하는 탈 모양은 17점이 새겨져 있다. 제작연대는 인근에서 발견되는 석기나 토기에 비추어 청동기 후기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당시 농경의식(農耕儀式) 때 사용했던 종교적인 뜻을 가진 암벽조각으로 생각되며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 저전리(楮田里)

저전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고령군 내곡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전동(薪田洞)을 병합해 저전동으로 고령면에 편입됐다. 1979년 5월1일 대통령 제9409호에 의거 고령면이 읍으로 승격돼 고령읍에 편입되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닥마, 땅마, 저전(楮田), 담마, 반송(盤松), 반시이, 경빈, 갱빈, 강변 :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선비가 문종이를 만드는 딱나무를 많이 길러서 딱마을, 닥마, 땀아라고 한문으로 표기하니 닥나무저(楮)자를 써서 저전이라 했다. 또 대가야국왕이 이곳에 들렸을 때 호위병들이 담을 쌓듯 했던 곳이라 해서 딤마을 ‘담마’라 했다. 또 이 마을 동남쪽에 소나무 숲이 있는데 인접한 마을을 반송, 반시이라 불렀으며, 개울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갱빈, 갱변이라 했다. 지금은 반송과 갱변이 담마에 합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 섶마, 신전(薪田) : 옛날 이곳에 큰 숲이 우거져 있어 숲을 쳐서 땔감으로 사용하고 마을이 들어서 섶마 또는 땔나무신(薪), 나무할신(薪)을 써서 섶마, 신전으로 하고 현재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⑶ 기타

* 떡버들나무 : 섬마 앞에 있는 큰 떡버들나무

* 맛질 : 저전동 또는 맛집골이라고도 한다.

* 부너터들 : 섬마 동쪽에 있는 들

* 비널산 : 절둣골 위에 있는 산

* 빌밀개울들 : 섬마 옆에 있는 들

* 생골 : 새앙골이라고도 한다. 혼짓골 아래 샘이 있는 골짜기

* 샛들 : 담마 앞에 있는 들

* 수북개울들 : 절둣골 아래 골짜기

* 아랫담마 : 담마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아래수북개울골 : 수북개울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 웃담 : 담마 위쪽에 있는 마을

* 웃뚝발 : 담마 위에 들로 닥나무가 많았다.

* 웃수북개울 : 수북개울 위쪽에 있는 골짜기

* 절둣골 : 섬마 뒤의 골짜기로 절터가 있었다.

* 참나무장들 : 담마 아래 있는 들로 옛날 참나무로 만든 정자가 있었다.

* 터서리골 : 담마 아래 골짜기

* 혼짓골 : 터서리 아래 골짜기


■ 중화리(中化里)

중화1리회관.JPG

중화2리마을전.JPG

 

⑴ 연혁(沿革)

중화1리, 2리, 저전리, 내상리, 신리 5개리를 합해 낫질이라 한다. 이는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벌한 뒤 주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이 고을에 납시었다고 해서 나실로 불리던 것이 변화해서 낫질이라고 부른다. 낫이란 비단 나(羅)에서 나온 말로 비단길이라는 뜻이다.

중화1리는 낫질 첫째 마을로 고려 공양왕 때 이미숭 장군이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는다 해서 화산(花山)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또한 대가야국의 왕이 난을 피해 이 지역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 많은 궁녀를 꽃에 견주어 화산(花山)이라 불렀고, 현재는 화갑(花甲)으로 부르고 있다.

중화1리에는 1962년 준공된 중화저수지가 있어 농업 용수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우륵생태 둘레길 수변생태 공원이 있어 주변 경관 조성이 잘 돼 있다. 지금도 봄이 오면 진달래와 벚꽃이 만발해 중화저수지의 물안개와 함께 장관을 이뤄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꽃피는 물안개 마을이라는 별칭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본래 고령군 읍내면 지역으로 화갑리(花甲里)의 중간이다. 중화갑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화동을 병합해 중화동이라 하고 고령면에 편입했다. 1979년 5월 1일 대통령제9409호에 의거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 1988년 5월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화갑(花甲), 화산(花山), 웃화갑, 상화갑, 중화갑 : 고려 충목왕 때 이미숭 장군이 봄이면 진달래 꽃이 온산을 뒤엎자 화산(花山)이라 불렀다. 대가야국 때 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잠깐 머물 때 많은 궁녀들을 꽃에 견주어 화산(花山)이라 불렀다. 화갑의 위를 윗화갑, 상화갑, 중간 화갑을 중화갑이라 부른다.  

* 든더기, 둔덕(屯德), 덕촌(德村) : 옛날 대가야국 때 왕과 군사들이 타던 말이 머무르던 곳이라 하며 조선조 때 역마를 이곳에서 길렀다. 말을 길러 놓으면 역마로 나가니 마을이 번성하지를 못한다고 해서 머무를둔(屯) 큰덕(德)을 써 둔덕이라 했다. 음이 변해서 든더기가 됐고, 큰덕자를 써서 덕재(德齋)라는 재실을 지었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덕촌이라 불렀다.

⑶ 기타

* 가산 : 화갑 남쪽에 있는 산

* 까칫골 : 화갑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도장골 : 화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들박들 : 든더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무덤들 : 화갑 서남쪽에 있는 들로 이곳에 큰 무덤이 있었다.

* 무른골 : 든더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문턱골 : 화갑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밋골 : 든더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묘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 반죽골 : 화갑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불맷골 : 화갑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부처가 있는 산이라 한다.

* 중화리 고분군(中化里 古墳群) :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다. 가야시대 것으로 추측되며 도굴돼 형태만 남았는데 37기가 있다.

* 구목재(九睦齋) :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으며, 1922년 창건됐다. 여주이씨 문중에서 청소년들의 학문을 수학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경내에 충의부도사 이재윤(忠義府都事 李載胤)의 유허비가 있으며, 1957년 명곡정으로 개칭했다.

* 롱헌재(聾軒齋) : 1902년 창건해 1965년 개축했다. 이조 순종 때 합천인 이경벽(李慶壁) 선생이 후진 양성 및 학문탐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문하생들이 건립한 재실로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다.

* 영모정(永慕亭) :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으며 김해인 김원현(金元賢)의 묘재로 1932년 창건했다.

* 붕들 : 든더기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뿔당 : 화갑 서쪽에 있는 산으로 불당이 있었다.

* 새태 : 새터인데 화갑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공알등대 : 여섯말리 골짝과 덕곡면 후암리 뒷산과 경계지점으로 흰흙이 많으며, 여인의 성기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 효령동 : 내곡초등학교 건너편 여섯말리 입구로 3~4농가가 살았다. 죽은공(竹隱公 文克周) 묘소 아래 마을로지금은 없어졌다.

* 등밭 : 둔덕 뒤에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말(역마)을 먹였다.

* 모개나무걸 : 아래 화갑 둔덕 사이에 큰 모과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 새태-딧골 : 새태 뒤에 있는 골짜기

* 새태앞 : 새태 앞에 있는 골짜기

* 송잇골(松耳谷) : 송어곡이라고도 한다. 옛날 이곳에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해서 불렸는데, 화갑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 여섯말리들 : 든더기 동쪽에 있는 들

* 웃들 : 화갑 서쪽 위의 들

* 짱개울 : 화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참나무쟁이들 : 든더기 서북쪽의 들로 참나무로 만든 정자가 있었다.

* 치마웃골 : 든더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혼죽골 : 화갑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구독 후원 하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