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우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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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우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재미있는 지명 유래 중 이번호는 우곡면 마지막회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예곡리(禮谷里)

예곡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답곡면 지역이다. 아치산 밑이 되므로 아치실, 아치리, 아곡, 예곡이라 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에 고령군에 편입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미면의 부례동과 부곡동을 병합해 예곡동이라 해서우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아치실, 와치실(臥雉谷), 아치리(阿雉里), 아곡(阿谷), 예곡(禮谷) : 이 마을은 고려 초기에 형성된 마을로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 와치실(臥雉谷)이라 불러오다 아치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아치실, 아치곡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부례(扶禮)의 예자와 아곡의 곡자를 따서 예곡(禮谷)이라 한다.
* 가매실, 부곡(釜谷) : 이 마을의 골짜기 모양이 가마솥 같이 생겨 가매실로 불렀다. 예전에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어 가매실이라고도 한다.
* 관솔, 관송(觀松), 은양원(恩養院) : 옛날 낙동강가에 언덕 위 마을이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사방을 둘러봐도 소나무들이라 해서 관솔, 관송으로 하다 1646년 천주교단에서 나환자 휴양지로 만들어 은양원(恩養院)이란 간판이 붙자 일반 민가는 이주하고 나환자촌이 돼 관솔, 관송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통칭 운양원이라 부르고 있다.
* 부리, 부례(扶禮), 부리(浮鯉) : 부례산 밑 낙동강 맑은 물에 잉어 떼가 펄쩍펄쩍 뛴다고 부리(浮鯉)라고 하다 이곳에서 달성군 구지면 겁동 지방으로 건너는 나루이기도 하다.
⑶ 기타
* 대정이(대장리) : 부례 북쪽 낙동강가에 있는 마을이다.
* 방골 : 가매실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 부례-재 : 부례현, 부례고개라고도 하는데 부례에서 도진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 부래정(浮來亭) : 1525년 창건했다. 학암 박정번을 위한 건물로서 일명 학암정이라고도 한다. 한강 정구 선생의 시문이 있다.
* 부리-나리부리진, 부리나루) : 부리 동쪽 낙동강가에 있는 나루터로 달성군 구지면 겁동으로 건너간다.
* 부리-산 : 부리 뒤에 있는 산이다.
* 아치-산 : 아치실 뒤쪽 산으로 높이가 207M나 된다.
* 어목정(漁牧亭) : 고령인 박정완(朴廷琬)을 위한 재실이다.
* 주개-등 : 가매실 뒤쪽에 있는 등성이로 주개(주걱)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월오리(月塢里)

 

월오리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고령군 하미면 지역이다. 소학산 밑이 되어 달오 또는 월오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오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난여울, 난탄(難灘), 란탄(蘭灘), 난영원(難寧月) : 이 마을은 모듬내 가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서 나루를 건너 한실, 하라골, 구릿재 넘어 고령 쌍림 방면으로 간다. 장마철에는 많은 물이 도진 앞을 지나 이곳에 오면 물이 산에 부딪어 물길이 매우 사나워 어려울 난(難)자와 여울탄(灘)자를 써서 난탄이라 했다.
우리 말로 ‘난 여울’이라 했으며, 물길이 사나워 뱃길이 위험하므로 ‘난(難)’ 자를 ‘蘭’(난초난)자로 바꿔 지명을 부드럽게 했다. 또 어떤 선비 한 사람이 이곳을 깊은 밤에 지나다 달빛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편안히 쉬어 갔다고 해서 난영월(難寧月)이라고도 한다.
* 논골, 답곡(沓谷) : 월오 지방은 논은 거의 없고 밭이 많아 ‘산두’를 심었는데, 이곳은 논이 많은 고을이라 논골 또는 답곡이라 불렀다.
* 달오, 월오(月塢)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윤규(尹奎, 호 月塢)라는 선비가 이곳에 피난을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고서 울분을 달랬다. 그러다 왜적에게 붙잡혀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고 울었다 해서 그분의 호를 따 월오, 달오라 불렀다. 지금은 회천강변으로 이주해 도로변에 새로 마을이 생겼다.
* 바람골, 풍곡(風谷) : 월오 고개넘어 남쪽에 위치한 미을로마을 북서쪽 모듬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 바람골 또는 풍곡이라 하며 8가구의 농가가 살고 있다.
* 반개, 반포(半浦) : 현 우곡중학교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모듬내 물이 불어나면 뻘이 많이 모여 붙여진 이름으로 네 가구가 살고 있다.
* 따신굼티기 : 마을 앞을 흐르는 모듬내에는 겨울철이면 추운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데 이곳만은 바람이 적고 햇살을 받아 따스한 굼티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세 가구가 살고 있다.
⑶ 기타
* 달오-덤(월오덤) : 달오 동남쪽 모듬내가의 벼랑으로 월오 윤규(尹奎)가 글을 읽던 곳이라 한다.
* 달오-들 : 월오평이라고도 하고 달오 앞에 있는 들이다.
* 달오-샘 : 달오 뒤쪽에 있는 샘으로 절벽 밑이 돼서 물이 없다가도 갑자기 넘쳐흐르기도 한다. 이것을 가지고 그해의 가뭄과 홍수를 예측했다고 한다.
* 문연서원비(文淵書院碑) : 조선 숙종 21년(1695년)에 학암 박정번(朴廷璠)의 강학지소(講學之所)로 건립해 죽연, 박윤, 낙락당 박택(朴澤), 월오 윤규(尹奎), 학암 박정번, 매헌 최여설(崔汝偰) 5현을 향사했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했다.그러니 지금은 그 후손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그 업적을 기록한 비만 남아있다.
* 배암-들 : 달오 북쪽에 있는 들이다.
윤월오 선생비(尹月塢先生碑) : 달오덤에 있는 비로 이곳에는 작은 굴이 있고 이곳에서 윤규가 임진왜란을 당했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 홀로 남아 글을 읽었으므로 그것을 기념해 세운 비다.

 

▣ 봉산리(鳳山里)

봉산1리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답곡면 지역으로 지형이 가지처럼 생겨 샛가지 또는 조지(鳳枝), 조지리, 봉지리(鳳枝里)라 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조지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했다. 그후 조지동이라는 어감이 좋지 못하다는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1983년 2월 15일 조지동을 봉산동(鳳山洞)으로 고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샛가지, 조지동(鳥枝洞), 봉지리(鳳枝里), 봉산동(鳳山洞) : 이 마을 뒤편에 대봉산이 있고 마을 앞에는 넓은 늪이 있다.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형태와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동네 이름을 ‘샛가지’라 했다. 한문으로 조지동이라 부르게 되니 타지역 주민들이 부른 동명에 대한 어감이 좋지 목하다고 해서 동민의 결의에 따라 당국에 건의해 마을 뒷산 이름이대봉산(大鳳山)이기 때문에 봉산(鳳山)이라 부르게 됐다.
* 작은 샛가지, 봉양(鳳陽) : 이 마을은 대봉산 밑 양지 바른 곳이기 때문에 봉산이라 부르게 됐다.
⑶ 기타
* 밤나무-못(율목지) : 장승이못 남동쪽에 있는 못으로 밤나무 숲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봉양재(鳳陽齋) : 1908년 창건, 경주인 최린(崔隣)을 위한 재실이며, 시조 최치원의 영전각이 있다.
* 샛가지-들(조지평) : 샛가지 앞에 있는 들이다.
* 샛가지-벌 : 샛가지 동쪽에 있는 벌인데 낙동강가여서 모래가 많다.
* 장승-벌 : 장승잇벌
* 장승이-들 : 장승잇벌 서쪽에 있는 들이다.
* 장승이-못 : 장승지라고도 한다. 장승잇 벌에 있는 못이다.
* 장승잇-벌 : 새사지 동쪽에 있는 벌이다.
* 조지-지 : 샛가지 못이다.

 

▣ 포리(浦里)

 

포1리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왕지면 지역이다. 낙동강가의 밭이므로 개발골 또는 갯골이라 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됐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동을 병합해포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고 지금은 경지정리를 해서 넓은 답(沓)으로 바뀌었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갯골, 개밭골, 포동(浦洞) : 낙동강 강변에 위치한 90여호가 모여 사는 큰 마을로서 강물의 물길에 따라 갯펄이 많이 모여 개밭골, 갯골로 부르게 됐다. 또 낙동강가에 ‘대바우’ 나루터가 있어 포동이라고도 한다.
* 대부우, 대방우나루 대암(臺岩) : 포동에서 달성군 구지면으로 건너가는 나루터로 낙동강을 건너구지면에 큰 바위가 있어 대바우라고도 하고 대암이라고도 한다.
* 후동(後洞) : 옛날 한 노승이 지나다 마을 뒤쪽산을 보고 제성산(帝星山)이라 이름을 짓고 이 땅에서 왕비가 날 것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후동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⑶ 기타
* 개발-들(포동들) : 포동 앞에 있는 들이다.
* 곤싯-골 : 후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 곤싯골-못 : 곤싯골에 있는 못이다.
* 대바우 나루(대방우나루, 대암진) : 개발골 동쪽 낙동강가에 있는 나루터로 포동에서 달성군 구지면 대암으로 건너간다.
* 미륵-못(미륵지) : 개발골 북동쪽에 있는 못으로 미륵이 있다.
* 후동-들 : 후동 앞에 있는 들이다.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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