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수도에서 얻은 수돗물에 대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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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로마제국의 수도에서 얻은 수돗물에 대한 교훈

이 한 진(K-water 고령수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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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진(K-water 고령수도센터장)

 

프랑스 동남부 론 강의 지류인 Gard(가르)강, 아프리카 튀니지 북부 자구완 - 카르타고,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 북서쪽에 위치한 세고비아에는 공통적인 시설물이 있다. 특히 가르교라 불리는 ‘퐁 뒤 가르’와 세고비아의 ‘세고비아 애퀴덕트’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른 바 수도교라 불리우는 ‘상수도용 관개수로’이다.
세계 최초의 상수도는 기원전 312년에 수도시설을 제안하고 설계를 맡은 로마제국 시절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재무관의 이름을 딴 ‘아피아 수도(Aqua Appia)’로 알려져 있다. 아피아 수도는 총 16.6km로 대부분이 지하갱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것은 물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과 증발하는 막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로마 수도시설은 11개, 수도관의 길이는 578km까지에 이른다고 한다.
로마에서 상수도 수원을 정하는데 몇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1. 산이나 호수의 물을 길어다가 육안으로 조사해서 물이 맑고 색깔이 없고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2. 수원 주변의 초목의 상태, 토양 색깔을 조사한다. 3. 수원 주변의 거주민의 건강을 확인하고 안색, 눈빛, 골격 상태, 불구자 숫자 등을 조사한다. 4. 길어온 물을 청동항아리에 부어 몇 일간 둔다. 5. 물을 끓여 거품이나 불순물을 확인한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땅 밑에 갱도를 파서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수도교를 따라 중앙 수조에 도착한 물은 황제용, 공공용, 개인용으로 나뉘었다. 황제용은 주로 정부기관, 황실, 공중목욕탕에 공급되었는데 이 당시 공중 목욕탕은 황제가 시민들에게 선물한 것이라서 공공용이 아닌 황제용으로 분류되었고 전체수량의 17.2%를 차지했다. 공공용은 주민들이 대부분 사용했던 것으로 전체 수량의 44.2%가 분배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용은 전체 수량의 38.6%로 각 가정에 돈을 주고 설치한 것으로 수도국 직원들이 신청자의 집까지 수도관을 연장해 주었는데 공사비의 전액을 신청자가 부담해야 해서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유감스럽지만 로마의 수도 시설은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잊혀졌다. 깨끗하고 안전한 상수도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를 감당할 능력 역시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수도기술은 쇠퇴했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도시설의 발전은 미비했다. 그러던 중 위생개념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수인성 전염병의 창궐은 수도기술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1829년 유럽 전역을 휩쓴 콜레라 감염을 줄인 여과방식, 1893년 네덜란드 정수장의 오존 살균, 1902년 벨기에에서 시도된 염소소독은 현대 수돗물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기술로 평가받는다.
로마의 상수도시스템은 단순해 보이지만 5가지의 상수원 수원을 정하는 조건과 황제의 선물이기는 하지만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맑은 물을 공급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99.3%로 인구 5,274만 7천여 명이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특히 농어촌 보급률도 95.4%로 이제는 방방곡곡 누구나 수돗물을 이용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서민들과는 다르게 국민 모두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의 깨끗한 상수원을 현재 우리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고도화된 정수처리 기술로 수돗물의 품질을 높였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만큼 상수원의 순수함은 반감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100만 인구의 거대한 로마시가 유지되는 밑바탕에는 풍부하고 깨끗한 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상수원 관리에 국민 모두의 실천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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