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유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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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중에서

김년수(수필가/일선김씨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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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수(수필가/일선김씨 종친회장)

 

 

 

공자의 제자 자로가 그의 스승 공자에게 성인의 품격은 어떤 조건이어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한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사람이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다.
1910년 3월 26일, 중국 여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안중근 의사는 조선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았다. 차가운 감옥,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꿋꿋하게 써 내려간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 중 견리사의 견위수명이 있다. 이 밖에도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 중에는 ‘국가안위 노심초사’ ‘위국헌신 군인본분’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등이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이 고사성어를 좌우명처럼 마음에 새기며 살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묵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것을 찾아내어 석비에 새겨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새워짐으로써 글귀의 소중함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견리사의와 반대되는 말로는 견물생심이 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필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견리사의 견위수명하지 못한다. 관포지교에서 포숙아가 그의 친구 관중의 아량을 칭송하는 말에서도 필부의 태도를 언급한다. 둘이 함께 전쟁에 나갔지만 포숙아는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도망쳐 왔지만 관중은 그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해서 관중의 덕스러움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직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처와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비리쯤은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리고 살아간다. 형제간 유산 다툼으로 칼부림으로 발전했다는 소식이 늘어나고 있고,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탐하여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친구 간 거래는 이미 옛말이 되었다. 전쟁터에서 친구를 두고 뒤로 물러서고, 물질의 문제로 부모, 형제를 죽이고, 그리고 친구가 없어졌다.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고 하고, 이러한 대답을 반영하듯이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평균 100대 1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선발된 공무원들의 성적이 뛰어 날것이라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안중근 의사와 같은 좌우명을 가지면 우리 사회는 일취월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중 일부는 견물생심 하는 사례가 많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민주화 그 이후 대통령들이 자신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리로 구속됨으로써 권력의 상층부가 부패가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층부의 문제뿐 아니라 하위직의 부패는 끝을 모르고 일어나고 있어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다. 공무원의 부패를 막기 위하여 기관별 청렴도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고위공무원들의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하고 있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공직자의 공직의 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견리사의 견위수명이어야 한다. 더욱이 그들의 대부분은 기관을 책임지는 장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감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적개념이 없이 견물생심 한다면 국가는 어떻게 되겠는가? 남미, 동남아,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을 본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공직자들을 판단할 때 견리사의와 견위수명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소한 그들을 판단할 때
첫째는 견리사의 하는 삶을 살아 왔는지 살펴야 한다. 그들이 공적 개념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사적 이익을 탐하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재산형성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유산을 받지 않았음에도 많은 재산을 보유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견위수명이다. 선출직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희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때 씁쓸함을 지을 수 없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한 사례는 있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희생 없이 봉사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 그리고 자신이 처한 집단 안에서 희생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크고 작은 일을 판단, 결정, 결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의(義) 이다. 그러나 의를 일관되게 지키며 생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내가 부족하거나 극한의 결핍상태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 눈앞에 있을 때, 과연 그것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공자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의를 생각하고 의에 따르는 사람만이 군자라고 말한다.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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