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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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반성1리마을회관.JPG


▣ 반성리(盤城里)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인곡면 지역이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산동, 대형동, 만하동을 병합해 반암서원과 대성전의 음을 따서 반성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원앞, 원전(院前) : 이 마을은 조선 순조 32년(1832년) 정절공 정구(靖節公 鄭矩)와 그의 손자 양평공(襄平公) 정종(鄭種) 기우자(騎牛子) 정비(鄭秕)를 배향한 반암서원(盤岩書院)이 있었는데 서원 앞의 마을이라 해서 원앞 또는 원전이라 했다. 서원은 고종 5년(1868년)에 헐리고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덕곡으로 가는 지방도 바로 옆의 마을이다.
* 만하(晩霞), 마늘 : 조선 숙종 때 동래인 정운계(鄭雲溪) 본명 홍석(弘錫) 선생이 이 마을에 살면서 산골에 위치하고 북쪽을 향해 위치한 마을이라 늘 햇빛이 늦게 비치어 늦을만(晩) 노을하(霞)를 써서 만하라 했다. 또 이곳에 마늘이 많이 생산돼 마늘마을 마늘이라 불렸다.
* 양산(良山, 梁山) : 이 마을 개척 당시 동주 최씨와 광산 김씨 두 사람이 함께 산기슭의 무성한 다래넝쿨을 걷어치우고 마을을 개척하니 물도 좋고 산도 좋아 양산이라 불렀다.
⑶ 기타
* 각골 : 금안동 위에 있는 골짜기
* 고랑들 : 한새밭 아래 있는 골짜기
* 공갯골 : 무직골 위에 있는 골짜기
* 금상골 : 금산곡(琴山谷)이라고도 하고 양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 금상못 : 금산곡에 있는 못
* 금안동골 : 금상골 입구의 골짜기
* 능짓골 : 절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대성 : 대성전 대형(원앞의 옛 지명) 대형전이라 해서 원앞 마을 이름이다.
* 덤밑들 : 터서리 아래 벼랑 밑에 있는 들
* 딧갓 : 원앞 뒤에 있는 높이 122m의 산으로 측량 표준기가 박혀 있다.
* 딧골 : 원앞 뒤에 있는 골짜기
* 딧산 : 만하동 뒤에 산
* 마릿들 : 원앞에 있는 들
* 마쟁이 : 원앞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멧돌바우 : 만하동 입구에 있는 바위로 멧돌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먹골 : 지픈골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무직골 : 절둣골 위에 골짜기
* 반밧골 : 각골 위에 골짜기
* 분무동골 : 한당골 옆의 골짜기
* 성짓골 : 원앞 북동쪽의 골짜기
* 소굴 : 원앞 동쪽의 골짜기
* 안산 : 만하동 앞의 산
* 양산들 : 양산 앞의 들
* 옥산재(玉山齋) : 1915년 창건했다. 성산인 도학자 옥산 이기춘(李起春)의 묘각으로 고령, 성주, 현풍, 칠곡, 선산, 김천의 여섯 고을 유림들이 건립했다. 덕곡면 반성리에 위치하고 있다.
* 운무정(雲霧亭) : 터서리 앞에 우거진 긴 숲이다. 마치 구름과 안개가 낀 것처럼 그늘이 시원하고 짙었다.
* 유호재(遊湖齋) : 옛 반암서원 터에 세워진 동래정씨의 재인데 반암서원 헐림을 안타까이 여긴 후손들이 세웠다.
* 이로재(履露齋) : 만하동에 있는 동래정씨의 재실로 그들의 선조 정비를 위해 세웠다.
* 적은서룡 : 능짓골 옆의 골짜기
* 절골 : 분무동 옆에 옛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지붓골 : 반밧골 위의 골짜기
* 지픈골 : 공갯골 위의 깊은 골짜기
* 청도밭골 : 원앞 동쪽의 골짜기
* 큰갓 : 원앞 동쪽의 큰 산
* 터서리 ; 고랑들 아래의 들
* 한당골 : 안산 옆의 골짜기
* 한새밭들 : 원앞 남쪽의 들
* 양산재 : 거실재라고도 하며 양산에서 운수면 화암 거실로 넘어가는 고개

 

▣ 백리(白里)

 

백1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덕곡면 지역이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기동, 광천동을 병합해 백동이라 했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납내, 넘내, 너부내, 광천(廣川) : 백동 여섯 개의 자연부락 중 가장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서 조선조 초기 최순(崔順)이라는 분이 마을 개척 당시 가야산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찬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다 이 마을에 이르러 바다같이 넓게 흘러 넓은내, 넙네, 넘내, 너부내로 부르고, 한문으로 표기해 광천이라 했다. ‘廣’ 넓을 광, ‘川’ 내천.
* 덕암(德岩) : 광천 넙내 동쪽의 10여 가구가 사는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마을을 수호하고 주민에게 많은 덕을 베풀어 줌으로 덕암(德岩)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덕암이라 불렀다.
* 모실뱅이, 모실방(茅室坊) : 백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 제일 아래쪽의 마을이다. 백동 여섯 개 부락의 방죽 역할을 해 준다고 모실방(茅室坊)이라 하다 음이 변해 모실뱅이로 불린다.
* 배울, 큰마, 백야촌, 백동 : 배울은 마을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큰마는 백동에서 제일 큰 마을이라 해서 큰마라고 했다. 백야촌 마을 개척 당시 잣나무가 많아 백야촌이라 했으며, 백동은 조선조 인조 때 백동 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새터, 신기(新基) : 배울과 인접한 마을로서 성주이씨들이 이곳에 정착해 새로운 터에 생긴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밤터, 율치(栗峙) : 백동 여섯 개의 자연부락 중 제일 위쪽 마을로서 여섯가구의 농가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에는 가야산에서 흐르는 개울물이 기뭄에도 마르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알밤터, 밤터라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 부근에 밤나무가 많아 밤터라 하고 밤나무 숲이 우거진 우뚝 선 언덕이라 해서 율치라고도 한다. ‘율’ 밤율 ‘치’ 우똑 솟을 치
⑶ 기타
* 가륜재 : 가륜고개라고도 한다. 넙내에서 가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지금은 넓고 시원하게 디듬어져 있다. 
* 고령보 : 새터 남쪽에 있는 보다. 성주 사람들이 살면서 고령에 있는 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고령봇들 : 고령보가 있는 들
* 깃대 만댕이 : 새터 서쪽에 있는 산으로 측량 표준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농바우 : 밤터 서북쪽에 있는 큰 바위로 농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농암(籠岩)이라고도 한다.
* 농은재(農隱齋) : 1919년 창건, 전주인 이봉우(李鳳宇) 호 농은(農隱)을 위해 후손들이 세운 재실이다.
* 뇌암(雷岩) : 벼락바우 베락바우라고도 한다. 농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로 한 가운데 벼락이 떨어져 갈라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달리재 : 넙내에서 성주 수륜 성동으로 넘어가는 재
* 당산 : 새터 서쪽에 서낭당이 있는 산
* 도장골 : 너부내 뒤에 있는 골짜기
* 딧골들 : 큰마 동쪽의 들
* 딧갓산 : 너부내 뒤의 산
* 말무덤만댕이 : 새터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큰 무덤이 있어 붙여진 이름
* 멍덩이마산 : 송아지골 옆의 산
* 밤두들 : 큰마 서북쪽에 있는 들로 나무가 많았다.
* 백록재(白鹿齋) : 1919년 창건, 이조참판을 지낸 성산인 여휘린(호-원정)이 낙향해 학문을 연구하고 후배 양성을 위해 힘쓴 유업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덕곡면 백1리에 위치한다.
* 산싯골 : 너부내 앞의 골짜기
* 삼백골 : 새터 서북쪽의 골짜기
* 새정들 : 넙내 남동쪽의 들
* 새창보 : 옛 사창에 있었던 곳으로 이곳에 보를 만들어 농사에 이용했다.
* 새창보들 : 큰 바위 앞의 들
* 성바우 : 큰마 서북쪽에 서 있는 바위
* 성짓골 : 새터 서쪽의 골짜기
* 송아지골 : 산싯골 옆의 골짜기
* 안들 : 덕암 앞의 들
* 인산 : 넙내 앞의 산
* 양지편들 : 큰마 양지쪽의 들
* 웃들 : 넙내 위의 들
* 웃주막 : 배울 위에 주막이 있는 들
* 웃 정지나무 : 웃주막 앞에 있는 큰 느티나무
* 음달갓 : 덕암뒤 응달쪽의 산
* 절탯골 : 새터 서남쪽에 절터가 있었던 골짜기
* 정자나무 ; 정지나무라고도 하며 넙내 앞의 큰 느티나무로 둘레가 약 세 아름이나 된다.
* 조산밑들 : 조산 밑의 들
* 진등 : 새터 북쪽의 긴 등성이
* 큰보 ; 대보로 넙내 앞에 있다.
* 한질갓골 : 달리재 아래 골짜기
* 황톳골 : 딧갓 옆에 황토가 많은 골짜기
<다음호에 계속>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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