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만든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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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50대가 만든 20대

김년수(수필가/일선김씨 종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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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수(수필가/일선김씨 종친회 회장)

 

산업화와 경제성장 속도와 비례하여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서서히 학력 간 소득 격차를 줄이고 있었다. 1995년도에 이르러서는 대졸과 고졸 간의 임금 격차가 최대한 좁혀졌다. 첫 월급이야 달랐지만 고졸 후 4년이 지나면 대졸과 비슷한 나이가 되는데, 생산 현장에서 4년의 경력을 쌓고 잔업수당 같은 여러 명목의 수당을 더하면 같은 나이의 대졸 신입사원보다 더 받는 경우도 많았다.
공고를 졸업하고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해서 대충 10년 이상 열심히 일하면 차도 사고 집도 샀다. 고졸 중산층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대로만 갔으면 유럽 부럽지 않은 이상적인 임금구조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당시 대기업 생산직에서 승진한 유능한 10년 차 고졸 엔지니어는 대졸 신입 엔지니어들에게 현장 실무를 가르치면서 직업적인 긍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혹독한 구조조정 선풍이 지나가고 나자 잠시나마 직장을 잃었던 이들은 다시 현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어차피 필요한 인력이니까 기업에서도 다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비정규직이었다. DJ가 도입한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고졸 vs 대졸 사이의 임금 격차를 절망적인 상태로 몰고 갔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이런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죽는다는 인식이 학부모들의 뇌리를 지배했다. 대학 진학률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대졸, 고졸 문제가 아니라 같은 대졸도 이렇게 한 줄로 쫙 서열화 되었다. 이 서열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죽는다. 대학을 나오더라도 경쟁력 있는 상위 5%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의 뇌리를 지배하면서 발생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들만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열화는 또 다른 종류의 심각한 소외를 낳기 때문이다. 또한 20대 초반에서부터 같은 세대 내부의 불화가 잉태된다.
위 서열에 끼지 못하는 대학 중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대학은 몽땅 서울대라 부르며 자위한다. 서울에 소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느새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일단 서울시 경계만 벗어나면 지잡대가 되어버린다. 지잡대는 지방에 있는 잡 대학이라는 뜻이다. 이런 자조적인 단어는 대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극한의 소외를 말하는 슬픈 신조어다. 대학을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한 구청에서 환경미화원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의 80%가 대졸자였다. 이 대졸자들을 상대로 마대를 메고 뛰는 것으로 체력검사를 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에 모든 명문대가 모여 있다 보니, 20대 초반부터 서울 집중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세종시 백 개 만들면 뭐하나. 도로 서울로 서울로 몰리는데. 서울의 20대는 과도한 경쟁으로 적자생존의 전쟁터에서 시달린다. 정글 자본주의가 대학부터 시작되면서 동 세대 간의 경쟁, 갈등 구조는 심화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교실의 수업 풍경은 더욱 절망적이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고 학교는 졸업장을 받기 위하여 출석하는 휴게실일 뿐이다.
전교조 합법화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탄생과 해직된 교사들도 학교로 돌아와 그들은 전인교육을 말했다.  실지로 학교에서 전인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사의 전교조 가입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교사선택권을 주어야 한다.
문제는 386세대가 20대의 부모가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의 50대 세대는 우리사회 전 세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교복을 입지 않았고 사교육 없는 세상을 경험한 세대다. 원정출산부터 시작하여 조기교육, 임신으로 부른 배 위에 헤드폰을 올려놓고 태아에게 영어테이프를 들려주는 극성으로 시작하여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면서 아이들의 혀를 수술시켜 국제적으로 망신을 사기도 했다.
지금 20대들이 고민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386세대가 20대의 부모가 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지구상 최대의 사교육 시장을 만들면서 자녀 세대에게 사상 최악의 무한경쟁 구도와 대학 서열화를 제공했다.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에서는 겪지 않아도 될 자괴감을 꽃다운 20대에게 선사했고, 이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세워주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기가 되면 장래의 꿈이나 희망을 달성할 '직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서열화 된 직장의 취업에 매달린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또 다른 소외가 기다리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무려 26%였다. 이쯤 되면 신나는 일에 대한 의욕이나 꿈은 사라지고 밥그릇에 대한 서열만 남는다. 이에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직장에는 귀천이 있다."는 말이 자조적으로 생산되어 유포된다.
중소기업에 코스닥 상장 가능성만 비치면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사원들에게 나눠주는 몇 백 장의 주식만 내다 팔아도 몇 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 주머니에 굴러들어오는 이때가 유사 이래 최초로 중소기업이 꿈의 직장으로 등극했을 때였다.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니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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