万 折 / 문필가
선진국에 오른 오늘의 대한민국 대선, 거대담론은 없고 깨알공약(조잔)만 판을 치니 실망을 넘어 황당하다. 나는 그래도 정권을 바꾸자는 정당에 기대를 걸었지만 하나둘 나타나는 ‘멸치 콩···’ 등이 실망을 넘어 허탈할 지경이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폈던 결기에, 다수 국민들이 기대도 걸었지만 선거 상황을 보니 후보도 당도 ‘콩가루 집안’이었다.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기대했던 국민들이 한 ‘죽비’였다. 무소불위의 거여를 이기려면 총력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일인데 연일 일어나는 자중지란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가까스로 봉합은 했다지만 또 신뢰는 할 수 있을지···.
적전분열, 죽 쒀서 누구(犬) 주려나. 리더십이 좀 부족해도 정권교체에는 ‘후보 우선’이 원칙이다. 모두 ‘밀알’이 돼라. 역시 각자 ‘플렌B(자기정치)’가 있는 것인지 사안마다 부딪힌다. 젊은 혈기만 내세워 아직은 ‘자기정치’만 할 때도 아니다. 교사가 숙제 내듯 ‘연습문제’는 잘못이다. 중진도 원로도 이런 대표는 처음이라는 이구동성 질타(叱咤)도 좀 들으라. 내 뜻이 관철되지 않아도 인내와 배포(排布)로 견디고 경장(更張)하라. 그게 참 지도자다. 그걸로 구만리 정치 경력을 쌓고 배우라. 이럴 땐 참신성보다 경륜(중진)이 더 중요하다. 대선이 대전(大戰)이다. 젊은 대표라는 ‘시너지 효과’에만 천착(穿鑿)하지 마라. 언행도 좀 정제(整齊)하고 ‘가출’의 가벼움도 자제하라! ‘나를 따르라’가 리더십의 전형(典型)은 아니다. 직격탄 “젊은 꼰대”도 터졌다. 후보도 대표도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임을 각성하라! 경선 2위 탈락자도 다음을 위해서라도 좀 자중하라!
2030세대와 지지자들의 불만이 분출하고 의원총회에서 당대표 사퇴 압박이 나와 폭발할 것 같더니, 가까스로 수습이 되어 그나마 안도는 하고 있지만 언제 또 활화산(?)이 될지 모르겠다. 지난 대선 때 분당하는 졸렬한 참사(?)도 있었으며, 지금은 여기 더하여 대선 동시 실시 재보궐 선거와 곧 지방선거도 있으니 말이다.
여당 후보는 청산유수 능변으로 아침저녁 말이 바뀐다. 대장동 사건! ‘그분’, ‘그분’이 피의자와 참고인 진술에서 네다섯 차례나 나왔지만, 응당 책임이 있음이 상식인데 ‘그분’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누가 봐도 뻔한 사안인데 안 한 건지 못한 건지가 쟁점이다. 게다가 두 분사(憤死)의 횡액(橫厄)이 터져도 누군지조차도 모르고 책임도 없다며 ‘강 건너 불’이다. 검찰이 뭐 하는 곳인지 아킬레스건 대장동 문제는 ‘소귀에 경 읽기’고, 한다는 수사는 ‘저축은행’만 한다. ‘황제조사’나 하는 ‘공(空)수처인가. 사람에,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소명의식으로 업무에 임하라! 법이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고 했잖아. 전 총장 같은 검사는 왜 없나. 권력 앞에선 풀잎처럼 먼저 눕기만 하나. 사법, 선관위, 감사원 등도 풀잎이 되지 말라! 정권에 예속되지 말라는 경고다.
최초 유동규 압수수색 전후 전화한 사실 없다더니 수사(눈가림) 중 대여섯 차례 나왔다. 그래도 대장동 설계자인 시장은 단군 이래 최대실적만 노래하지 아직도 ‘모른다’ 일관이다. 요리조리 ‘법꾸라지’가 또 나왔다.
사람 사는 사회, ‘상식’의 의미는 가장 쉽고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인데도 거기 무슨 구차한 사족(蛇足)을 붙이며 모른다고만 하는가. 이게 바로 ‘상식에 반한다’는 말이다. 이런 능수능란한 술수의 교언영색(巧言令色)도 상식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게 보편적 인간사다. 9박11일 해외 출장을 함께 간 직원도 모른다고? 모르는 사람을 왜 수행을 시키고, 길에서 아무나 붙들고 출장가자고 했나. 나도 불렀으면 갈 텐데···? 측근은 아니고 측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국어사전이 비웃겠다.
이걸 누가 믿으라는 건가. 달변, 임기응변이면 뭐하나. 정통으로 핵심을 찔리면 ‘모른다, 수백 명을 내가 어이 다 알겠느냐’라 을러댄다. 조변석개의 정책 나열이더니 “부동산 반칙 잡겠다?” 도둑이 도둑 잡겠다는 건가. 저 북쪽에서 쓰는 ‘삶은 소대가리’가 튀어 나온다. 참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침식을 잊을 정도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념의 충정과 사명감과 엄숙한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새 정부 출발은 적재적소의 인사(人事)로 시작한다. 인사가 만사라고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정권은 끼리끼리 패당(牌黨)을 지어 권력 향유에만 함몰돼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론에 밀려 조국 사표 받아놓고 ‘마음에 빚 졌다’, 관사에 살다 나간 ‘흑선생’에게는 ‘너 어디 가서 살래’가 표본이다. 임기 말을 두고는 ‘민변’ 인사로 대못 박음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작위 통신조회는 또 무슨 말인가. 무명시민 내게도 좀 하라! 그래서 나도 이 기회에 ‘유명시민’이 돼 보잔 말이다. 오죽했으면 “공수처 미투”가 나왔겠는가. 공(恐)수처 무용론이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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