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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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덕곡면(德谷面)<3>

예리보호수(수령 150년 왕버들)

본1리 마을 전경.JPG

△ 본1리 마을 전경

 

메인-예리보호수.JPG

예리보호수(수령 150년 왕버들)

 

옥계리 마을전.JPG

△ 옥계리 마을전경

 

▣ 본리(本里)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인곡면 소재지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전상동을 병합해 본리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인곡(仁谷) : 조선 선조 때 박대복(朴大福)이 이 마을에 살면서 仁을 바탕으로 한 충효(忠孝)를 생활화 해 흉년에 이웃을 도왔으며 임진란이 일어나자 곡식 2천석을 바치고 순절하니 사람들이 인(仁)의 마을이라 해서 인곡이라 한다.
* 시암, 씨암, 승암(勝岩), 구상동, 전상동 : 고려말 성주인 이인임(李仁任)이 이곳에 유배돼 살았는데, 그의 호가 승암이라 승암마을이라 했다. 음이 변해 시암, 씨암이 되고 옛날 높은 벼슬에 있던 분이 살던 마을이라 해서 구상동(舊相洞)이라 하며, 그가 밭을 가꾸고 살던 마을이라 해서 전상동(田相洞)이라 했다.
⑶ 기타
* 대곡 : 큰골이라 하며 인곡 뒤에 있는 큰 골짜기다.
* 덤띠산 : 황재산이라고도 하며 오산 뒤에 있는 산이다.
* 도장골 : 인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 문통골 : 시봇들 옆에 있는 들이다.
* 물방들 : 인곡 앞 들로 물레방아가 있었다.
* 밤장이보 : 율정보라고도 한다. 승암 앞에 있는 보로 밤나무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새보 : 신보인데, 밤징이보 아래 있다.
* 새봇들 : 새보가 있는 들이다.
* 소통골 : 도장골 아래 골짜기다.
* 시봇들 : 인곡 앞들이다.
* 아리시봇들 : 시봇들 아래 있는 들
* 오산 : 오산동으로 오산 밑의 들
* 오산(午山) : 인곡 남쪽에 있는 산이다.
* 오산앞들 : 오산 앞의 들이다.
* 올뺑이골 : 인곡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올빼미가 살고 있다.
* 웃시봇들 : 시봇들 위에 있는 골짜기다.
* 월벵이골 : 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 인곡면소터 : 인곡에 있는 면사무소 터다. 조선조 때 성주군 오항역방(五項亦坊)이 변해 인곡면이 되고 모로현 옥계, 무릉, 장암, 용흥, 오리, 상동, 오산, 인곡, 예동, 중흥, 만하, 형전, 반성, 양산의 15개 리를 관할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덕곡면에 편입됐다.
* 작은골 : 큰골 아래 있는 작은 골짜기다.
* 호심대(浩心臺) : 승암에 있다. 배호종(裵浩宗)이 이곳에서 놀았다고 한다.
* 홈고리들 : 새봇들 아래 있는 들로 홈을 만들어 물을 댔다고 한다.
* 국극재 : 덕곡면 본리(인곡)와 대가야읍 저전리 사이의 고개다. 새의 목과 같이 재가 길고 깊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월봉(四月峯) : 덕곡면 본리와 대가야읍 내상리 경계로 높이 401m의 산이다. 옛날 배사월이라는 처녀가 4월 초파일 이곳에서 놀다가 이 바위에서 떨어져 죽자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 예리(禮里)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인곡면 지역으로 예동이라 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흥동을 병합해 예동이라 해서 덕곡면에 편입됐다.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 초등학교가 들어서 덕곡면의 중심지가 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예동(禮東, 禮洞) : 성주인 이안징(李安徵) 호는 경암(敬庵)이다. 마을 개척 시 인의 마을 인곡 맞은편에 있는 마을이니 예를 지켜 동방의 모범이 되라는 뜻에서 예동(禮東)이라 불러오다 예동(禮洞)으로 변했다.
* 소성전, 중흥(中興), 소형전(小荊田) : 조선시대 이맹실(李孟實)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 당시 앞들에 가시나무밭(주:오늘날의 아카시아는 아님)을 개간했다 해서 가시나무 형(荊)자를 써서 형전(荊田)이라 불렀으며, 큰가시나무밭(大荊田)과 작은 가시나무밭(小荊田)으로 나눠졌다. 대형전은 홍수로 없어지고 소형전만 새로 이뤘다 해서 중흥이라 불렀다. 가시나무를 쳐서 앞이 확 트이므로 터일소(疎)자를 쓰기도 했다.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소형전이 변해 소성전이 됐다.
⑶ 기타
* 각시바우 : 처녀방구라고도 한다. 안산 위에 있는 바위로 바위틈에서 물이 나는데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 고령예리 민보산성지(高靈禮洞民堡山城址) : 고령군 덕곡면 예리 산 25번지에 위치한 토석 혼성으로 임진왜란 시 의병들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주위 약 540m로 서남 일부에만 석축이 남아있고 성내에 전망대 등의 유지가 남아 있다.
* 골안 : 예동 북쪽안에 있는 골짜기다.
* 멍에배미 : 구릉빌미들로 예동 서쪽에 있는 들이다. 소 멍에처럼 생긴 논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굴박골 : 소통골 위에 있는 골짜기다.
* 굴배기들 : 예동 서쪽에 있는 들
* 그느실들 : 예동 서쪽에 있는 들이다. 소가천 가에 있는데 옛날에 솔밭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귀신바우 : 예동 북쪽에 있는 바위다. 끝이 뾰족해 이곳에서 여인들이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 꼬부랑바우 : 예동 북쪽에 있는 바위로 허리부분이 굽어 꼬부랑바위라고 한다.
* 딧골들 : 예동 남쪽에 있는 들이다.
* 말랑들 : 예동 남쪽에 있는 들이다.
* 배끝소통골 : 소통골 바깥쪽에 있는 골짜기다.
* 배나뭇골 : 붉은 등대 위의 골짜기로 배나무가 있었다.
* 붉은 등대 : 비산등대 옆의 등성이로 흙이 붉어 붙여진 이름이다.
* 비산등대 : 예동 북쪽에 있는 산등성이다.
* 삽다리들 : 굴배기 옆에 있는 들이다.
* 생이방구 : 상여암이라고도 한다. 예동 북쪽에 있는 바위로 생김새가 상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소통골 : 칭이방구 위에 있는 골짜기다.
* 솔밭갱빈 : 예동 남쪽에 소가천가에 솔밭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송골 : 배나뭇골 위 골짜기로 좁다고 송골이라 한다.
* 시똥바우 : 예동 북쪽에 있는 쇠똥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안산 : 예동 앞의 산
* 안골 : 큰골 안쪽 골짜기다.
* 어붕골 : 안산 옆의 골짜기다.
* 예동재(禮洞齋) : 성산이씨가 그들의 조상 이안징(李安徵)을 위해 세운 재실이다.
* 오질골 : 옻남골 옆에 있는 골짜기다.
* 옻남골 : 예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 이목골 : 배나뭇골
* 장들 : 예동 서쪽에 있는 들로 옛날 이곳에 시장이 섰다.
* 젖방굿골 : 송골 위의 골짜기로 그곳에 여인의 젖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정터 : 점터라고도 한다. 예동 남쪽에 있는 들로 옛날 그릇을 파는 그릇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진당골 : 예동 동쪽 골짜기다.
* 천빗골 : 예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인들이 사용하는 참빗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칠두득 : 예동 동쪽에 있는 들로 옛날 이곳에 칡이 많은 언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칭이방구 : 젖방굿골 위에 있는 바위로 키 모양으로 층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큰골 : 배끝소통골 위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탕건방구 : 탕건암이라고도 한다. 예동 서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탕건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옥계리(玉溪里)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인곡면 지역이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릉동을 병합해 옥계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위끼, 옥계(玉溪) : 덕곡면 본리 골짜기다. 제일 위쪽 산골마을로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계곡의 물이 옥같이 맑은 계곡이라 해서 옥계라 했다. 또 대가야 마지막 왕 16대 도설지가 신라에 망해 문수산 계곡을 따라 난을 피해 이곳에 와서 옥띠를 풀었다고 해서 옥계라 하고 옥계가 변해 위끼라고 불린다.
* 쐐, 씨에, 소야(蘇野), 무릉동(武陵洞) : 옥계에서 동으로 약 120m 떨어진 18가구가 사는 마을로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 중국의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다고 해서 무릉동이라 했다. 또 옛날 이곳에 ‘조’를 많이 심어 차조기소(蘇)자를 써서 소야라고도 했는데 음이 변해서 쐐 또는 씨애가 됐다.
* 모리터, 모리티, 모노현(毛老峴) : 덕곡면 옥계리 본 마을에서 약 3km 산길을 따라 올라 정상 부분의 마을로서 15~6 농가가 모여 산다. 그 마을의 반은 경북 고령군 덕곡면 옥계리이고, 반은 경남 합천군 야로면에 속한다. 이곳에 가려면 재가 깊고 높아 머리털이 희게 변해야 다다른다 해서 모노현 즉 털이 늙어 변한 고개라 해서 모노현(毛老峴)이라 한다. 그 음이 변해서 모리터, 모리티가 됐다. 또 다른 유래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과 래암(來庵) 정인홍(鄭仁弘) 선생은 퇴계 선생을 함께 찾아가 수학을 원했으나 퇴계 선생이 한강 정구 선생은 제자로 맞고 래암 정인홍 선생은 맞지 않아 래암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찾아가 제자가 돼 갈렸다.
정구 선생이 성주군수가 돼 옛정을 못 잊은 래암이 찾아가자 한강 선생이 술을 금한 국기일(國忌日)에 술대접을 하자 래암이 먹지 않고 돌아갔다. 국법을 어긴 한강이 래암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국법을 어긴 것을 아뢰고 용서를 구했다. 래암의 어머니가 래암을 불러놓고 용서를 구하자 래암이 이르기를 “제놈은 모릅니다”라는 말이 연유가 돼서 모리터, 모리티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전자가 가깝지 않겠나 추정할 뿐이다.
⑶ 기타
* 감나무골 : 시목동이라고도 한다. 위끼 서북쪽 마을로 감나무가 많았다.
* 개울달들 : 위끼 동쪽 개울가의 들이다.
* 굴박골 : 옥계 남쪽에 굴이 있는 골짜기다.
* 널밭골 : 옥계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넓은 밭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넝바우 : 농암이라고도 한다. 바위가 농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담상골 : 위끼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디죽골 : 위끼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되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무근터 : 오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농사를 짓던 묵은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무수강골 : 오계 남쪽에 있는 골짜기다.
* 문바양지골 : 옥계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 봉산재(鳳山齋) : 덕곡면 옥계리에 위치한 경주인 최동환(崔東煥)을 위한 재실로 1948년 창건했다.
* 불방구 : 옥계 서쪽에 있는 바위로 불알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삼밭골 : 옥계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삼을 많이 심어서 사람들은  삼밭골이라 불렀다.
* 삼우재(三友齋) : 덕곡면 옥계리에 위치하며 동래인 정규선, 규경, 규병 삼형제의 우애가 남달라 그 의표를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건립, 1958년 창건했다.
* 샛가지골 : 옥계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사이골짜기를 줄여 샛가지골이 됐다.
* 새앙골 : 옥계 서쪽 골짜기로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소릿방구 : 옥계 남쪽에 있는 큰 바위로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면 소리가 나서 소릿바위라 한다.
* 신붓골 : 옥계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 정자나무 : 옥계 서쪽에 다섯 아름이나 되는 큰 느티나무다.
* 짜골 : 옥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작은 골짜기의 준말로 짜골이 된 것으로 추정됐다.
<다음호에 계속>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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