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6주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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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광복 76주년의 의미

최 종 동<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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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종 동<편집국장>

 


지난 15일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된 광복 76주년이다.
올해 광복절에 가장 주목 받았던 뉴스는 독립운동의 큰 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소식이다.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군을 이끌며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를 출발해 지난 15일 고국으로 돌아와 18일 대전현충원에 유해가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의병전쟁 및 항일독립전쟁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민족주의와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철저한 무장투쟁노선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1907년 의병을 모집해 투쟁하다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1920년 청산리에서 일본군 37여단 1만5천여 명을 상대로 싸워 3천여 명을 살상시키는 전과를 올리며 대승을 거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져 살다가 조국 광복 2년을 앞둔 1943년 10월 25일 크즐오르다에서 숨을 거둔 전설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다.
당시는 오로지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전국에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지만, 고령인으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들도 적지 않다. 그분들의 전적비·기념비가 고령지역 곳곳에 있어서 매년 이맘때라도 우리는 추모의 마음을 가져야하겠다.
연조공원에 유석 남형우 선생 순국기념비를 비롯해 해영 신철휴 선생 기념비, 대가야교육원 옆 영주 김상덕 선생 사적비, 국채보상운동기념비, 사촌리 정은공 재실에 해영 신철휴 선생 흉상 등이 있다.
고령인으로서 조국독립에 헌신한 몇 분을 살펴보자.
홍와 이두훈(1856~1918) 선생은 고령지역을 대표하는 유림으로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국권침탈을 반대하는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포고천하문’을 직접 작성하고 국채보상운동에서 고령지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는데 단연상채회(斷煙償債會) 이두훈 회장이 중심 인물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받아 이두훈 선생은 2015년 3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유석 남형우 선생은 1909년 비밀독립운동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1915년 대구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1919년 경남 창원 등지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했다.
해영 신철휴(申哲休, 1898~1980) 선생은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20세인 190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해 만주로 갔다.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1919년 9월 지린성 류허헌, 합니하에서 조선독립운동의 무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에 앞서 신철휴 선생은 그해 6월 경 신흥무관학교 생도인 김원봉, 양건호, 서상락, 김옥 등과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결사대를 조직, 활동에 나서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의열단을 창단한 이들은 근거지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국지사를 포섭해 1925년 단원이 70여명으로 늘어났다. 의열단의 첫 사업으로 밀양경찰서 폭파계획을 세웠다. 1920년 초 신철휴 선생은 곽재기 등과 만주로부터 폭탄 등 무기를 가지고 입국한 뒤 밀양에서 폭파거사 활동을 벌이다 일경에 사전에 발각돼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20년 3월 검거됐다. 신철휴 선생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해 1년 간 복역하고 출옥했다. 1977년과 1990년 각각 건국 포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영주 김상덕 선생은 대가야읍 저전리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배움에 대한 뜻을 잃지 않고 한학으로 학문적 소양을 다진 뒤 1915년 경신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해 유학생들과 민족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며 김도연의 제안으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학생대회를 통해 이를 발표하고, 국내에 발송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학생대표를 선출했는데, 김상덕 선생은 11명의 실행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 김상덕 선생은 2.8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문화부장,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 잔재 청산과 민족 통일에 앞장서 왔던 인물이다.
이처럼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면서까지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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