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세 가지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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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세 가지 불행

김년수
수필가/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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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병담(紙上兵談)이라는 성어가 있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다’로 해석하는데, 경험이 없고 이론만 있는 병법은 실제 전쟁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조나라의 부흥을 이끌었던 조사(趙査)라는 장군이 있었다. 조사는 원래 나라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관리였으나 엄정한 일처리로 추천돼 혜문왕에게 발탁됐고, 장군이 된 후 수많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에게는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병법의 이론에 통달해 아버지인 조사조차 이론으로는 그에게 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조괄은 자신의 재능을 여기저기 뽐내고 다녔고 그의 어머니도 아들의 재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아들이 재능을 뽐낼수록 조사는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스러워했다. 아내가 그 이유를 묻자 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이란 죽고 죽이는 곳인데 괄이는 전쟁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있소. 그 아이가 말하는 것은 병법서에 적혀 있는 것일 뿐 실제 전장에서는 쓸모가 없소. 그 아이를 장군으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부득이 장군으로 임명한다면 조나라 군대를 파멸시키는 자는 틀림없이 괄이가 될 것이오.”
훗날 이웃의 강국인 진나라가 침공하자 조괄은 그의 명성을 들은 효성왕에게 발탁돼 대장군이 됐다. 남편의 이야기를 기억했던 조괄의 어머니는 왕을 찾아가 아들의 발탁을 취소해달라고 호소했다. 아들의 출세보다는 오히려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괄은 왕의 기대를 듬뿍 받으며 군대를 지휘했으나 진나라 장수의 계책에 빠져 처절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 자신은 활에 맞아 죽었고, 40만명의 병사는 지도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진나라에 항복했지만 진나라는 이들을 모두 생매장해 죽였다. 이 전쟁은 ‘장평대전’으로 불리며,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중의 하나로 꼽힌다. 최고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한 사람의 백면서생이 멋모르고 나섰다가 이와 같은 참혹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조괄의 고사를 보면 송나라의 학자 정이가 말했던 ‘인생삼불행’이 떠오른다. ‘인생의 불행을 불러오는 세가지’인데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정이(程顥)는 인생에 세 가지 불행이 있다고 했다.
첫째가 '소년등과(少年登科)'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는 일, 즉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하는 것을 일컫는다.
둘째는 '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로 권세 있는 부모형제를 두는 일이다. 요즘말로 하면 '금수저'다.
셋째가 '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이다. 탁월한 재능이나 글솜씨를 타고 나는 것이다.
요즘이라면 삼불행이 아니라 '인생삼행운' 아니냐고 반문할 만하다.
조괄은 최고 명문가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병법을 배웠고 타고난 재능으로 아버지를 능가하는 병법의 이론가가 됐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을 높이게 됐고 나라가 위기에 빠진 중요한 시기에 대장군의 직책을 맡아 벼락출세를 했다. 인생의 불행이 되는 세가지 요건을 제대로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수많은 병사들은 물론 자신도 목숨을 잃었고 부흥하던 나라마저 위기에 빠뜨리고 말았다.
‘인생삼불행’이 위험한 이유는 어린 나이에 출세함으로써 자리에 합당한 덕과 경륜을 쌓지 못한 것이다.
비록 타고난 재능이나 학식이 있더라도 덕과 인격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교만해질 수밖에 없고, 경험과 경륜의 부족으로 조그만 위기가 닥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정이는 이것을 통렬히 지적했던 것이다.
최근 한 권문세가의 갑질 논란을 보면서 ‘인생삼불행’의 교훈이 오늘날에 더욱 절실함을 느낀다. 권세 높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유학을 통해 높은 스팩을 쌓아, 부모 찬스로 온갖 특혜를 받고, 젊은 나이에 나쁜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받아, 오만에 빠져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 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온 집안이 함께 어려움에 빠졌고 국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이들에게는 올바른 가르침을 줄 조괄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소년등과를 한 사람은 누구나 겪어야 할 세상의 고단함을 건너뛴 채 칭송과 교만에 젖기 쉽다.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우모씨의 경우를 보면 아직 무른 뇌에 잘못된 가치관이 들어앉았다는 것이다.
아이돌 중 성추행 등의 행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가수 정준영은 노래 한 번에 몇백만 원을 받았다.
우리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욕심과 헌신을 헷갈려하며 아이를 입시 기계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육은 '삼불행'의 서민버전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부'만을 배양하던 무균실의 산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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