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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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전략

김년수(수필가/선산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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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수(수필가/선산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광인 이론(狂人理論) 또는 광인 전략(狂人戰略)은 국제 정치 이론 중 하나로서 협상 상대자에게 자신을 미치광이로 인식시킴으로써 이를 무기 삼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이다.
닉슨 행정부가 전 세계적인 핵 전쟁 공포 조성으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시도했던 데에서 유래한다.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있었고 전쟁 종식을 위해 핵 공격 태세를 크게 강화시켜 상대방의 굴복을 유도했는데, 핵 전쟁을 시작할지 모른다는 신호를 보내면 당시 북베트남을 배후 지원하던 소련이 위협을 느껴 미국의 말을 듣도록 북베트남을 조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에 닉슨은 북베트남과의 평화회담이 교착상태에 있던 1969년 10월 동아시아와 유럽·중동 지역 주둔 미군에 핵 전쟁 경계령을 내렸었다. 이 전략의 목적은 '미국 대통령이 작은 일에도 발끈해 핵전쟁이라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믿게 해 적국들이 감히 미국에게 덤비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도 '정전체제'를 끝내겠다는 의도를 깔고 '전쟁이냐 평화냐 양자택일하라'고 대한민국과 미국을 압박하는 데 이 전략을 쓴다는 평가가 있다. 2017년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트럼프 또한 이러한 전략을 쓴다고 지적되었다.
내년 1월에 백악관을 나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광인전략의 달인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해 북한이나 중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 패색이 이미 뚜렷한데도 패배를 부인하거나, 심지어 다음 대선 출마를 시사하는 것도 광인전략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을 괴롭혀 자신과 가족의 안위·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1월 10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특활비 유용 의혹을 제기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광인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닌가” 하고 물었다. 추 장관이 특활비 문제를 제기해 놓고 막상 법제사법위원회 검증에선 제대로 자료를 안 내놓고 검증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아들 군 휴가문제를 제기한 당직 사병에 대해 “오인과 추측”이라고 비난했지만, 수사 결과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끝내 사과하지 않고, 보좌관에게 부대 대위 전화번호를 남긴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댔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윤 총장과 관련된 사실은 상세히 거론하는 선택적 기억 증세를 보인다.
윤 총장이 쌈짓돈처럼 쓴다던 특활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되레 법무부 특활비로 불똥이 튀었다. 지휘권, 감찰, 특활비 등 모든 칼을 휘둘렀는데 윤 총장은 꿈쩍 않고 있으니 앞으로 무슨 황당한 일을 벌일지 조마조마하다. 부인 관련 수사도 압수수색 영장이 통으로 기각되는 등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11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이 대선후보 1위에 오르자 여권에서는 ‘추풍낙연’이라는 자조가 나왔다. 추 장관 때문에 윤 총장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은 떨어진다는 의미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찬성, 드루킹 사건 등이 당과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타격을 줬다.
대통령에 부담 정도껏 하시라 정세균 작심 발언 이어 여당 내부서도 청와대가 어떻게든 정리해야 특활비 공세, 여권에 부메랑. 휴대폰 비밀번호 공개법 논란도 부담 갈수록 격화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놓고 검찰개혁을 추진 중인 여권에서조차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야당에서 광인전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경한 추 장관의 태도를 놓고선 피로감까지 감지된다. 원조 친 노 인사이자 여권의 어른으로 꼽히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13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에 대해 청와대가 나서서 어떻게든지 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유 전 총장은 특히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너무 부담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총리가 나서기는 했는데, 임명권자가 조정해서 둘이 다시 손잡고 갈 수 있도록 하든가, 인사조치를 해야 한다며 한쪽만 인사조치를 하기에도 참 애매하게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은 두 장관급 인사의 전선이 연일 확대되면서 정치권의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몸집을 키우는 데 대한 청와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추 장관의 임명 직후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대립이 검찰개혁이라는 국정과제 범주를 벗어나 여권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지난 10일 취임 3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석열 총장은 자숙하고, 추미애 장관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더 점잖고 냉정하면 좋겠다."고 뼈 있는 말을 했다.
정 총리는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앞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총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초 추 장관에게 응원을 보내던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피로감이 감지되고 있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당대표까지 지내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 준 추 장관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그의 강경한 모습이 도리어 필요 이상의 갈등을 부르고 있다는 우려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국회 예결특위원장은 12일 예결위 부별심사 도중 국민의힘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추 장관을 향해 정도껏 하시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있다. 추 장관이 질문 자체가 모욕적이거나 하면 위원장이 제재해달라고 했지만, 정 위원장은 그런 질문 없었다. 협조 좀 해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최근 윤 총장이 이낙연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에 이어 차기 대권주자 3위로 존재감을 키우게 된 데에 추 장관의 행보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여당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윤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윤 총장의 입지가 커짐과 동시에 추 장관 자신의 입지도 커진다고 본 것은 아닐까. 추 장관 광인전략의 끝은 어디일까?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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