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병수발 7년, 정평일 씨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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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친 병수발 7년, 정평일 씨의 일상

휠체어로 어머니 모시고 사람이 많은 곳 찾아 매일 산책

미담-정평일 씨 모자, 중앙4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쉬고 있다..JPG

정평일 씨가  어머니와 함께 대가야읍 중앙네거리 쉼터에서 휴식을 즐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모친(최판순, 89세)을 7년 동안 극진히 병수발을 하고 있다는 효행 사례를 마을 사람들로부터 제보 받고, 쌍림면 월막마을 정평일(62) 씨 댁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을 듣고 있던 정평일 씨는 대뜸 손사래부터 친다.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바깥에다 소문낸다는 것 자체가 당치 않다고 극구 인터뷰를 사양한다.
배석한 곽재현(75)씨는 “평범하게 자식으로서 부모 병수발 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제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 씨는 추운 날이나 눈비 오는 날 빼고는 7년 세월을 줄곧 휠체어에 모친을 태우고 바깥나들이를 하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증을 배석한 곽 씨와 이웃 아주머니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정 씨는 조금씩 입을 열었다.
현재 어머니는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리고 계셔서 말씀도 잘 못하시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지만, 자식인 내가 오히려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심 말씀은 안하셔도 아직 미혼인 아들이 병수발을 드는 안쓰러운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들이 밥을 먹은 후에야 밥을 받아 드신다.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서 아들이 이불이라도 걷어차면 불편한 몸으로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고, 다독여 주시는 모습에서 투병중이지만 세상 여느 부모님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진한 모성애를 느낀다고 한다.
정 씨가 어느 날 TV에서 본 광경이다. 어떤 아들이 연세 많은 부모를 부축해가며 산으로 힘겹게 나들이를 해드리는 것을 보고 “바로 저거다.” 라며 강한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비록 말씀도 못하시고 의사 표현이 어렵지만 항시 누워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답답할지가 번쩍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휠체어로 어머니를 모시고 바깥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 어느덧 7년이나 되었네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생각하던 중 일주일에 이틀, 화요일과 목요일에 장애인 차량을 불러서 모친을 태우고 휠체어를 함께 싣고 대구 관문시장까지 가서 휠체어로 갈아타고 시장에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 시켜 드린다.
그리고 그 외에는 고령읍내 중앙4거리까지 휠체어로 모시고 가서 몇 시간씩 자동차와 오가는 사람 구경을 시켜 드린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표현은 잘 못하시지만 흡족해 하시는 모습이 역력히 느껴진다. 정 씨는 그렇게라도 움직여드리고 사람 구경을 시켜드리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며 웃는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씨는, 저는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이라면 끝까지 해드릴 생각이며 거기에는 종교(기독교)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4형제 중 셋째 아들인 정 씨는 우리 4형제를 키우실 때 그 은공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면 이보다 더한 고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에 진한 효심이 묻어난다.
정 씨 본인도 약간의 정신 장애(3급)를 갖고 있어서 지금까지 결혼도 미루고 있다며 지금은 오로지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식으로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하는지 물었다. 정부 지원금과 형제들이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오고 있어서 넉넉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 못 거느린다’ 라는 말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자식들이 많아도 다 잘 거느리고 살아갈 수 있지만, 아마도 열 자식은 부모 보다는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정평일 씨는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지만,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눈물겹다. 요즘 자식이 있어도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고 형제간에 다툼을 언론 지상이나 주변에서 더러 본다. 그들에게 정 씨의 효행심이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정 씨는 인터뷰 첫머리에 “효자라뇨? 아닙니다. 어머니가 저를 위하는 마음이 백배, 천배 더 큽니다.”라며 펄쩍 뛰던 모습이 쉽게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본인은 ‘효자’ 라는 말을 강하게 부정하지만, 단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휠체어로 모시고 거의 하루 종일, 그것도 7년간이나 바깥나들이를 시켜드린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 씨의 애틋한 효심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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