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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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덕곡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덕곡면(德谷面)-1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재미있는 지명 유래 중 이번호부터는 덕곡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고령군 8면 중 하나로 본래 성주군 지역으로 산악(山岳)이 많아 악곡면(岳谷面)이라 했다. 조선조 인조 때 윤휘(尹暉)가 덕곡(德谷)으로 고쳐서 신율(新栗), 기동(基洞), 가륜(伽倫), 대감(大監), 오로(五老), 심어(尋漁), 명곡(明谷), 백동(白洞), 포상(浦上), 성동(聖洞), 달리(達理), 당계(唐溪), 광천(廣川), 신기(新基), 양지(陽地)의 15개 동리를 관할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관동면(館洞面)의 후암동(後岩洞), 지사동(只士洞)과 前 성주군 인곡면(仁谷面)의 반성(盤城), 양산(良山), 대형(大荊), 만하(晩霞), 본리(本里), 전상(田相), 옥계(玉溪), 무릉(武陵), 예동(禮洞), 중흥(中興), 용흥(龍興), 장암(長岩), 오리(吾里)의 13개 동을 병합해 다시 덕곡면이라 하고 반성, 본리, 옥계, 예동, 용흥, 가륜, 원송, 노동, 백동, 성동, 후암의 11개 동으로 개편 관할했다.
1983년 1월 10일 성동1·2동이 성주군 수륜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동쪽은 운수면, 남쪽은 대가야읍과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서쪽은 합천군 가야면 야로면과 성주군 수륜면, 북쪽은 성주군 수륜면과 접한다.

 

▣ 가륜리(加倫里)

 

2-1 가륜1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악곡면 지역으로 現 성주군 수륜면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에 옮겨와 살면서 가수륜이라 하던 것이 변해서 가수령, 개시링 또는 줄여 가륜이라 한다.
고종 광무 10년(1906)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율동을 병합해 가륜동이라 해서 덕곡면에 편입됐는데,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가륜, 개수령, 가수륜, 개시린 : 본래 조선 중엽 성주인 배씨가 성주군 수륜면에 살면서 이곳의 명기가 성주 수륜보다 낫다고 가수륜(加修倫)이라 했는데, 음이 변해서 개시린 개수령이라 한다.
* 새밤 : 신율(新栗)이라고도 한다. 복호산(伏虎山)이 안바다 건너에 있는 민구산을 잡아먹으려 했으나 안바다를 건너지 못해 그만 날이 밝아 밤새도록 고생만 했다고 해서 ‘새밤’이라 하는데 한문으로 표기하다 보니 그 뜻이 전혀 다른 것인 신율로 바뀌었다.
* 덤띠, 덤뒤 : 이 마을은 민구산 북쪽에 위치하고 새밤과 이웃한 아홉 농가의 조그마한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 소가천이 흐르는데 이 냇가에 민구산과 접해 덤(岩山)을 이루고 마을이 이 덤 뒤에 있으므로 덤뒤, 덤띠라 한다.
⑶ 기타
* 복호산(伏虎山) : 이 산은 개시린 뒷산으로 호랑이가 엎드린 모양이라 복호산이라 한다. 이 복호산이 안바다 건너에 있는 민구산이 개를 닮아 그것을 잡아먹으려 했으나 안바다가 있어 건너지 못했다고 한다.
* 안바다 : 개시린 앞들이다. 옛날 큰 못(쏘)이 있어 앞바다가 바뀌어 안바다가 되고 지금은 들로 변했다.
* 민구산 : 안바다 건너 산으로 모양이 개가 짓는 듯해서 민구산이라 한다.
* 가륜들 : 가륜 앞의 들
* 갓골 : 함박골 옆에 있는 골짜기
* 농방구 : 농암이라고도 한다. 바위가 농처럼 생겨 약 15~6명이 놀 수 있는 넓은 바위다. 갓골 위에 있다.
* 대감띠산 : 개수령 북쪽 산
* 덤띠산안늪 : 안산 아래 있는 벼랑이다.
* 떵미 : 똥미산이라고도 한다. 새밤 입구에 있는 외딴 조그마한 산으로 똥무더기 같다고 똥뫼라 한다.
* 막머릿돌 : 쑥봇들 위에 있는 들이다.
* 밖벗-들 : 밖봇들이라고도 한다. 쑥봇들 바깥쪽에 있는 들
* 새밤 : 신율이라고도 한다. 조선조 때 덕곡면사무소가 있다가 1928년 예동으로 옮겼다. 계수령 남쪽에 있다.
* 새밤못 : 새밤 동북쪽에 있는 못
* 새봇들 : 새벗들이라고도 하며 새밤 앞에 있는 들
* 서낭당고개 : 계수령 동북쪽에 있는 고개로 서낭당이 있다.
* 서잿골 : 서재곡이라고도 하며 거창신씨(居昌申氏)의 서재가 있다.
* 신율괴목 : 새밤 복판에 있었던 느티나무로 둘레가 약 6m이고 조선조(인조) 삼노당 정우(三老堂 鄭隅)가 심었다고 한다.
* 승암재(勝岩齋) : 1920년에 창건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영의정을 지낸 광평부원군 이인임(李仁任, 성주인 호-승암)의 묘재, 덕곡면 가륜 1리에 위치
* 월주재(月洲齋) : 1930년 창건, 영천인 최진화(崔震華)를 위해 지은 재실로 덕곡면 가륜2리에 있다.
* 쑥보 : 쑥봇들에 있는 보로 숲이 있었다.
* 쑥봇들 : 계수령 앞의 들로 쑥보가 있다.
* 안바대들 : 새밤 동북쪽의 들
* 안산 : 새밤 앞에 있는 산
* 장자골 : 장잣골 장자곡이라고도 한다. 떵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 정자나무(정지나무) : 계수령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둘레가 약 두 아름이나 된다.
* 줄버리들 : 팰군앞 봇들 옆의 들이다.
* 지렛골 : 계수령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성주군 수륜면 계정동으로 넘어가는 지름길이 있다.
* 큰골 : 장자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팰군앞봇들 : 새밤 앞에 있는 들로 팰구나무(팽나무)와 보가 있다.
* 함박골 : 새밤앞에 있는 골짜기다.

 

 

▣ 노리(老里)

3-1 노1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덕곡면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곡동을 병합해 노동(老洞)이라했다. 세조 때 동평군 정종(鄭種)이 이곳에 살면서 호를 오로재(吾老齋)라 했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노리(老里)로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서우재(鼠禹齋), 명공(明谷) : 조선초 곡부공(曲阜孔)씨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날이 새는 골짜기라 해서 명공이라 했고, 또 다른 설은 곡부공씨 대신 성산배씨가 이곳에 살면서 명곡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서우재는 이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 어떤 도승이 말하기를 앞산 모양이 코끼리 형상이라 힘이 왕성해 마을이 불행하니 코끼리의 힘을 줄이기 위해 쥐를 많이 길러야 된다고 해서 서우재라 하고 노2리지만, 서우재라고 많이 불린다.
* 오름실, 오로동(吾老洞), 오음곡(吾音谷), 노곡(老谷) : 조선 세조 때 동래인 동평군 정종(鄭種)이 이곳에 내려와 살면서 이 마을에 와서 늙어간다고 오로(吾老)라 했는데, 음이 변해서 오름실, 올로동, 오음곡, 늙은 골짜기라 해서 노곡으로 불린다.
⑶ 기타
* 가는편산 : 서우재 북쪽에 있는 산으로 머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건넛들 : 오름실 앞 건너편에 있는 들
* 금바우골 : 무지터 북쪽에 있는 골짜기
* 금장골 : 마검단 건너쪽에 있는 골짜기
* 경주너덜 : 정지너덜, 경주뢰(慶州磊)라고도 한다. 오름실 뒤에 너설을 이룬 바위로 신라 때 백운산성(성주군 수륜면 백운동 소재)을 쌓는데 경주에 사는 어떤 할미가 바위를 치마에 싸가지고 오다 이곳에 와서 보니 산성이 완성됐으므로 필요 없는 바위들을 쏟아버려 경주너덜이라고 한다.
* 기우폭포 : 조개폭포라고도 하며 정지너덜 뒤에 있는 폭포로 높이가 30여자가 되며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재를 지내므로 기우폭포라고도 하고 떨어진 물 주위의 모습이 조개같이 생겨서 조개폭포라고 한다.
* 뇌암(雷岩) : 쾌락바우 또는 베락(벼락)바우라고도 한다. 서우재 복판에 있는 큰 바위로 벼락을 맞아 갈라졌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당산들 : 서우재 서쪽에 있는 들로 서낭당이 있어 이곳에서 매년 정월 보름날 동제를 지낸다.
* 대감골 : 오름실 아래 있는 골짜기
* 대올골 : 오름실 뒤에 있는 골짜기
* 도장골 : 서우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동구라밋보 : 동불암보(東佛岩洑)라고도 한다. 서우재 북서쪽에 있는 보, 세종 때 김종서(金宗瑞)의 부하인 고녹사(高綠事)가 백동에 은거하면서 백동의 농민을 위해 가야산 동쪽의 물을 끌어 산을 파고 고개를 넘어서 길이 10여리에 이르는 긴 보를 내 백동 구역의 논을 옥토로 만들었으므로 농민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지냈다. 근래 와서 노동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 물은 천연적으로 노동에 있는 물인데 노동에서는 못쓰고 딴 구역인 백동에서 가져가는 것을 불가하다 해서 두 마을 사람들이 합의해 날짜를 정하고 백동과 노동에 물을 나눠 사용해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 동산들 : 서우재 남쪽에 있는 들
* 두름밤 : 원야라고도 하며 서우재 동쪽에 있는 들
* 딘너풀들 : 오름실 뒤에 있는 들
* 띠밭들 : 두름밤 옆에 있는 들로 잔디가 많다.
* 마검담(磨劍潭)소 : 마검쏘, 배장사마검처라고도 한다. 서우재와 오름실 중간에 있는 쏘인데 정유재란 때 선무사(宣撫使) 배집(裵輯)이 이곳에서 칼을 갈아 무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지금은 덕곡저수지에 수몰됐다.
* 마검덤 : 마검쏘 위에 있는 벼랑
* 마검정(磨劍亭) : 마검덤 정자나무라고도 한다. 마검담에 있는 느티나무로 그 둘레가 약 세 아름이나 된다. 세조 때 동평군 정종이 놀았으며, 선조 때 선무사 배집이 이곳에서 칼을 갈며 무술을 연마했다.
* 만모재(晩慕齋) : 서우재에 있는 정자, 성산배씨들이 그들의 선조 집(偮) 이하 3대를 위해 세운 재실이다. 1937년 노그리에 세운 정헌공(定憲公) 이원조(李源朝)의 찬기문과 장상중(張相重)의 기문이 있다.
* 노고산 성지(老姑山城址) : 두 개의 산봉을 함께 포위하듯이 쌓은 테뫼식 석토혼축성(石土混築城)으로 동서북은 석축이고 남쪽과 동쪽 일부는 토축으로 돼 있다. 주위 약 806m로 임란 시 의병들이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며 지금도 봉화대 두 곳과 정지(井址)가 남아있다. 덕곡면 노리 산 23번지에 위치한다.
* 오노재(吾老齋) : 1932년 창건했다. 경주부윤을 지낸 후 이시애난(李施愛亂)에 전후 유공한 공신으로 가선대부동평군이 된 정종(鄭種:동래인)이 낙향해 이곳에서 후배양성에 힘쓴 공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호를 따서 오로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 배집묘(裵緝墓) : 조선 선조 23년(1590년) 무과에 등과해 임란 시 부상개산(현 개진면 직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시에는 조방장(助防將)으로 출전해 개산에서 격전 중 선조 31년(1598년)에 순사(殉死)했다.
후에 선대부병조참판, 의금부훈련원사를 증했다. 묘 앞에는 상석 및 망부석 두 개가 있다. 유물로는 만모재(晩募齋)와 정종석(鄭宗錫)이 지은 ‘성산배씨 사찬유지비’가 있다.
* 머구밭골 : 서우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머구나무(오동나무)가 있었다.
* 무지바우(수제암) : 무지터 위에 있는 바위로 무제를 지내 붙여진 이름이다.
* 무지터 : 수제지라고도 한다. 금장골 아래 골짜기로 무제를 지내는 터가 있다.
* 배암쏘 : 마검쏘 동북쪽에 있는 쏘다. 선조 때 배집이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해 배암(裵岩)쏘라 불렀다.
* 배암쏘들 : 배암쏘에 있는 들
* 배암쏘산 : 배암쏘 위에 있는 산
* 상토바우 : 상투바우라고도 하며 무지바우 아래 있는 바위로 생김새가 생투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세렛들 : 오름실 위에 있는 들
* 새밭골 : 오름실 앞에 있는 골짜기
* 새앙골 : 서우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샘이 새암골로 변해 붙여진 이름이다.
* 수끼골 : 대감골 아래 골짜기다.
* 생별산 : 서우재 남쪽에 있는 산이다.
* 오름실앞들 : 오름실 앞에 있는 들이다.
* 자모동 : 오름실 뒤에 있는 등성이
* 자박들 : 서우재 남쪽에 있는 들
* 조개골 : 무지터 아래 있는 골짜기
* 중동 : 오름실과 가륜동 중간 마을
* 질구짓들 : 서우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질메재 바로 밑이다.
* 질메재 : 질멧골 위에 있는 고개로 모양이 질메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타말리들 : 서우재 남쪽에 있는 들
* 티미산 : 서우재 남쪽에 있는 산
※ 노1리와 노2리는 고령 지방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가야산(伽倻山)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찬물이 백운(白雲, 흰구름)에서 시작해 상비량으로 흘러내려 절경을 이뤄온 곳이다. 이곳에는 많은 전설과 함께 바위와 많은 쏘들이 골짜기의 농토와 함께 덕곡저수지에 잠기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은 비록 물밑에 잠겨 그 모습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곳의 많은 유래는 영원한 것으로 위로를 삼을 수밖에 없다.
* 덕곡저수지 : 덕곡(德谷)못이라고도 하는데, 몽리면적 435정의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1985년 4월 10일 착공 1994년 12월 30일 준공했으며, 면적은 17ha이다. 그러나 이 저수지 조성으로 옛날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많은 전설이 물에 담겨져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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