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개진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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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우리마을(개진면)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우리들의 선조들은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고,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8개 읍·면 각 마을의 재미있는 지명 유래 중 이번호에 두 번째로 개진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반운교류센터.JPG


▣ 반운리(盤雲里)

 

⑴ 연혁(沿革)
본래 고령군 송천면 지역으로 앞 내가 동그랗게 사린 것처럼 돼 있으므로 사리움 또는 반천, 변해서 반운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반운동이라 해서 개진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사리움, 도남(道南), 반천(盤川), 반운(盤雲) : 앞 내가 동그랗게 사린 것처럼 됐다고 사리움 또는 반천이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곳에 와서 반명을 물어보니 송천방(松泉坊)이고, 이곳 주인이 송암(松庵) 김면(金沔)이니 솔송(松)자를 두려워하던 왜병들이 ‘송’자가 두 개나 있어 남으로 도망했다 해서 도남(道南)이다. 이곳 앞산을 독산이라 하는데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아 와룡산이라 하며 용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구름이 많이 서려야(盤) 하므로 반운이라 했다.
* 새터, 신기(新基) : 이 마을은 양전동으로부터 분리돼 새로 형성된 마을이다. 1936년 홍수로 인해 집과 전답이 유실, 파괴돼 새로 집을 지었다고 신기, 새터라고 한다.
⑶ 기타
* 경모재(敬慕齋) : 1942년 창건, 성산인 봉사(奉事) 이영숙(李永淑)을 위한 제실 성산 이기윤(李基允)이 기문을 지음
* 날끝산 : 반운 동쪽에 있는 산
* 대산들 : 대트 옆에 있는 들
* 대트들 : 활쏘 옆에 있는 들
* 도남재(道南齋) : 1950년 창건, 훈련원 봉사 첨정부호군(訓練院奉事 僉正副護軍)을 지낸 학산(鶴山) 이정개(李廷凱, 성주인)을 위한 재실
* 뒷들 : 반운 뒤에 있는 들
* 따목들 : 반운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모듬내 : 가야산에서 발원해 모두 모여 반운 앞으로 흐르는 내(회천)
* 미미산들 : 뒷들에 있는 들
* 방갓들 : 미미산 옆에 있는 마을
* 아릇마 : 반운동 아래 있는 마을
* 아릇마정자나무 : 아릇마 옆에 큰 떡버들나무 정자
* 앞들 : 반운 앞의 들
* 용두 : 반운 서쪽에 있는 산, 용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용두날(용두진) : 용두 앞의 모듬내 나루로 고령 일량, 시실을 건너감. 용두나루인데 줄여진 말이다.
* 운천재(雲川齋) : 1912년 창건, 성산인 이우성(李遇聖)을 위한 재실, 1963년 중건. 이헌주가 기문과 재호를 썼다.
* 웃마 : 반운동 위쪽 마을, 위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웃마정자나무 : 웃마에 있는 느티나무
* 칠성바우(칠성암) : 뒷들에 있는 일곱 개의 바위로 북두칠성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며, 제방 축조 시 파괴되고 1개만 남았다.
* 활쏘 : 앞들에 있는 소

 

▣ 부리(釜里)

 

부1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으로 옹기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암 또는 부동이라 했다. 고종 광무 10년(1906)에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동을 병합해 부동으로 개진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가암 : 옛날부터 이곳에 옹가 가마가 있어 가마가 가암으로 됐다고 하며 마을이 산에 둘러쌓여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
* 진늪, 늪추리, 늪가, 지상리 : 낙동강가에 깊고 긴 늪이 있어 진늪이라 하고늪가의 마을이라 늪가, 늪추리라 하고 늪 위의 마을이라 지상리라 불렀다.
* 독실, 옹동(甕洞) : 가암에서 구운 옹기를 파는 옹기점이 있어 독실 또는 옹동이라 불렀다. 남쪽의 입구를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여 그 형상이 마치 항아리가 남으로 넘어져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독실, 옹동이라 한다.
* 나루머리, 진촌(津村), 진두(津頭) : 낙동강 진늪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고령군 개진면과 달성군을 드나드는 나루촌이므로 나루머리, 나루촌, 진두라 함, 조선시대 때는 이곳의 이름을 따서 현풍군 진촌면이 됐다.
* 창동(倉洞) : 임란 때 곽씨들이 개척한 마을이다. 낙동강을 이용 수륙교통이 활발했으며, 조선시대 때 이곳에 사창을 뒀으므로 창동이라 했다.
⑶ 기타
* 가암 : 부동
* 골안 : 가암 서쪽안에 있는 골짜기
* 금계돈(金鷄墩) : 진늪 서쪽가에 있는 언덕이다. 중종 때 금헌(琴軒) 이정곤(李長坤)이 벼슬을 내놓고 이곳에 와서 정자를 짓고 살았다.
* 깃대등 : 시밋골 뒤에 있는 등성이다. 깃대만댕이 밑이 된다.
* 늪건너들 : 진늪 건너쪽에 있는 들
* 늪앞들 : 진늪 앞에 있는 들
* 도랑건너들 : 가암 앞 도랑 건너 쪽에 있는 들
* 물문나루(수문진) : 부동 동남쪽 낙동강가에 있는 나루터다. 수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부동에서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로 건너간다.
* 배갓등산 : 진두에 있는 24m 높이의 산
* 부동평야 : 부동 앞에 있는 큰 들(낙동강가)
* 순압산 : 부동 서쪽에 있는 산
* 시밋-골 : 창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한 효자가 부모를 위해 3년 동안 시묘를 했다고 전해진다.
* 웃-뱃가 : 물문나루 위에 있는 나루
* 잔-독실 : 독실 서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장택늪 : 진늪
* 진촌들 : 진촌 앞의 들
* 진촌면터 : 창골에 있는 前 현풍군 진촌면의 터, 조선시대 때 진촌면의 적산(笛山), 백산(栢山), 옥동(玉洞), 옹곡(甕谷), 부동(釜洞), 창동(倉洞), 생동(省洞), 인안(仁安), 치산(雉山)의 9개 동리를 관할했다. 1914년 군면 폐합 시 고령군 개진면에 편입됐다.
* 창동-은행나무 : 창동에 있는 은행나무로 명종 때 곽재명이 심은 나무로 높이 35m, 둘레 5m나 된다.
* 춘안-들 : 부동 서남쪽에 있는 들
* 하동-들 : 부동 서쪽에 있는 들

 

 

▣ 생리(省里)

 

생리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 고종 광무 10년(1906)에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생동이라 해서 개진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송골·생골(省谷)·생동(省洞) : 속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므로 송골 또는 생곡이라 했다. 마을 뒷산 삼베등(麻布嶝)이라는 산 모양이 마치 삼베실을 풀칠할 때 사용하던 솔(省)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솔골’ 한문으로 省谷으로 부르다 생리로 바뀌었다.
* 밭나실, 밤나실, 새마을 : 생리 입구의 조그만 마을로 생리를 중심으로 밖의 마을이라 밭나실, 어원이 변해 밤나실이라 하고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마실, 새마을이라 했다.
⑶ 기타
* 관경재(觀敬齋) : 1964년 창건, 성주인 이천상(李天祥)을 위한 재실이다.
* 강변-들 : 낙동강가의 밤나실에 있는 들
* 독실-곡재 : 생곡 남쪽에 있는 고개인데 생곡에서 부동 독실로 넘어간다.
* 돌-꾸지산 : 생곡 북쪽에 있는 산
* 밤나실들 : 밤나실 앞에 있는 들
* 밭나실(밤나실) : 생곡 동쪽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다.
* 성동재(省洞齋) : 1911년 창건, 원당인 포산군수 곽 정(郭廷)을 위해 건립된 재실이다.
* 산빗-등 : 생동 북쪽에 있는 등성이다.
* 솔구-창지골 : 생동 입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어붕-골 : 생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원당-골 : 생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원당이 있었다.
* 정지-나무 : 생동 앞에 있는 느티나무, 둘레가 네 아름이나 된다.
* 창동-만댕이 : 생동 남동쪽에 있는 산
* 큰-덕골 : 생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큰절-개울 생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절이 있었다.
* 한새밋-들 : 생동 동쪽 입구에 있는 들로 큰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회-나무 : 생동 중앙에 있는 회나무로 둘레가 다섯 아름이나 된다.

 

▣신안리(新安里)

 

신안리 마을전경.JPG


⑴ 연혁(沿革)
본래 고령군 송천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안동이라 해서 개진면에 편입되고 1988년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신촌(新村), 새마, 음지마, 신안(新安) : 옥산 응달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새마, 신촌이라 했고, 응달진 마을이므로 음지마라고도 했다. 원래는 들 복판에 이뤄졌으나 모듬내 하상이 높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전주 이씨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을 중흥시켜 편안한 마을이란 뜻으로 신안(新安)으로 불린다.
⑶ 기타
* 괭잇골 : 신안 뒤에 있는 골짜기로 고양이가 많았다고 한다.
* 구-답들 : 날끝 앞에 있는 들로 예전부터 논이 있었다.
* 날-끝산 : 신안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날처럼 됐다.
* 방천들(방천평) : 신안 동남쪽에 있는 들로 신안 뚝이 있다.
* 방천-만당 : 방천 남서쪽에 있는 들이다. 날끝 동남쪽이 돼 지대가 높아서 그곳에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들이 됐다.
* 봉-답 : 날끝 북서쪽에 있는 들로 천수답이며 지금은 경지정리로 수리안전답이 됐다.
* 안강재(安岡齋) : 1925년 창건, 전주인 통정대부 이시식(李時植)과 말식(末植) 형제를 위해 건립한 재실로 부제학 이범세의 기문과 진사 박기열의 상량문이 있다.
* 새-갓 : 신안 서북쪽에 있는 산이다.
* 서재-개고랑 : 신안 뒤에 있는 골짜기로 전주 이씨 서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신안-뚝(신안제방) : 신안 동남쪽에 있는 제방이다.
* 아릿-들 : 신안 아래쪽에 있는 들이다.
* 웃-들 : 신안 위쪽에 있는 들이다.

 

*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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