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은 배신의 스토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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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토사구팽은 배신의 스토리일까?

김년수(수필가 / 일선김씨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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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수(수필가 / 일선김씨 종친회장)

 

토사구팽(兎死拘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솥에 삶겨 죽음을 맞이한다.
정성을 다했는데 헌신짝처럼 버림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유방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던 대장군 한신도 이렇게 죽임을 당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큰 공까지 세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토사구팽은 배신의 사자성어처럼 여겨진다.
범려는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고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보좌한 신하였다. 월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뒤 구천은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와 문종을 각각 상장군과 승상으로 임명했다. 망국과 죽음을 앞둔 오왕 부차는 월왕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난 다음 당신들을 버릴 수 있으니 미리 살길을 도모하라고 말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범려는 월나라를 탈출했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문종에게 충고하였으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기를 주저하다가 결국 구천에게 반역의 의심을 받은 끝에 자살하게 된다.
토사구팽 사례는 중국 전체 역사를 통해 수 없이 등장한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명장 한신의 이야기에서도 토사구팽이 언급된다. 유방이 왕위에 오른 후 한신을 비롯한 개국 공신들을 차례로 몰아내는 상황을 보고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버려지는구나.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는 꼭 배신의 스토리이기만 할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까? 배신은 개의 입장이지 주인의 관점이 아닐 수 있다. 사냥터의 관점이지 사냥 이후의 관점이 아니다.
지렁이 시절은 용도 불편하다. 영웅의 처음은 초라하다. 모진 역경을 이겨냈기에 동고동락한 이들은 가슴 벅찬 그 과정을 전하고 싶어 한다. "솔직히 사장님은 그 때 비하면 용 되신 거지 그때 어땠는지 알아?"
이제 용이 됐는데 용의 지렁이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 창업공신 이에 용은 심기가 불편할 수 있다.
이제 사냥은 끝났다. 개도 변해야 한다. 토끼 사냥이 끝나도 사냥개는 계속 사냥을 하고 싶어 하기에 으르렁거리며 사냥감을 찾는다. 여전히 사냥개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토끼를 잡았으니 즐겁게 잔치를 벌여야 하는데 손님들은 사냥개 때문에 무서워하다 몇 명은 떠나버린다. 주인은 사냥이 끝났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사냥개는 주특기를 숨기지 못하여 과잉 전투력이 주인을 성가시게 할 뿐이다.
1막이 끝났으면 2막에 다른 역할과 대사를 준비해야 한다. 사냥개는 경호견 아카데미에 등록하거나, 달리기 연습을 해서 주인의 프라이드를 높일 수 있는 경주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속 1막 속에 머물러 있으면 퇴출되고 만다. 변화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을 고집할 때 그는 내쳐지거나 배척을 받게 된다.
그래서 토끼는 사냥개의 적인가, 동지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주인은 왜 사냥개가 필요했을까? 바로 토끼를 잡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잡을 토끼가 없으면 사냥개는 필요가 없다. 사냥개는 미친 듯이 토끼를 잡으려 하지만, 토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이 같이 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내가 지금 쫓고 있는 토끼가 사라지면, 나 역시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조직에서 이룬 성과가 결국 내 효용 가치를 없애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토끼는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사냥이 또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토끼 사냥이 아니라 늑대 사냥이 필요하다면 토끼 사냥에 특화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토끼는 과연 내 적인가 동지인가?
주인과의 관계가 언제까지 그대로 갈 것이라 장담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주인과 사냥개처럼 수직적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사업을 예로 들어보면 시작 때 함께한 직원은 아무래도 젊고 경험이 적다. 대신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고 열과 성을 다하여 불평 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해낸다. 그러나 성과가 나오고 투자금도 들어오면 그 직원들의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회사의 성장 속도가 그들의 성장 속도를 뛰어넘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회사도 여유가 생겨 경험 많은 우수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된다. 기존 직원들이 짐이 되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조직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직원은 조직의 성공이 비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배신당했어요.'라며 억울해할 일만 남게 된다. 이미 조짐이 있었건만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인데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다음 내용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1. 과거의 무용담에 도취 되지 말자. 언짢아하는 사람이 있다.
2. 1막이 끝났는데도, 1막에 머물러 있으면 퇴출되고 만다.
3. 토끼가 사라지고 나면 내 능력도 무의미하다. 토끼를 전멸시키는 게 타당한가?
4. 조직의 성공이 모두에게 유익하진 않다.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면 성공이 비극이다.
그래서 토사구팽은 배신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다. 이는 변화에 대한 적응, 관계의 역동성에 대한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말일 수 있다.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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