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우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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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우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재미있는 지명 유래 중 이번호부터는 우곡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고령군 8개 읍면 중 하나다. 본래 고령군 하미면(下彌面) 지역으로 도진(挑津), 사부(沙鳧), 저동(楮洞), 대곡(大谷), 아산(阿山), 부례(扶禮), 부동(釜洞), 사등(沙嶝)의 11개 동리를 관할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우촌면(牛村面)의 사촌, 황성, 야정, 옥곡, 속동(涑洞) 5개 동리와 현풍군 답곡면의 도기, 답곡, 희정, 옥곡 4개 동리와 같은 군  왕지면(旺旨面)의 포동, 후동, 객기 3개 동리를 병합해 우촌과 답곡의 이름을 따서 우곡면이라 했다. 도진, 예곡, 답곡, 조지, 포동, 객기, 연동, 월오, 대곡, 사전, 야정, 속동, 사촌의 13개 동리로 개편 관할했다.
동쪽은 낙동강을 건너 달성군 구지면 남쪽은 달성군 구지면과 경상남도 이방면과 합천군 덕곡면, 서쪽은 쌍림면, 고령읍, 북쪽은 개진면에 닿아 있다. 1983년 2월 15일 조지동을 봉산동으로 바꾸고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 객기리(客基里)

객기리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왕지면 지역으로 손님을 보내고 맞는 나루터가 있었으므로 손터 또는 객기라 했고, 고종 32년 1896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터, 새터와 하미면의 사등동을 병합해 객기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손터, 객기(客基) : 이 마을은 대가야국 시대부터 손터나루라 했다. 낙동강을 이용하는 것으로 김해 구포 등지와 멀리는 왜국과도 통하던 수상교통 요지였으며, 창녕·마산 등지를 비롯한 경남 지방과 고령, 해인사, 성주 지방과 육로 교통을 연결하는 요지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는 고령 방면으로 침공하던 왜군이 이곳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행인들이 묵고 가거나 지나간 곳이므로 우리말로 손터라 했고, 한문으로 표기하니 객기(客基)라 부르게 됐다.
* 새터, 정터, 점기(店基), 정기(鼎基, 正基) : 손터 나루와 함께 형성된 마루이며 옛날 이 마을에 그릇점이 있어 손터나루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해 왔다. 그릇점이 있는 곳이라 해서 ‘점터’라 했다. 또 지형이 솔밭 같이 생겼다 해서 정터(鼎基)라 하다가 지금은 정기(正基)라 부른다. 그 연유는 손터가 객인이 잘되는 곳이라면 正基는 주인이 잘되고 중심이 되는 좋은 터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며 옛날에는 객기(客基) 3개 마을 중 가장 부유한 마을이다. 또 최왕(崔旺)이라는 선비가 손터가 생긴 이후 새로 개척한 마을이라고 새터(新基)라고도 한다.
⑶ 기타
* 개옥나루 : 정터 서남쪽에 있는 나루터다.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으로 건너가는 나루터다.
* 손터나루 : 객기진(客基津)이라고도 한다. 달성군 현풍과 경남 창녕 이방으로 건너가는 나루다.
* 손텃들 : 객기들
* 사등촌 : 사등동이라고도 한다. 점터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 새터들 : 신기평이라고도 하며 새터 앞에 있는 들이다.
* 점터벌 : 점터 서쪽에 있는 큰 들

 

▣ 답곡리(沓谷里)

답곡2리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지역으로 논이 많아 논실, 답곡이라 해서 답곡방이 돼 희정, 아곡, 척사, 조지(현, 봉산)의 4개 동을 관할하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희정동을 병합해 답곡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논실, 답곡(沓谷) : 약 500넌 전 창녕인 성원(成元)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논이 많으므로 논실, 답곡이라 했다. 전에는 현풍군 답곡방 척사(尺沙)로 칭하다가 1907년 왕지방(旺旨坊)과 병합해 왕지면 답곡이 됐다가 1914년 우곡면이 됐다.
* 희정골, 시정골, 희정동(希亭洞) : 이 마을은 현풍 곽씨가 개척한 마을로써 강 건너편에는 곽씨 문중의 효자, 효부, 열녀, 정각들이 있어 이곳 후손들이 정각을 바라보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희정(希亭), 희정골, 시정골, 희정동이라 부른다.
⑶ 기타
* 논실나루(답곡진, 논실나리) : 논실 동쪽 낙동강가의 나루터로 논실에서 달성군 구지면 창동으로 건너가는 나루다.
* 논실들(답곡평, 답곡진) : 논실 앞에 있는 들
* 논실못(沓谷池) : 논실 들에 있는 못
* 논실벌 : 답곡벌이라고도 한다. 논실 앞 낙동강가에 있는 들이다.
* 도내평(島內坪) : 섬안들이라고도 한다. 논실 동남쪽에 있는 큰 들로 지형이 섬처럼 돼 있다.
* 돈모재(敦慕齋) : 1831년 창건했다. 현풍인 곽간(郭趕, 호 竹齊, 자 원선)은 선조 때 수원어사를 지내다 향리로 돌아와 학문 연구 및 후배양성에 힘쓴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 곽세중, 곽주한, 곽우환 등이 건립했고, 경내에 유허비가 있다.
* 시정골들(희정평) : 시정골 앞에 있는 들
* 시정벌 : 시정골들 동쪽 낙동강가에 있는 들로 모래가 많다.

 

▣ 대곡리(大谷里)

대곡1리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고령군 하미면 지역으로 큰 골짜기라 한실, 대곡(大谷)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라동을 병합해 대곡동이라 해서 우곡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한실, 大谷 : ① 이 마을은 큰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한실 또는 대곡이라 한다.
② 이 마을 옆  소학산(巢學山)에 학이 집을 지어 살았기 때문에 학골이 음이 변해서 한골, 한실, 대곡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③ 이 마을에는 한씨(韓氏)들이 임진란을 피해 대거 이주해서 살았기 때문에 한당(韓堂)이 한실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 삼밭골, 마전곡(麻田谷) : 한실의 성짓골 위 골짜기에 위치한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로 삼을 많이 심어 붙여진 이름이다.
* 서부마, 지산동(芝山洞) : 소학산의 북서쪽 기슭에 위치한 일곱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옛날 도진 박씨들이 이주해 살면서 도진에서 바라보면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서 서부마라 부르고 또 이곳에 지산재가 있어 지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 성짓골, 성지동(聖旨洞) : 소학산 맞은편에 위치한 마을이다. 옛날 성지도사(聖旨道士)가 이 마을의 형상을 살피고, 이 마을에는 살만한 곳이고 인재가 많이 나오겠다고 해서 그분의 이름을 따서 성지동, 성짓골이라 했으며, 하라골  원마을이다.
* 하라동(河羅洞), 하라골, 하라배리(河羅背里) : 한실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회천강물이 비단같이 맑고 깨끗하게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약 40호 가까운 농가들이 살고 있다.
③ 기타
* 경학재(景鶴齋) : 1944년 창건했다. 청주인 한중섭(韓重攝)을 위한 재실로 한씨 일파 문중에서 건립했다.
* 너분들1 : 성짓골 위에 있는 넓은 등성이다.
* 너분들2 : 한실 뒤에 있는 등성이다.
* 널분골 : 성짓골 뒤에 있는 넓은 골짜기다.
* 대곡리 소학산성지(大谷里 巢鶴山城址) : 임진왜란 때 의병들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며, 주변 둘레가 약 396m이며, 직경이 약 72m 정도의 성으로 경남 합천군 덕곡면에 있는 성의 간성(干城)이라 한다. 현대 도처에 석축이 무너진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 대밭등 : 비롯양지 옆에 있는 등성이로 대나무가 많았다.
* 바깥벌 : 밭벌이라고 하며 안벌 바깥쪽에 있는 들이다.
* 불당곡(佛堂谷) : 안창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
* 비롯-양지 : 안창골 북쪽에 있는 산이다.
* 사기점곡 : 사기정골이라고도 하며 사기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삼밭골-뒷산 : 삼밭골 뒤에 있는 산
* 상촌(上村) : 웃마
* 씨정골 : 불당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다.
* 아릇-마(下村) : 한실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안벌 : 성짓골 옆에 있는 벌, 회천강 옆이다.
* 안칭골 : 횃대등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 오릇골 : 서부마 위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이 있었으나 없어졌다.
* 운고재 : 아릇마에 있는 재실이다. 한씨들이 선조를 위해 세웠다.
* 운고재(雲皐齋) : 1908년 창건. 청주인 한경(韓經 호 운고, 자 土大)을 위해 지은 재실이다.
* 웃마 : 한실 위쪽에 있는 마을
* 진등 : 긴등이라고도 한다. 삼박골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다.
* 하리골-못 : 하라골 서쪽에 있는 못으로 1948년에 조성했다. 하라지라고도 한다.
* 한실-들 : 한실 앞에 있는 들이다.
* 한실-못 : 한실 남쪽에 있는 못으로 1944년에 조성했다.
* 횃댓-등 : 오릇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로 횃대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호에 계속>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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