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다산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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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다산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다산면(茶山面)<1>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유래와 재미있는 지명을 이번호부터 다산면을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다산면

1. 다산면소재지 전경(메인).jpeg

 

연혁(沿革)
고령군 8개 읍·면 중의 하나다. 본래 다사지현(多斯只縣) 또는 답지현(沓只縣)인데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 하빈현(河濱縣)으로 고쳐서 수창군(壽昌郡) 또는 수성(壽城)의 영현(領縣)이 됐다. 고려8대 현종9년(1019년) 하빈현(河濱縣)을 현재의 달성군 하빈면 현내동(縣內洞)으로 옮기는 동시에 경산부(京山府 現 星州)에 소속됐다. 조선시대 때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됐다가 다시 성주에 옮겨져서 다기방(茶基坊) 또는 다산방(茶山坊)과 벌지방(伐知坊)이 됐다.
고종 광무 10년(1906)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다산면(茶山面)의 곽촌(藿村), 지내(池內), 법동(法洞), 신동(新洞), 상곡(上谷), 좌학(座鶴), 발산(鉢山), 평리(平里), 호촌(湖村), 사촌(沙村)의 10개 동과 벌지면(伐知面)의 나정(羅亭), 아시(阿時), 벌지(伐知), 동암(東岩), 남촌(南村), 상로(上老), 하로(下老), 장척(長尺), 남양(南陽), 노곡(蘆谷), 삼동(三洞)의 11개 동을 병합해 다산면이라 했다. 평리, 좌학, 상곡, 호촌, 곽촌, 월성, 나정, 벌지, 송곡, 노곡의 10개동으로 개편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고 동쪽 낙동강을 건너 대구직할시 성서 달성군의 화원면, 남쪽은 낙동강을 건너 달성군 옥포면, 논공면과 접해있고, 서쪽은 성산면, 성주군 용암면과 경계를 이루며, 북쪽은 달성군 하빈면, 다사면과 경계를 이룬다.

 

▣ 곽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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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다산면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내동을 병합해 곽촌동으로 불리다가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꽉걸, 깍껄, 축갈(畜葛), 곽촌(藿村) : 이 마을 개척 당시 마을 뒷산 칡넝쿨 아래 기이하고 향기로운 풀이 있어 사람이 뜯어먹으니 힘이 세어지고 장수가 났다고 해서 축갈이라 불려졌다. 또 이 마을에는 반상의 차가 심해 까다롭다고 해서 깍걸, 꽉갈이라 하고 이 마을 안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못에서 미역이 났다고 해서 지금까지 곽촌(藿村)으로 불리고 있다.
* 못골, 지내동(池內洞), 지곡(池谷), 지동(池洞) : 못이 있는 마을이라 못골이라 하고 못이 있는 골짜기라 지곡(池谷)이라 했으며, 못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지내동(池內洞)이라 했다.
곽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m 떨어진 마을이며, 서씨(徐氏), 박씨(朴氏)를 비롯한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⑶ 기타
* 깍걸-들(곽촌들, 곽촌평) : 깍껄 앞에 있는 들
* 누-골 : 못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달령보(達靈洑) : 깍껄 앞에 있는 보로 달성군의 ‘달’자와 고령군의 ‘령’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 당산재 : 깍껄 뒤에 있는 산으로 산제당(山祭堂)이 있다.
* 도랑골 : 못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도랑이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돈원정 : 수성인 나순손(羅順孫)을 위한 재실
* 땅닥골 : 당산재 뒤에 있는 골짜기
* 무덩골 : 깍껄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 무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샛강 : 깍껄 북서쪽에 있는 강으로 낙동강이 두 갈래로 흘러서 섬을 이루고 다시 합해서 흐른다.
* 선달막 : 곽촌 북서쪽에 있는 산
* 선달바우 : 선달막에 있는 큰 바위
* 샛강섬 : 샛강 동북쪽에 낙동강 가운데 있는 섬이다.
* 이성들 : 선달막 서북쪽 낙동강 가에 있는 이름이다.
* 장대말리들 : 곽촌 동쪽에 있는 들
* 장수바우(장사암, 장수암) : 깍껄 서북쪽에 있는 큰 바위로 손자국 형상이 있다. 옛날 대가야국과 신라가 싸우다가 대가야 장수가 패주해 말을 채찍질 해 낙동강을 건너뛰는 데 그만 말이 강에 빠지는 바람에 말에 탔던 장수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손으로 이 바위를 짚은 자국이라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 줄못(주을지, 하동지, 다호지) : 곽촌 서쪽에 있는 크고 작은 못 이름인데 태종 때 하동현감(河東縣監), 나순손(羅順孫)이 팠다고 하동지(河東池)라고도 한다.

 

▣ 나정리(羅亭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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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1리 수령 300년 소나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가고 있어 주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벌지면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에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아왕동(阿旺洞)을 병합해 나정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돼 오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나정(羅亭) :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 사는 기(奇)씨가 정자나무를 심었으므로 전라도의 라(羅)자를 따서 나정으로 불렀다고 하고, 또 다른 유래는 마을앞 정자에서 뒷산을 바라보니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이 보인다고 나정이라 한다.
* 새뜸, 새나정, 신라정(新羅亭), 봉양정(鳳陽亭) : 나정 건너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금부터 약 70여 년 전 창녕인 성영호(昌寧人 成永鎬)라는 사람이 나정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신나정(新羅亭) 또는 새나정이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비봉산 줄기의 양지 바른 곳에 있다 해서 봉양정(鳳陽亭)이라 한다.
* 아시터, 아시티, 아시동(阿時洞), 아시현(阿時峴) : 나정에서 성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마을로 옛날 어느 스님이 이 고개를 넘다가 산수가 수려해 이 고개 아래서 그 때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마을이 융성하리라고 말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⑶ 기타
* 경효재(景孝齋) : 1962년 창건, 창녕인 성풍세(成豊世)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로 효도문 1동이 있다.
* 나정재 : 나정에서 노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 덕산재(德山齋) : 1919년 창건, 행주인 기중선(奇重宣, 호 덕산) 선생이 정유재란 때 나정으로 피난 와서 후손을 퍼뜨렸기에 후손들이 선조의 공덕을 위해 지은 재실이다.
* 막골(막곡) : 나정 서쪽에 있는 마을
* 막골못(막곡지, 막곡류지) : 막골에 있는 못
* 새뜸 : 봉양동
* 아시티 : 아시티 재 밑의 마을
* 아시타(아시치) : 나정에서 성주군 용암면 조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 아시티못(아시지, 아시류지) : 아시티 남동쪽에 있는 못
* 적촌(赤村) : 나정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 적촌못 : 적촌 남서쪽에 있는 못인데 1943년에 팠다.

 

▣ 노곡리(蘆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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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벌지면 지역으로 논이 많아 노실, 노곡이라 불렀다. 고종 광무 10년(1906)에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암동을 병합해 노곡동으로 다산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태종의 손자 덕성군(德成君)이 살았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논실, 답곡(沓谷), 노곡(蘆谷) : 낙동강변의 넓고 기름진 땅에 논이 많다고 해서 논실, 답곡이라 불렀고, 개척 당시 갈대숲이 우거져 노곡이라 했다고 한다.
* 월암(月岩) : 낙동강변 8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로 노곡 서북쪽에 위치한다. 여기에는 달바우가 있는데 달을 맞이한 바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⑶ 기타
* 개논 : 논실 앞의 들로 개흙으로 돼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갱변들 : 논실 동쪽 낙동강변 들
* 게줏골 : 논실 남쪽에 있는 골자기
* 구붓골 : 논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논실나루(문산나루, 노곡진) : 노곡앞 낙동강가의 나루터로서 논실에서 달성군 하빈면 문산동으로 건너간다.
* 논실못(노곡지, 노곡지류) : 논실에 있는 못으로 1944년에 팠다.
* 달바우 : 월암 중앙에 있는 바위로 반달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도린젖들 : 불탄들 아래 있는 들
* 독골 : 구붓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
* 들밭 : 노곡 동쪽에 있는 들로 밭이 많다.
* 두께비봉 : 월암 뒤 산으로 두꺼비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말구리재 : 논실 북서쪽에 있는 고개로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어가다 산적을 만나서 말이 굴렀다해서 말구리재라고 한다.
* 말구리덤 : 노곡(논실) 서편 낙동강변에 서 있는 벼랑으로 높이는 약 50m 되는데 황금거북이가 나왔다고 해서 거붓골이라고도 한다.
옛날 어떤 장사가 패주해 달아나다 낙동강에 자살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말의 굴레를 벗겨 백운정(白雲亭) 노송에 걸어놓고 달아났다 해서 말구리덤이라 한다. 조선 숙종대왕이 지방순시 때 이곳에 와서 경치가 좋아 그네를 매고 쉬어갔다고 전해진다.
* 못밑논 : 논실못 밑의 논
* 무듬등 : 논실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무덤들이 많다.
* 밤숫들 : 숲밭 안쪽에 있는 들로 밤나무 숲이 많다.
* 불탄들 : 노곡 뒤에 있는 등성이로 벼락이 떨어져 불에 타서 흙이 누렇게 돼 붙여진 이름이다.
* 산걸들 : 노곡 동북쪽에 있는 들
* 상무드미들 : 개논 위에 들로 큰 무덤이 있었다.
* 섯밭산 : 논실 서쪽 산
* 숲밭 : 갱변 안쪽들로 솔숲이 많다.
* 아낭들(안항, 안행) : 아낭산 밑에 있는 들
* 아낭산(안항산, 한행상) : 논실 앞 산으로 기러기가 나는 형상이라 한다.
* 월암곡 : 월암 뒤의 골짜기
* 이실골 : 노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여송(李如松)이 지나가다 맥을 자르기 위해 등성이를 칼로 치니 이실(이슬)이 나왔다고 한다.
* 새창나무(정자나무) : 노곡 앞산에 있는 느티나무로 둘레가 세 아름이나 되며 벼락을 맞아 가지가 부러졌다.
* 주구등 : 논실 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모양이 주구(주걱)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중무드미들 : 상무드미 아래 하무드미 중간 들
* 지픈골 : 심곡이라고도 해서 논실 동북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
* 황새-끝 : 노곡 동북쪽 낙동강 가에 있는 산
* 후싯-들(구싯들) : 논실 동남쪽에 있는 들
* 소저시 : 마을 뒷산에 있는 고분으로 약 200년 전 이 고분군 안에서 쌀 씻은 뜨물이 흘러내렸다고 하며 고분군 안의 유물은 도굴당하고 없다.
지금도 이 고분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공을 드리는 여인들이 종종 있다.
* 배운정 : 성주군 용암면과 다산면 경계 산마루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이 정자나무 밑에서 쉬어가면 뜻을 이룬다고 전해온다.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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